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경쟁’ 유통업, 미래는 어디에?

주하은 기자 2024. 4. 2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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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기업들 사이 ‘절약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팬데믹 시기 단행한 투자의 여파다. 경기침체와 중국 이커머스의 한국 진출로 유통 기업들은 더욱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됐다.
3월29일 이마트 서울 용산점에서 고객들이 장을 보고 있다. 2023년 이마트는 분사 이래 최초로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3월25일, 유통 대기업 이마트가 전사적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1993년 창사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그동안 개별 점포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한 적은 있었지만, 전사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확대한 적은 없었다. 이마트 측은 “수년간 이어진 어려운 시장 환경 속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려 무거운 마음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하게 됐다”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마트의 희망퇴직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2013년 정점을 찍은 이래로 이마트 영업이익은 꾸준히 감소해왔다. 지난해에는 독립법인으로 분사한 후 최초로 연간 영업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마트는 영업손실의 주범으로 자회사인 신세계건설을 지목했다. 신세계건설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인해 지난해 영업손실 1877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본업인 유통업 역시 부진하긴 마찬가지였다. 유통부문 영업이익은 2020년 2913억원을 기록했지만, 지난해에는 1419억원에 그쳤다(〈그림〉 참조). 이마트는 3월20일 사업보고서를 통해 “저비용 구조를 확립하여 수익성 개선을 지속해나가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인력 감축을 이미 암시해둔 것이다.

유통 1위 기업이던 이마트가 어쩌다 이런 난관에 봉착하게 된 것일까. 지난 몇 년간 이마트가 마주한 위기와 그에 대응하는 전략은 현재 한국 유통업이 처한 단면을 보여준다. 오래전부터 예견된 변화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이를 돌파할 뾰족한 수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유통업이라는 말로 뭉뚱그려 말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통업 내에서도 업태는 매우 다양하다. 오프라인 유통업 내에서도 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등은 취급 상품부터 주 고객층까지 차이가 크다. 온라인 유통업(이커머스) 역시 마찬가지다.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나 11번가처럼 중개만을 담당하는지, 쿠팡처럼 직접 재고를 보유하고 판매하기도 하는지(풀필먼트)에 따라 구체적 형태가 나뉜다. 또한 CJ올리브영처럼 특정 분야 상품에만 집중해 판매하는 ‘버티컬 플랫폼’도 존재한다.

각 유통 채널별로 업태가 다른 만큼, 시대 변화에 따라 이들이 받는 영향도 상이한 모습을 보였다. 2010년대 이후 가장 큰 타격을 입은 분야는 역시 대형마트다. ‘4인 가족’ 해체 흐름은 대형마트 매출을 야금야금 잠식했다. 평일 저녁 또는 주말에 함께 비교적 큰 규모로 장을 보는 가족 단위 고객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늘어나는 1인 가구는 시간을 내서 대형마트에 가기보다는, 편의점에서 소량 구매하는 것을 선호했다. 매출 기준으로 볼 때 대형마트는 2021년부터 3년 연속으로 백화점·편의점보다 작은 규모를 기록 중이며, 그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이커머스의 성장처럼 모든 유통 기업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도 존재했다. 2016년 유통업 전체 매출의 31.8%를 차지했던 온라인 유통업은 지난해 50.5%를 기록하며 처음으로 오프라인 유통업을 앞질렀다. 특히 2020년부터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은 소비자들의 소비 패턴 변화를 가속화했다. 디지털 기기가 익숙하지 않아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던 고객들에게 팬데믹은 온라인 쇼핑을 경험하는 계기가 됐다. 팬데믹 국면이 마무리됐음에도 한번 온라인 구매에 익숙해진 고객들은 쉽사리 오프라인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팬데믹 시기 불붙은 인수 경쟁

팬데믹 시기에 유통 대기업들은 과감한 투자를 결단했다. 오프라인 중심이던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해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찾고자 했다. 대규모 인수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것은 이마트였다. 2021년 한 해 동안 성사시킨 인수만 네 건이었다. 오픈마켓 업체 G마켓과 옥션을 보유한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 약 3조4000억원이라는 큰 금액을 투자했다. 그 외에도 스타벅스코리아 지분을 늘리고, 온라인 의류 쇼핑몰 ‘더블유컨셉’을 인수하기도 했다. 이 시기 이마트가 투입한 자본은 총 4조원이 넘는다. 이마트는 투자자금 확보를 위해 서울시 성동구 본사 건물을 매각하기도 했다. 그룹의 명운을 건 선택이었다.

