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기에 대규모 투자… 에쓰오일의 전략은? [박철순의 전략 이야기]

2024. 4. 22.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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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의 사례 속 숨은 전략 찾기]

에쓰오일의 생산 시설 / 사진=에쓰오일



2023년 3월 9일 에쓰오일은 총 9조2580억원을 투자하는 초대형 샤힌(Shaheen) 프로젝트 기공식을 울산에서 가졌다. 2018년 4조 8000억원을 투입해 완공한 1단계 정유-석유화학 복합시설을 포함하면 석유화학사업으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위해 에쓰오일은 무려 14조원을 투자하는 것이다. 관련해 다음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자.

왜 에쓰오일은 국내 석유화학업계가 심각한 불황에 신음하고 있는 시점에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를 감행하고 있는가?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석유화학 진출을 본격화하는 에쓰오일,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배경은 무엇이며 프로젝트 완료 후의 에쓰오일은 정유업체인가, 석유화학업체인가?

 

 불황기에 대규모 투자를 하는 이유는?

석유화학업계의 극심한 불황으로 국내 석유화학업체들이 그들의 한계 사업을 매각하고 공장 가동을 중단하고 있는 시기에 에쓰오일은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석유화학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 및 진행하고 있다.

에쓰오일이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위상을 확고히 하고자 하는 영역은 에틸렌, 프로필렌, 프로필렌 옥사이드, 폴리프로필렌, 폴리에틸렌, 파라자일렌, 벤젠 등 석유화학의 기초유분에 해당하는 범용 석유화학(commodity chemical business)이다. 범용 석유화학사업은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경기순환적인 업종(cyclical business)이고, 투자의 시작과 완료까지의 리드타임(lead time)이 수년에 걸친 장기이기 때문에 투자 시점에 관한 의사결정이 매우 중요하다.

경기순환적인 산업에서 기업들은 일반적으로 호황기에는 시장을 과도하게 낙관적으로 예측하여 많은 투자를 하는 반면, 불황기에는 심각한 공급과잉으로 신규 투자를 극도로 꺼리게 된다. 하지만 경기순환적인 산업에서 리드타임이 긴 투자는 호황기가 아닌, 오히려 불황기에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불황기에 투자가 이루어져야 투자 완료 시점이 불황 완료 시점과 일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불황기에 더 많은 반도체 투자를 감행해 온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석유화학산업에서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이유는?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란 현재 생산량에서 추가로 한 단위를 생산할 때 평균 비용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이러한 규모의 경제가 있다가 더 이상 규모의 경제가 발생하지 않는 규모, 즉 생산량이 증가함에 따라 평균 비용이 감소하다가 더 이상 감소하지 않는 규모를 최소효율규모(MES: Minimum Efficiency Scale)라 한다. 규모의 경제가 큰 산업이란 이러한 최소효율규모가 큰 산업을 의미한다. 보통 가변비용 대비 고정비용의 비중이 높은 산업은 고정비용이 추가적인 생산과 함께 지속적으로 분산되어 최소효율규모가 큰 산업, 즉 규모의 경제가 큰 산업이다.

범용석유화학은 대표적인 장치산업으로서 가변비용 대비 고정비용의 비중이 높아 규모의 경제가 큰 산업이다. 이처럼 규모의 경제가 큰 산업에 진입하고자 할 때 기업은 투자규모에 대해 두 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하나는 그 기업이 판매할 수 있는 만큼만 생산하는 것이다(그림 1에서 Q1). 이 경우 기업의 평균 비용은 C1이 된다. 이렇게 진입할 경우 기존 경쟁사는 최소효율규모(그림 1의 MES) 이상을 생산하고 있기에 그들의 평균 비용은 C0이다. 따라서 새로 진입한 기업은 단위당 (C1-C0)의 적자를 보게 되고 이러한 적자는 꾸준히 판매량과 생산량을 늘려 최소효율규모를 넘길 때까지 지속된다. 즉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 적자를 피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 하나의 방법은 기존 경쟁사 대비 비용 열위를 극복하기 위해 최소효율규모(그림1의 MES) 이상의 대규모 투자로 진입하는 것이다. 이 전략적 선택에서 위험은 대규모 투자로 원가 열위는 극복이 가능하지만 생산된 많은 제품을 모두 판매하는 것이 힘들게 된다. 따라서 이 선택의 경우에는 높은 재고 적자(inventory loss)가 불가피하고 이 적자는 오랜 기간 꾸준히 판매를 늘려 최소효율규모 이상을 판매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해소가 된다. 이 역시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의 적자는 불가피하다.

위 두 가지 전략적 선택 중 어떠한 조합으로 진입하더라도 새로 진입한 기업은 장기간에 걸친 대규모의 적자를 피하기 어렵다. 규모의 경제가 큰 산업이 진입장벽(entry barriers)이 높은 이유이다.

이처럼 규모의 경제가 큰 산업에서의 진입장벽을 성공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음의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1) 대규모 투자를 통한 최소효율규모 이상의 생산, 그리고 2) 대량 생산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충분한 시장 확보.

