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록 쓰는 ‘눈물의 여왕’…그대로인 듯 변화한 K드라마[김희경의 컬처 인사이트]

2024. 4. 22.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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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tvn



재벌, 시한부, 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과거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통속적인 요소들이다. 그런데 지난 3월 첫 방영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엔 이 모든 것이 한데 들어가 있다.

그럼에도 ‘눈물의 여왕’은 ‘시청률의 여왕’이 되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2회 기준 시청률은 20.7%로 ‘도깨비’(20.5%)를 제치고 tvN 역대 드라마 가운데 2위에 올랐다. ‘눈물의 여왕’을 쓴 박지은 작가의 4년 전 작품인 ‘사랑의 불시착’(21.6%)과는 단 1%포인트 차이이다. 앞으로도 여러 회차가 남은 만큼 가뿐히 1위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반응이 뜨겁다. 넷플릭스의 비영어권 시리즈 부문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며 미국, 일본 등 68개국에서 톱10에 올랐다.

통속적이고 익숙한 설정들로 가득한 ‘눈물의 여왕’. 그런데 왜 국내외 시청자들은 열광하는 걸까? 이 작품엔 대중의 달라진 시청 패턴 등을 고려한 다양한 전략과 배치가 담겨 있다. 변화하지 않은 듯, 변화를 반영한 드라마인 것이다. 최근 국내 드라마 시장이 급격히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 이 작품을 계기로 다시 시장이 조금씩 살아날 수 있을까. 시장 구조를 개선하는 등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덕분에 분위기가 전환되고 성공 전략까지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장르물 전성시대에 꺼내든 판타지 카드

‘눈물의 여왕’에 대한 기대는 방영 전부터도 높았다. 박 작가는 앞서 ‘사랑의 불시착’뿐 아니라 ‘별에서 온 그대’, ‘푸른 바다의 전설’ 등 흥행작을 잇달아 내놓으며 한류 열풍의 중심에 섰다.
그가 내놓은 작품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끌 만한 충분한 요인을 갖추고 있다. 그 비결은 ‘판타지’라는 장르적 특성에 있다. 남북한 남녀, 외계인, 인어 이야기 등 박 작가의 전작들엔 판타지가 가득하다. 현실성은 부족하지만 사랑에 대한 환상을 충족시켜 주며 큰 인기를 얻은 것이다.
이번엔 외계인이나 인어에 비해선 현실적인 편이다. 하지만 전작들 못지않게 판타지적 요소가 곳곳에 담겨 있다. ‘눈물의 여왕’은 재벌 3세이자 백화점 사장인 홍해인(김지원 분)과 시골 출신의 변호사 백현우(김수현 분) 부부가 다시 사랑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현실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대부분 사람들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다른 세상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로맨스 판타지는 기본적으로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기 때문에 진입 장벽이 매우 낮은 편이다. ‘사랑의 불시착’부터 ‘눈물의 여왕’, ‘도깨비’까지 tvN 드라마 역대 1~3위 순위인 것만 봐도 로맨스 판타지는 다양한 세대와 성별의 시청자가 즐긴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요즘 같은 장르물 전성시대에 역행하는 듯 보이지만 오히려 빛을 발하게 됐다. OTT가 발전하면서 학교폭력이나 정의의 문제, 사회 불평등 등 현실에 기반한 장르물이 쏟아져 나오게 됐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많이 나왔고 시청자들은 작품 감상 전후로 늘 긴장해야만 했다. 여기에 점점 싫증을 느끼고 있던 중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는 ‘눈물의 여왕’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고 있다. 아름답고 예쁜 이야기가 펼쳐지고, 보다 보면 재미까지 있으니 쉽고 친근하게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배신과 복수 이야기도 나오지만 과도하지 않은 수준에서 전개되기 때문에 특별히 머리를 쓰며 추리를 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인지 ‘뇌빼드(뇌를 빼놓고 보는 드라마)’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고 이 같은 장르적 특성에만 기대지도 않고 다양한 차별화 전략을 펼쳐보인다. 우선 ‘눈물의 여왕’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 자체를 다르게 잡았다. 드라마는 홍해인과 백현우가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아니라 이미 결혼한 지 3년이 지나고 이혼 위기에 부딪힌 순간부터 시작된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이에 대해 “많은 K드라마들이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만 ‘눈물의 여왕’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들이 다시 서로에게 설렘을 느끼면서 잊고 지냈던 사랑의 기억을 더듬어 가고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남편을 보고 심장이 왜 뛰죠? 부정맥인가요?”라는 대사처럼 부부가 다시 설렘을 느낀다는 것 자체에 일부 판타지적 요소가 들어가 있지만 그럼에도 차별화된 설정으로 시청자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클리셰(진부한 설정이나 표현)와 역클리셰를 적절히 혼합한 것도 큰 효과를 발휘했다. 이 작품은 요즘 드라마답지 않게 클리셰를 노골적으로 부각시킨다. 결혼으로 재벌가에 입성한 신데렐라 스토리, 시한부 설정으로 사랑과 삶의 소중함을 깨닫는 모습 등은 과거 한국 드라마에서 수차례 반복되어 온 클리셰에 해당한다. 심지어 어린 시절 백현우가 홍해인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다는 설정으로, 실은 이 부부가 하늘이 정해준 강력한 운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소 억지스럽기까지 한, 아주 오래전의 드라마 화법에 가깝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클리셰를 통한 익숙함을 바탕으로 삼으면서도 역클리셰를 통한 변주를 더한다. 백현우를 포함해 퀸즈그룹의 사위들이 총동원돼 제사상을 준비하는 장면, 홍해인이 백현우를 붙잡기 위해 헬기를 타고 시골로 가 “네 눈에서 눈물 안 나게 할게”라며 청혼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고정된 성역할을 바꿈으로써 참신하게 다가간 것이다. 미국 타임지 역시 “K드라마가 그 무엇보다 잘하는 것은 장르를 혼합해 신선함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눈물의 여왕’은 익숙한 요소와 참신한 요소를 결합함으로써 이를 해냈다”고 보도했다.