이 중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은 경쟁이 치열했다. 당시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기 위해 국내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가 모두 뛰어들었다. 오프라인 유통업의 미래가 점점 불투명해지던 시기, 온라인 유통업 시장 점유율 3위를 기록 중이던 이베이코리아 인수는 오프라인 유통 기업들에게 정답처럼 여겨졌다. 최종 승자가 된 이마트는 이베이코리아 인수가 사업 구조를 온라인과 디지털로 전환하기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 평가했다. 당시 신세계그룹 측은 “미래 유통은 온라인 강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단순히 기업을 사는 게 아니라 시간과 기회를 사는 거래”라고 자평했다.

이베이코리아 인수를 통해 이마트는 미국의 월마트(Walmart)가 걸은 길을 따라가고자 했다. 2016년 월마트는 신생 이커머스 업체 ‘제트닷컴’을 36억 달러(약 4조9000억원)에 인수했다. 비록 4년 뒤 제트닷컴을 폐쇄하긴 했지만 월마트 최고경영자 더그 맥밀런은 제트닷컴 인수를 계기로 이커머스 전문가를 영입하고, 새로운 고객층을 월마트로 유입시켰다며 가치 있는 인수라고 평가했다. 이마트 역시 비슷한 목표를 내비쳤다. 당시 신세계그룹은 이커머스 관련 인력과 IT 인프라 확보가 그룹의 ‘디지털 전환’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마트에 비해 규모는 훨씬 작지만, 다른 유통 대기업 역시 온라인·비대면 흐름에 맞춰 투자를 단행했다. 롯데쇼핑은 2021년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중고나라 인수에 투자자로 참여했다. 초기 투자 비용으로 297억원을 집행하고, 다른 투자자가 가진 지분 일부도 취득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을 보유했다. 편의점 GS25를 운영하는 GS리테일은 당시 급성장하던 배달 시장을 겨냥해 배달 플랫폼 요기요에 3076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채 3년이 지나지 않아 유통 대기업들의 투자는 대체로 ‘승자의 저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다수 피인수 기업이 시너지 효과는커녕 지속적인 영업손실을 겪었기 때문이다. 롯데쇼핑이 인수한 중고나라는 2021년 11억원이던 영업손실이 2022년 94억원으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도 영업손실 38억원을 기록했다. 롯데쇼핑은 올해 6월 만료되는 중고나라 잔여 지분에 대한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여부도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GS리테일이 인수한 요기요는 2022년 1115억원, 2023년 654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 3사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투자를 단행한 이마트 역시 연이은 인수가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베이코리아를 인수하며 이마트는 SSG닷컴·옥션·G마켓 세 온라인 쇼핑 채널을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실적은 기대 이하다. 주식회사 G마켓(구 이베이코리아)은 2021년 12월 인수된 직후 한 달간 영업이익 43억원을 기록했지만 바로 이듬해부터 영업손실로 전환했다. 2022년 654억원, 2023년 320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흔들리고 있는 이마트에 부담을 안겼다.

월마트 사례와 달리, 기존 온라인 쇼핑 채널인 SSG닷컴에 가시적 성과가 나타난 것도 아니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SSG닷컴은 1100억원 내외 영업손실을 꾸준히 기록했다. 2023년 9월, 인수 결정을 주도한 강희석 이마트·SSG닷컴 전 공동대표의 갑작스러운 해임은 대규모 투자 결정이 실패였다는 점을 신세계그룹 차원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설상가상으로 2023년부터 가시화된 경기침체는 유통업계에 더 큰 시련을 안기고 있다. 물가가 상승하면서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은 점차 줄어들고, 사람들이 소비에 돈을 아끼기 시작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경제 여건이 나아질 것이란 예측이 나오지만, 여전히 물가상승률이 높아 소비가 빠른 시간 내에 회복되기는 쉽지 않다.

기업 안팎으로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유통업계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성장을 포기하더라도 수익성을 강화하겠다는 결정이다. 기업 입장에서 성장과 수익성은 놓칠 수 없는 목표이지만, 때로 이 두 목표는 상반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상품을 ‘최대한 싸게, 최대한 많이’ 파는 것을 본질로 삼는 유통업에서는 더욱 그렇다. 손실을 감수하면서 물건을 싸게 팔면 매출이 늘어나 성장에는 도움이 되지만, 수익성에는 해를 끼칠 때가 많다. 누적된 손실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유통업계는 수익성을 제1 목표로 삼겠다고 천명했다. 고객에게 물건을 더 비싸게 파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자연스레 수익성 추구는 비용 절감 노력으로 이어졌다.

