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에게 “영어 잘한다”…노 대통령, 농담도 잘하시네!

한겨레 2024. 4. 22. 14:3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길을 찾아서] 참여정부 천일야화 63화 후기: 인간 노무현 3
한미 정상간 전화통화에서 통역없이
부시에 “very good English” 칭찬
“조선일보 안 보는데 아내가 전해줘”
“약골이라 음식 잘못 먹으면 고생”
강원도민과의 오찬 마무리 발언서
“대선때 합법·불법 합쳐서 350억 써
그 중 합법 260억”…불법 인정한 셈
지나치게 솔직·소탈해 손해 보기도
유머 많아 같이 있으면 편안·유쾌
소박한 화법이 되레 비난거리 돼
2003년 5월26일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3년 12월18일(목) 오전 10:40~12시 충북지역 언론 인터뷰(영빈관). 어느 기자가 청와대 생활에 대해 질문하자 노 대통령이 이렇게 답했다. “부부 사이가 더 좋아졌다. 일 마치고 관저로 퇴근할 때 즐겁다. 나는 조선일보를 안 보는데 아내(권양숙 여사)가 읽고 이야기해 준다. 아내는 야당 입장에서 이것저것 걱정한다.” 이어서 12:30~2시 인왕실 오찬에서 누군가가 국운의 융성과 인류 평화까지 들먹이며 거창한 건배사를 했다.

2003년 12월18일 충북지역 언론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질문을 받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사료관 제공

충북 사람들은 좀 다르다. 통 질문을 안 하고 대통령 이야기를 메모하는 사람도 없다. 다른 지역 사람들은 좋은 기회라고 여겨 안달인데 충북은 양반이라 그런지 뭔가 다르다. 노 대통령은 어릴 때부터 말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고 장차 변호사 되겠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말했다. 어느 기자가 “천마가 날아오는 태몽을 꾸었다는데…”라고 질문하니 “그건 형님 태몽이다. 형제 중 나 혼자 태몽이 없다고 하더라. 나는 태몽이 없어서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놀림 받았다.”

2003년 12월19일 노무현 대통령 내외는 강원도민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16대 대선 때 당선을 기원하며 후원금을 보내온 강원도 삼척 김경황 할머니와 만남을 가졌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12월19일(금) 12:30 강원 도민과의 오찬(강원도 경찰청). 헤드 테이블에 자리한 강원도 김진선 지사가 독감에 걸려 환영인사만 하고 얼른 다른 자리로 옮기려 하자 노 대통령이 팔을 붙들어 김지사는 그대로 앉아 함께 식사했다. 역시 헤드 테이블에 앉은, 작년 대선 때 10만원 우편환을 부쳤던 삼척의 김경황 할머니(80살,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와 반갑게 인사했고 연설할 때도 김경황 할머니를 언급하며 감사를 표했다. 노 대통령이 마무리 연설에서 작년 대선 때 합법, 불법 합쳐서 350억~400억원밖에 안 썼다며 세계에 유례없는 모범선거였다고 자랑했다. 그 중 합법이 260억인가 280억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 불법 자금이 70억~140억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언론에서 온통 난리가 났다. 노 대통령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탈이다.

2003년 12월19일 노무현 대통령은 강원도 춘천을 방문해 강원 도민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불법 대선자금 문제와 관련한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면서도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점을 강조했다. 노무현사료관 제공

12월20일(토) 아침 7~9시 관저 조찬 겸 수석회의. 월요일 대통령의 해인사 방문 때문에 수석회의를 앞당겨 열었다. 노 대통령이 “잠잘 때 베개가 불편하다. 잠잘 때는 팔이 하나 없었으면 좋겠다. 옆으로 누워 자는데 팔이 거추장스럽다. 신혼 때는 좁은 방에 같이 누워 있으면 팔이 두 개라서 불편하더라. 팔 하나 없으면 좋겠다.” 참 기발한 생각이다.

12월23일(화) 백악실 대통령, 총리, 3실장 오찬에서 나종일 안보실장이 언젠가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과 통화할 때 통역 없이 영어로 “very good English”라고 칭찬했던 일화를 소개했다. 한국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에게 “당신 영어 참 잘 한다”고 했으니 재미있는 유머다.

2004년 7월16일 제35회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서 학생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사료관 제공

2004년 7월16일(금) 포항에서 열린 35회 국제물리올림피아드 개막식에서 노 대통령이 격려 연설을 하는 도중 “학생 여러분 대통령은 저기 통역하는 사람이 아니고 내니까 통역하는 중에도 저쪽을 보지 말고 내 쪽을 쳐다봐야 됩니다”라고 해서 청중들이 폭소, 박수갈채를 보냈다.

8월26일(목) 지역혁신 토론회를 하러 제주 가는 비행기에서 노 대통령이 문재인 수석과 나를 불러 입시제도를 토론한 뒤, 자신이 약골이라고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음식을 잘못 먹으면 1시간 동안 고생하고, 아침에 깨서도 바로 못 일어나고 엉금엉금 기어 나오기도 하고, 스트레칭해서 겨우 몸을 맞춰 하루 활동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뜻밖입니다. 저는 대통령이 매우 건강체질인 줄 알았습니다. 일본에서 ‘재계의 신’으로 불리는 마츠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첫째, 가난한 집에 태어나 풍요에의 열망을 갖게 됐다. 둘째, 초등학교밖에 못 나와 남보다 배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는 결의를 했다. 셋째, 몸이 약골이라 늘 조심하고 절제하는 생활을 한 덕분에 장수했다.’ 가난, 저학력, 약골은 노 대통령과 마츠시타 고노스케의 공통점입니다.”