 한 회차만 해도 주요 사건이 가득

대중의 콘텐츠 시청 패턴이 크게 달라진 점을 적극 반영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이 작품엔 개연성이 떨어지는 느슨한 설정들도 일부 담겨 있다. 특히 재벌가 사람들이 너무 쉽게 계략에 빠지고 자리를 빼앗긴다는 점에서 의구심을 자아낸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 때쯤 곧바로 다른 사건들이 한가득 펼쳐지면서 이를 무마시킨다. 매회 주요 사건을 대거 배치해 속도감 있게 전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12회 한 회차 안에만 백현우의 이혼 취소 요청, 남편을 속였던 천다혜(이주빈 분)의 귀환, 비자금의 행방 추적, 홍만대 회장(김갑수 분)의 죽음, 어린 시절 백현우가 홍해인을 구한 이야기 등 여러 사건이 몰아치듯 전개됐다. 조금이라도 지루하거나 단점을 발견하면 곧장 시청을 중단하는 요즘 시청자들의 패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작품 속 사건의 공백을 아예 차단하는 전략이다.

여기에 매회 끝부분에 ‘에필로그’를 넣어 그 효과를 극대화한다. 에필로그엔 과거 회상 등을 넣어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가 하면, 작품 속 숨은 비밀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를 통해 시청자가 작품이 끝날 때까지 기대 심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한다. 결국 ‘눈물의 여왕’은 속도감 있고 꽉 찬 전개로 몰입도를 높여 유튜브 쇼츠 등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시선까지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최근 국내 드라마 시장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작비가 치솟고 광고 단가는 하락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편성조차 받지 못한 작품도 수두룩하다. 국내에서 편성되는 드라마는 2022년 141편에서 지난해 123편으로 감소했다. 올해는 100여 편에 그칠 전망이다. 어렵게 방영까지 된다 하더라도 긴 호흡의 드라마를 잘 보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무관심 속에 잊혀지는 작품이 많다.

이처럼 분위기가 크게 악화된 상황에서 흥행작의 탄생은 분명 반가운 일이다.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류까지 기대하게 한다. 나아가 대중이 반응하는 지점을 파악하고 성공 공식까지 배울 수 있어 의의가 있다. 물론 모든 콘텐츠가 ‘눈물의 여왕’과 같은 방식을 채택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이 작품처럼 변화된 시청 패턴을 면밀히 파악하고 나름의 차별화된 전략으로 다가간다면 조금씩 길이 열리고 시청자의 사랑을 받게 되지 않을까.

김희경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 영화평론가 pressi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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