성장보다 수익성 추구하는 유통 기업들

GS리테일은 지난해 온라인 쇼핑몰인 GS프레시몰 사업에서 완전 철수를 결정했다. 2022년 1106억원 적자를 기록하고, 온라인 쇼핑몰 시장 경쟁이 점차 격화하자 적자 사업을 과감히 정리한 것이다. 흥국증권은 1월30일 GS리테일의 2024년 실적을 예측하며 GS프레시몰 사업 철수로 연 500억원 이상 영업이익이 개선될 것이라 전망했다.

2022년 6월29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구조조정, 임금삭감 롯데쇼핑 규탄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롯데쇼핑은 비교적 이르게 비용 절감을 시도했다. 2021년부터 3년간 각 사업부문에 대해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해 고정비용을 줄였다. 계열사 간 상품 통합 매입도 도입했다. 2022년부터 롯데슈퍼와 롯데마트가 함께 상품을 구입함으로써 구매력을 키워 더 저렴하게 물품을 공급했다. 일단 롯데쇼핑은 목표로 한 수익성을 회복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영업이익 5084억원을 달성하며 당기순이익 기준 7년 만에 흑자 전환을 달성했다.

2023년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마트 역시 롯데쇼핑의 전략을 따라가고 있다. 전사 직원 대상 희망퇴직에 더해, ‘통합 매입’ 역시 도입할 예정이다. ‘온라인과 디지털로의 전환’을 목표로 삼겠다던 사업 구조 역시 수정되는 모양새다. 전임 강희석 대표가 이마트 대표와 SSG닷컴 대표를 겸임했던 것과 달리, 한채양 현 이마트 대표는 이마트에브리데이(슈퍼마켓), 이마트24(편의점) 대표를 겸임하고 있다. 오프라인 실적을 중점적으로 챙기겠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유통 기업들의 수익성 추구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2021년을 전후로 유통 기업들이 각종 기업을 인수한 금액은 결과론으로 보면 무리한 지출이었다. 비대면 기조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나름 이유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산 가격이 폭등하고 인수 경쟁이 심해진 상황에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인수해버렸다. 이는 필연적으로 실적 악화로 이어졌고, 성장은 물론 당장의 생존까지 불투명하게 만들었기에 구조조정이 필수 불가결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이 전략에는 한계도 명확하다. 서용구 교수는 “과거에 광업이 그랬듯 누가 더 잘 절약하는지를 경쟁하다 보면 산업에 비전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해서 인수전에서 놓쳐버린 ‘본업 경쟁력’을 다시 강화하는 게 해법이 되기도 어렵다. 단순히 깨끗한 매장에 좋은 상품 들여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2월22일 서울 을지로3가역에 설치된 알리익스프레스 지하철 광고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유통 기업들의 경쟁은 ‘매장에 와야만 할 이유’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귀결할 수밖에 없다. 대형마트와 달리 지속적 성장을 하고 있는 백화점의 성공 사례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롯데쇼핑은 잠실 롯데몰을 ‘맛집의 성지’로 만들겠다는 전략 아래 인기 맛집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의도에 위치한 더현대서울은 내부를 대형 수목원으로 조성해 지난해 국내 백화점 중 가장 빠르게 연매출 1조원을 달성했다. 모두 편리한 온라인 쇼핑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가 찾아올 이유를 적극적으로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부터 테무, 알리 등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하며 국내 유통업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쿠팡이라는 온라인 유통업 절대 강자를 상대하는 데에도 힘겨운 유통 기업들에게 또 하나의 위기가 찾아온 셈이다. 유통 대기업들은 하나같이 수익성 강화를 좇으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지만, 이들 기업이 준비될 때까지 시장이 기다려주지 않을 가능성도 높다. 2024년 유통산업백서 발간사에서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유통업을 “기술, 사회, 소비자 변화에 빠르게 대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변화 대응업’”이라고 말했다. 변화는 성큼 다가왔고, 기업들은 여전히 3년 전 ‘대응’의 후과를 치르고 있다.

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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