실내행사장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는 당시 노무현 민주당 의원과 문재인 변호사(왼쪽). 일자미상. 노무현사료관 제공

9월17일(금) 저녁 6:30~8:30 대통령 58회 생신 잔치(관저). 노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 이야기를 길게 했다. “사무실 관리는 문재인 변호사에게 넘겨주고 돈을 타서 썼다. 인권, 노동 변호사로서 영남 지방 여러 곳을 다니며 변론해줬는데 거의 무료변론에 실비만 사무실에서 건당 3만원 수령했다. 그런데 하루 3건이면 9만원 받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운전은 아내(권여사)가 하고 온 데 다 다녔다.” 문재인 수석이 말했다. “월 1~2백만원밖에 못 받았으니 권여사께서 고생 많이 하셨을 겁니다.”, 권양숙 여사, “그때 집을 사둔 게 터널이 생기는 바람에 손해만 보았고…” 노 대통령, “내가 변덕이 심해 매일 출근하면 책상이든 서류함이든 하나씩 위치를 바꾸라 하고 별나게 굴었는데 문재인 변호사가 성격이 좋아 하자는대로 다 따라오고 그랬다.”

문재인 수석을 보면서, “내가 그때 장수천 물장사 할 때 사람들은 다 안 된다 하는데 나 혼자 금방 뭔가 될 거 같은 착각에 빠져 계속 꼬라박고 있었다. 그때 문재인 변호사한테 4천만원 빌렸는데 아마 안 갚았을 거다.” 문재인, “그 뒤 제가 한겨레신문 부산지사 한다고 하다가 1억원 손해봤는데 그때 대통령에게 2천만원 빌린 게 있습니다.” 노 대통령, “그때 부산 운동권 변호해주고 친해져서 노상 같이 어울리고 워크숍 가고. 워크숍 한다고 우리집을 통째로 빌려주고 우리 부부는 처갓집 가서 자기도 하고 그랬지.”

내가 궁금해서 물었다. “잡지에서 읽으니 노 대통령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이호철 등 부림사건 때문에 확 바뀌었다고 하던데 맞습니까?” 노 대통령이 답하기를, “대체로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그때는 그놈들이 하도 밉고 분해서 밤낮 그런 생각만 하고…” 문재인, “당시 운동권 서적을 많이 읽고 생활도 일부러 낮춰서 하려고 버스 타고 다니고 그랬죠.” 노 대통령, “밥 먹을 때도 노상 돼지갈비만 먹고 소갈비는 안 먹고…” 문재인, “그때 운동권 학생 면회 가면 ‘변호사님은 R(Revolution)을 믿습니까?’ 질문하고 그랬다. 학생들이 ‘판사는 적, 검사는 더 적’이라 하던 시절이었다.”

노 대통령, “1987년 6월 항쟁 때 휴대폰이 있었으면 훨씬 빨리 끝장났을 거다. 변호사 사무실에 앉아 전화로 시내 상황 보고받고 지시 내리고 했다. 그때 인터넷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당시 유인물 인쇄하러 다녔는데 한번은 인쇄소가 바로 경찰서 옆이었다. 삐라를 잔뜩 인쇄해 차 트렁크에 가득 싣고 오기도 했다.” “김재규(민청학련 부산 총책임자)가 운동자금 마련한다고 김구 선생 글씨 복사판을 갖고 와 팔아달라고 해서 변호사 사무실마다 다니며 팔아주었는데 어떤 데는 10만원 받고, 어떤 데는 3만원, 5만원도 받고 그랬다.” 이런 대화를 마치고 관저를 나오며 정상문 총무비서관이 문재인 수석한테 말했다. “잘했습니다. 대통령이 오늘처럼 기분 좋은 모습은 근래 처음입니다.”

2005년 2월25일(금) 12시 참여정부 2주년 기념 오찬(인왕실) 뒤 본관 입구 계단에서 실장, 수석들이 대통령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노 대통령, “이것은 희귀한 사진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눈꺼풀 수술을 해서 쌍꺼풀이 됐다.” 권진호 안보실장, “실은 저도 쌍꺼풀 수술해서 사람 눈을 바로 못 쳐다보겠다. 1급 국가기밀이다. 만일 새나가면 여기서 나간 것으로 알겠다.” 노 대통령, “그러려면 밥이라도 사주고 부탁해야지. 옛날 친구 중에 ‘땡가리’란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었다. 친구들 불러 술 사주면서 앞으론 제발 별명 부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술 마시고 나오면서 친구들이 말했다. 오늘 땡가리 술 잘 얻어먹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솔직해서 손해를 많이 보았다. 워낙 소탈한 성격이라 꾸밈없는 시골 할머니들의 소박한 화법을 자주 사용했다. 유머가 많아 항상 주위에 웃음꽃이 피었다. 같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이었다. 이런 여유와 솔직함은 선진국 정치에서는 장점으로 높이 평가받았을 것이나 격식을 중시하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감점 사유가 되고 비난 받았다. 노 대통령이 떠나고 나니 이제야 사람들이 진가를 알아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노무현 스타일의 정치인이 또 나올지 궁금하다.

필자 이정우: 1950년 대구에서 나고 자랐다. 1974년 서울대 경제학과 학·석사를 마친 뒤 1983년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7~2015년 경북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한 뒤 명예교수를 맡고 있다. 2003~05년 참여정부 초대 정책실장, 정책기획위원장 겸 정책특보를 지냈다.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끊임없이 공부하는 경제학자를 자임하고 있다. ‘참여정부 천일야화’ 제목은 그의 친필이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