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점 후 재개점’으로 거리제한 어긴 편의점 프랜차이즈, 법원 “입법 취지 무너뜨려”

이민준 기자 2024. 4. 22.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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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CU 측 제시한 약관, 2014년 폐지돼 효력 잃어”

가맹사업자와 프랜차이즈 업체가 신규 출점하지 않기로 합의한 반경 250m 영역 안에 다른 점포를 닫은 뒤 재개점하는 식으로 업체가 새 점포를 낼 수 있도록 한 계약 약관이 현행법에 위배된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뉴스1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3부(재판장 정준영)는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주식회사 BGF리테일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경고 처분 취소 소송에서 지난 18일 BGF리테일의 패소로 판결했다. BGF리테일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작년 5월 “CU가 정당한 사유 없이 가맹계약기간 중 가맹사업자의 영업지역 밖에 위치하고 있던 기존 가맹사업자의 매장을 영업지역 안으로 이전해 재출점한 행위에 대해 경고한다”는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 사건은 2021년 5월 CU 측이 가맹업자 운영 점포를 닫고 위치를 옮겨 새 점포를 내면서 불거졌다. 당시 CU 측은 가맹업자 A씨가 운영하던 점포에서 278m가량 떨어져 있던 B씨의 점포를 폐점하고, 230m 거리의 위치에 B씨가 새 점포를 열도록 승인했다. A씨와 CU는 2020년 9월 가맹계약을 맺을 때 ‘반경 250m 이내에 새로운 점포를 개설하지 않겠다’는 조항을 넣었다. 이때 ‘기존 점포를 폐점한 뒤 재개점하거나, 점포를 이전하는 경우는 예외로 한다’는 조항도 포함됐다고 한다. CU 측은 침해하지 않기로 합의한 반경 250m 내에 점포를 열기로 하면서 예외 조항을 든 것이다.

대신 CU 측은 A씨에게 금전적 보상을 제시하면서 B씨가 새 점포를 출점하는 것에 동의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A씨는 이를 거부했다. B씨의 새 점포 공사 중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도 보냈다. 하지만 CU 측은 가맹계약서에 명시된 약관을 제시하며 A씨의 동의는 필요 없다고 반박했다. 공정위는 이 사건을 두고 CU 측에게 경고 처분을 내렸다. CU 측은 이에 불복해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낸 것이다.

BGF리테일 로고./BGF리테일 제공

재판에선 A씨와 CU 측이 맺은 계약이 현행 가맹사업법에 위배되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계약에 포함된 ‘250m 이내 신규 입점 제한’과 예외 조항은 공정위가 2012년 시행했던 ‘편의점 가맹점 모범거래 기준’ 내용과 같다. 이 기준은 2014년 5월 “기업활동을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폐지가 결정됐다. 재판부는 “모범거래 기준은 가맹사업법 제12조의4가 신설되면서 A씨와의 계약 당시엔 이미 폐지돼 효력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와 CU 측이 맺은 계약이 현행 가맹사업법의 입법 취지를 무너뜨린다고 봤다. 가맹사업법 제12조의4는 부당하게 영업지역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가맹본부는 가맹계약을 맺을 때 사업자의 영업지역을 설정해야 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 동일한 업종의 점포를 내선 안 된다. A씨와 CU 측은 계약을 맺을 당시 영업지역을 점포 반경 250m로 정하고, 이 안에 또 다른 CU 편의점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합의했다. CU 측이 B씨의 점포를 폐점한 뒤 230m 거리에 새로 여는 것은 가맹사업법에 위배된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재판부는 CU의 재출점 승인에 대해 “기존 가맹점의 재출점 내지 이전이라는 행위로 인해 A씨 점포의 영업지역을 침해하고 그 영업권 보호에도 치명적인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고 봤다. 이어 “A씨와 CU의 가맹계약에 따르면 기존 점포는 극단적으로 다른 점포와 가까운 거리에 재출점이나 이전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가맹본부인 CU가 계약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기대에 반하여 형평에 어긋나는 약관조항을 작성·사용함으로써 A씨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주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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