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미술관 산책 <9>] 사과는 미술사에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을까

정철훈 미술칼럼니스트 2024. 4. 22.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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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후로 사과 생산량이 줄어들면서 사과가 금 사과가 되며 화제가 되고 있다. 사과는 인류 문명사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아담의 사과’가 금기의 상징이라면 ‘뉴턴의 사과’는 자연의 이치를 깨닫는 사과이며, 스마트폰이란 문명의 이기를 탄생시킨 ‘애플의 사과’는 문명의 발전을 상징한다. 이처럼 사과는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이다. 사과는 미술 소재로도 애용되는 이미지다. 인터넷 검색창에 ‘사과 그림’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미술학원의 사과 그리기 열풍과 액자 가게의 ‘풍수 그림’이란 단어가 연동된다.

르네 마그리트의 ‘The listening room.사진 위키피디아

사과 그림 열풍의 단상들

최근의 ‘사과 그림’ 열풍에는 우리나라 미술 애호가들이 예쁜 장식성이 강조된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2004년부터 사과 작품을 선보인 윤병락 작가의 ‘가을 향기’ 시리즈가 동력이 됐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윤병락 작가의 사과 이미지 이면에는 미학적 여러 장치가 내재해 있다. 먼저 공간성을 강조하기 위해 동양화에서 애용되던 부감법을 그림에 도입했다. 위에서 내려 보는 극단적인 부감법을 통해 사과를 관람자 시선과 동일한 선에 위치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캔버스의 틀을 벗어난 그림 이미지는 작품이 전시된 공간 속에서 하나의 오브제로 인식되게 함으로써 전시 공간이 캔버스 역할을 하게 하는 공간성을 강조한다.

폴 세잔의 ‘사과 바구니’. 사진 위키피디아

사과 때문에 생긴 여신들의 탐욕과 전쟁

미술사에 처음 중요하게 등장한 사과는 ‘파리스의 사과’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목동 파리스와 관련된 그림으로 ‘비너스의 탄생’으로 유명한 산드로 보티첼리는 ‘파리스의 심판’에서 사과를 중요한 이미지로 처음 등장시킨 화가다. 보티첼리의 ‘파리스의 심판’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신은 평범한 여성처럼 표현돼 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다. 남자는 목동인 파리스다. 신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신들의 결혼식에 모든 신이 초청됐는데, 불화의 여신 에리스만은 초청받지 못했다. 화가 난 에리스는 연회에 참석하여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 주는’ 황금 사과를 던졌다. 여신들은 서로 자신이 제일 아름다운 여신이라고 다투게 됐고, 제우스는 이를 중재하기 위해 트로이 왕의 아들로 당시 양치기를 하고 있던 파리스에게 심판하게 했다. 결국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주겠다’고 제의한 아프로디테가 승리를 얻었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는 이미 스파르타의 왕비가 된 헬레네였는데, 파리스는 마침내 헬레네의 사랑을 얻었지만, 트로이는 그리스와 전쟁을 하게 된다. 파리스의 황금 사과 때문에 트로이는 멸망하게 된다. 이같이 ‘파리스의 심판’에 나오는 황금 사과는 불화의 사과다.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가 세 명의 여신에게 황금 사과를 던지는 순간, 사과는 탐욕의 상징이며 불화의 상징이 된 것이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파리스의 심판’. 사진위키피디아

사과로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 '세잔'

19세기 후반 폴 세잔은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그의 선택은 조잡하게 그린 사과였다. 세잔이 사과 그림을 전시했을 때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기존의 정물화에서 느꼈던 아름다움은 찾을 수 없고, 대충 그린 듯한 성의 없는 그림은 기존 아카데믹 화풍이 주류를 이루는 시기의 기준에서 보면 조롱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그는 왜 이러한 조잡한 사과로 파리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일까. 당시는 사진의 발전으로 조화와 균형미를 재현하는 회화의 역할은 그 수명을 다하고 있었다. 화가들은 생존을 위해 사진이 가지지 못한 또 다른 표현 방식이 필요했다. 그림에 묘사된 테이블은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고, 그 위에 놓인 사과와 유리병도 기울어져 있다. 이는 실제 상황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사진이라면 찍을 수 없는 모습이다. 왜냐하면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에 기울어진 테이블 위의 물체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과는 사과인지 분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조잡하고 성의 없이 그려진 모습이다. 그는 대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애초부터 없었다. 또한 테이블 위에 놓인 개별 대상이 전혀 개별화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정물화를 그렸다. 정물화에는 여러 대상을 연동해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개별화된 개개의 사과가 아니라, 사과라는 하나의 인식된 본질의 사과다. 그러므로 그의 사과는 조잡하거나 잘 그린 것이 중요한 고려 사항이 아니었고, 그저 사과로서 존재하는 구조적 사과다. 초기 르네상스 이후, 예술가들은 통일된 공간성을 표현하기 위해 원근법의 소실점을 사용했다. 하지만 세잔은 인간의 관점은 사진이 보는 관점보다 대상을 보는 데 훨씬 더 복잡하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는 다양한 관점에서 대상을 인식했고, 사과를 통해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바로 미술사의 새 장을 여는 입체파의 기원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사과를 가장 많이 차용한 화가는 벨기에 출신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한 번쯤은 봤을 중절모와 사과로 대표되는 이미지를 그린 초현실주의 작가다. 사과는 방 전체를 채울 만큼 충분히 큰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바닥에서 천장까지 방을 거의 채우다시피 하는 사과는 질식시킬 정도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흰색으로 장식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사과의 왼쪽 면을 강조한다. 그림 제목은 ‘The Listening Room’이다.

정철훈미술 칼럼니스트 , 고려대 대학원 문화 콘텐츠 박사 수료, 소장전 '리틀 사치전' 개최

감상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가 궁금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사과가 정상 크기이고 방이 미니어처일까? 마그리트의 그림은 초현실주의 운동의 일부다. 그들은 비정상적인 환경이나 맥락에서 일상적인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마그리트도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사과라는 일상적 대상을 이입시킴으로써, 대상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고 방 밖에서 생각하도록 하는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돌처럼 변화하지 않는 부동적인 특성과 무게감을 사과에 입혀, 일반적으로 부패하기 쉬운 사과에 영속성을 부여하고 있다. 마그리트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이 대상(사과)은 존재하지 않는 환상과 존재하는 현실 사이 긴장의 매개체로 사용된다. 그러므로 그에게 사과는 초현실적인 세계를 표현하는 도구일 뿐이지 이것은 현실의 과일, 사과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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