‘K-조경’의 대모, 정영선 [유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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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닝의 나라' 영국의 정원 역사를 훑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름이 있다.
최초의 여성 정원 디자이너 혹은 조경가로 기록돼 있는 거트루드 지킬(1843~1932)이다.
이런 인습을 깨고, 식물을 정원의 중심에 앉힌 이가 지킬이다.
정원이 부자의 사치로, 조경이 남성 전유물로 여겨지던 1970년대부터 숱한 정원과 공원 조성 작업에 참여해 '한국 조경계의 대모' '제1세대 조경가'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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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닝의 나라’ 영국의 정원 역사를 훑다 보면 반드시 만나게 되는 이름이 있다. 최초의 여성 정원 디자이너 혹은 조경가로 기록돼 있는 거트루드 지킬(1843~1932)이다. 그의 작품은 영국, 미국 등에 걸쳐 300개가 넘는다. 그러나 그를 전설로 만든 건 개수가 아니다.
지킬 이전의 정원은 대개 권력과 부, 남성성을 과시하는 공간이었다. 의뢰인도 설계자도 남성인 대부분의 정원은 건축물, 조각, 파빌리온 등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나무, 숲, 잔디밭은 보조재에 불과했다. 이런 인습을 깨고, 식물을 정원의 중심에 앉힌 이가 지킬이다. 여성이면서 화가, 자수 전문가였던 그는 잎과 꽃의 질감·색감을 이용해 흙 위에 그림을 그렸다. 비로소 식물 고유의 아름다움에 주목한 ‘꽃의 정원’이 탄생했다. ‘식재 디자인’의 효시로 평가받는 이유다.
영국에 지킬이 있다면, 한국엔 정영선(83)이 있다. 더없이 찬란한 이 봄날, 서울 선유도공원, 광화문광장, 여의도 샛강생태공원, 경춘선숲길, 국립중앙박물관 뜰, 서울아산병원 정원, 제주도 오설록 티뮤지엄, 다산생태공원, 올림픽공원, 서울식물원, 양재천, 청계천 중 어느 한곳이라도 거닐었다면, 그의 작품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정원이 부자의 사치로, 조경이 남성 전유물로 여겨지던 1970년대부터 숱한 정원과 공원 조성 작업에 참여해 ‘한국 조경계의 대모’ ‘제1세대 조경가’로 불린다.
그러나 조경을 보는 관점은 지킬과 사뭇 다르다. “한국 정원은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거나 “비싼 나무, 진귀한 꽃을 심을 이유가 없다”는 말에서 문득문득 드러난다. 그런 소신이 세계 무대에서 평가받는 시대가 됐다. 정 작가는 지난해 9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조경가협회(IFLA)가 주는 ‘제프리 젤리코 상’을 받았다. 그가 앞서 개척한 길을 이젠 황지해 같은 후배들이 따르고 있다. 황 작가는 세계 최고의 정원 박람회라는 ‘첼시 플라워쇼’에서 지난해 금상을 수상했다.
사실 정원도 조경도 정답은 없다. 다만 작가를 알고 보면 감상의 밀도가 달라진다. 때마침 정영선의 작품 세계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가 지난 17일 개봉했다. 또 그의 삶과 작업을 소개하는 ‘정영선: 이 땅에 숨 쉬는 모든 것을 위하여’ 전시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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