에쓰오일은 위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가? 샤힌 프로젝트에서는 최첨단 기술인 TC2C (Thermal Crude-to-Chemicals)를 세계 최초로 상용화하여 상대적으로 단순화된 공정과 높은 에너지 효율을 통해 평균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따라서 에쓰오일은 그들의 평균비용곡선 (그림1의 붉은 색 그래프)이 석유화학 산업 전체 평균비용곡선 (그림1의 푸른 색 그래프)보다 아래에 위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최소효율규모 이상의 생산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샤힌 프로젝트를 통해 첫번째 조건을 충족시킬 뿐 아니라, 이때 그들의 평균 비용 (Cs)은 기존 경쟁사의 비용 (C0)보다 오히려 낮아 경쟁사 대비 원가우위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두번째 조건에 대해 에쓰오일은 대량 생산된 범용석유화학 제품을 국내외에서 충분히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모회사인 사우디 아람코 (Saudi Aramco)의 자회사 사빅 (SABIC)과의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해외 판매처를 확보함으로써 투자 위험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 정유를 넘어 석유화학으로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 추세에 따라 향후 정유업은 중장기적으로 정체되거나 축소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에쓰오일은 정유업에 치우친 현재의 사업포트폴리오(정유 82%, 윤활유 6%, 석유화학 12%)에서 석유화학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여 에너지 화학기업으로의 위상에 걸맞은 사업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자 하는 전략적 과제를 가지고 있다. 샤힌 프로젝트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것으로 프로젝트가 완료되는 2026년이면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비중은 현재의 12%에서 25%로 획기적으로 확대된다(그림 2 참조).



이는 에쓰오일 사업포트폴리오의 수직 계열화 또는 수직적 통합(vertical integration)을 더욱 강화하는 전략이다. 수직적 통합이란 기업이 그들 제품의 투입요소(inputs)를 생산하는 산업으로 진입하거나(후방 수직적 통합), 그들 제품을 사용, 유통 또는 판매하는 산업으로 진출하는(전방 수직적 통합) 전략이다. 자동차 회사가 투입 요소인 철강을 생산하는 제철업으로 진출한다면 이는 후방 수직적 통합이고, 자동차 판매를 위한 판매 대리점 사업을 자체적으로 구축 및 운영한다면 이는 전방 수직적 통합의 예이다. 따라서 정유업에서의 정제 제품인 나프타(Naphtha), LPG, 부생가스 등을 원자재로 석유화학 기초 원료인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사업으로 진입하는 것은 에쓰오일이 전방 수직적 통합을 추구하는 것이다.



 에쓰오일은 정유업체인가, 석유화학업체인가?

수직적 통합을 하는 이유는 시장을 통한 거래비용(transaction cost)이 높은 경우, 즉 시장실패(market failure)가 있을 경우 해당 거래를 시장에서 하는 것보다 이를 조직 내부에서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직적 통합의 일차적 목적은 수직적 가치사슬상의 사업으로 진출함으로써 기존 핵심 사업의 경쟁력 향상을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제너럴모터스(GM)가 GM파이낸스 설립을 통해 금융업을 수직적 통합하는 이유는 금융업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금융업을 함께 영위함으로써 고객이 차량을 구매할 때 필요로 하는 금융지원을 원활히 하여 기존 사업인 자동차 사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에쓰오일이 기존 정유업에서 원유 정제 과정에서 생산되는 나프타, LPG, 부생가스 등을 원료로 하여 에틸렌, 프로필렌 등 기초유분을 생산하는 석유화학산업으로 진출하는 일차적인 목적은 정유제품의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함으로써 기존 핵심 사업인 정유업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지 석유화학에서의 성공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이다. 즉 에쓰오일의 주 사업(primary business)은 여전히 정유업이고 석유화학은 주 사업인 정유업을 위한 수단인 부수 사업(secondary business)인 것이다.

류열 에쓰오일 사장은 “샤힌 프로젝트는 석유화학 비중을 획기적으로 높임으로써 에쓰오일의 사업포트폴리오를 보다 균형적으로 가져가고자 하는 목적과 더불어 정유제품의 안정적 판매처 확보를 통한 정유업의 경쟁력을 높이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에쓰오일의 주 사업과 부수 사업은 바뀔 수도 있다. 즉 에쓰오일의 정유업은 주 사업이 아니라 석유화학사업을 위한 수단, 즉 원료사업으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고 예측하였다. 이는 GM의 금융업 진출이 자동차 사업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자동차 사업을 GM 금융 사업 경쟁력 향상을 위한 수단으로 삼겠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핵심 사업을 위한 부수 사업으로 수직적으로 통합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이러한 주 사업과 부수 사업의 위치를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기업의 획기적 경쟁력 향상을 가능하게 하는 혁신적인 전략을 수립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이와 같이 수직적 가치사슬상의 주 사업과 부수 사업의 우선순위를 바꿔보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2026년 이후 에쓰오일의 미래는 매우 궁금하고 기대된다.


박철순 IESE Business School Visiting Professor; Shizenkan University Honorary Professor; 제18대 & 제19대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학장 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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