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이끌려 선택한 한국行, 하고 싶던 연구 맘껏” 뇌의 심장 제어 메커니즘 밝히는 中수학자

대전=이병철 기자 2024. 4.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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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과학에 반하다]⑩판 리 IBS 의생명수학그룹 선임연구원 인터뷰
생명의 비밀 수학으로 풀어내는 전산생물학자
한류와 연구 주제가 한국행 선택한 계기
“언어적 장벽, 행정 절차는 적응에 장애물”
“국제화 우수 사례인 OIST 잘 살펴야”

최근 10년새 중국은 미국과 함께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한 지 겨우 40여년이 지났으나 미국에 근접할 정도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그 비결은 중국의 해외 인재 유치 정책이다. 중국은 해외에서 공부한 중국 과학자에게 많은 혜택을 제공한다. 한때 중국의 인재 유치 정책이 기술 유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그만큼 중국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했다는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한국은 최근 해외 석학을 유치해 선진 기술과 노하우를 배우자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인 연구자의 복귀를 유도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일자리와 처우 모두 미국에 비해 부족하기 때문이다.

판 리(Pan Li) 기초과학연구원(IBS) 의생명수학그룹 선임연구원은 중국에서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지만 한국행을 선택했다. 미국 정부 연구기관인 국립보건연구원(NIH)에서 독성학을 연구하던 중 평소 관심 있던 연구 과제가 있는 IBS로 자리를 옮겼다. 생명 현상을 수학으로 풀어내는 ‘전산생물학자’인 그는 뇌와 심장의 상호작용을 연구할 기회에 한국에 매료됐다고 했다.

지난 11일 대전 유성 IBS 본원에서 만난 리 연구원은 “중국은 자국인과 외국인 과학자 모두에게 매력적인 선택지지만, 한국에서의 경험이 도움될 것으로 생각했다”며 “2년간의 계약직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연구를 할 수 있는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류 열풍으로 친숙해진 한국 문화도 그가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다. 한국행을 고민하던 그에게 한류팬이던 아내의 강한 설득이 있었다. 그는 “요즘 한국은 미국 할리우드처럼 강한 문화적 파급력을 갖고 있다”며 “한국에서의 삶이 궁금했다”고 말했다.

판리(Pan Li) 기초과학연구원(IBS) 선임연구원은 지난 11일 대전 유성 IBS 본원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평소 관심있던 연구를 할 수 있는 기회 덕분에 한국에 왔다"며 "한류를 통해 접한 한국 문화도 한국행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대전=이병철 기자

–미국에서 이미 좋은 기관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학자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우연히 IBS의 채용 공고를 봤다. 뇌와 심장의 상관관계를 수학으로 연구하는 전산수학자를 채용한다는 공고였다. 평소에 워낙 관심이 있던 주제였던 만큼 관심이 갔다. 수학적인 시스템에서 뇌와 심장은 비슷한 점이 많은 기관이다.

평소에 관심 있던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2년 계약직이지만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도 한국과 인연이 있었나.

“사실 한국에 와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여행으로도 한국을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K-콘텐츠를 통해 한국에 대한 호기심은 항상 갖고 있었다. 아내가 한국 문화를 좋아해 한국으로 가자는 의견을 줬다. 실제로 한류 열풍 덕분에 미국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금도 시간이 나면 아내와 함께 콘서트를 보러 다닌다.”

리 연구원은 수학을 도구로 생명 활동을 연구하는 ‘전산생물학자’다. 마치 지구 기후를 모사하는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들 듯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설명하는 방정식을 개발하는 것이 이들의 관심 분야다.

–한국에서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

“심장의 작동 방식과 심혈관 질환의 이유를 수학적으로 이해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심혈관질환은 전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주요 사망 원인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가 심장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심장 박동은 뇌에 의해 조절되는데 그 과정은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뇌가 어떻게 심장을 제어하는지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것이 내 일이다.”

심장의 박동이 조절되는 과정. 동방결절(SAN)에서 시작한 녹색 화살표 순서를 따라 전달되는 신호가 심장의 박동을 결정한다. 전산생물학에서는 이 과정을 수학 방정식으로 표현해 시뮬레이션 모델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 중이다./프론티어스 인 피직스

–일반적인 생물학 연구와 전산생물학 연구는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실제 세포나 동물이 아닌 컴퓨터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심장을 하나의 복잡한 시스템으로 보고 이를 수학 방정식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어떤 요소들이 심장 박동에 영향을 주는지 주변 환경의 영향을 알아내는 것이다.

전산생물학의 가장 큰 장점은 손쉽게 실험을 반복하면서 실제 생물학 실험 결과를 보완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령 컴퓨터를 사용하면 하룻밤 만에 1만번 이상의 시뮬레이션을 할 수 있다. 생물학 실험에서는 불가능한 양이다.”

–심장 연구에서 전산생물학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은 심장의 박동 속도를 결정하는 각각의 세포를 모델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심장 페이스메이커’라고 부르는 세포다. 이번 연구가 완성된다면 심장 박동이 외부 자극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볼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밤에는 심장이 천천히 뛰고 낮에는 빠르게 뛴다. 뇌가 일주기를 인식하고 시간에 따라 심혈관질환의 위험성을 분석하는 일도 가능해질 것으로 본다. 가령 새벽 4시에 갑작스럽게 심장 마비로 사람들이 숨지는 사례가 있는데 그 이유를 보다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게 된다.”

–한국 생활을 시작한 지 약 1년째다. 생활면에서 어려운 점은 없나.

“언어적인 문제가 가장 크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해 처음에는 적응이 어려웠지만, 결국은 외국인 연구자들 스스로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다. 한국 생활 초반에는 복잡한 절차로 적응이 쉽지 않았다. 외국인으로서 외국인등록증(ARC)을 받아야 하는데, 수개월이 넘게 걸렸다.

ARC 카드를 받기 전까지 은행 계좌를 만들거나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것도 불가능했다. 다른 외국인 과학자들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을 것이라고 본다.”

–미국에서 오랜 기간 활동했다. 한국 과학계와 문화적으로도 차이가 있나.

“한국 생활이 길지 않고, 교류가 많지 않아 모든 면에서 알지는 못한다. 다만 한국은 상대적으로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같은 동아시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문제다. 성공적인 국제 협력을 위해서는 다양한 배경, 다른 문화와 시각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IST)는 연구기관 국제화의 우수 사례로 꼽힌다. 공식 언어를 영어로 채택해 언어적인 문제를 최소화하고 외국인 과학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다./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

–한국은 최근 해외 과학자를 유치하려고 하지만 해외에서 공부한 한인 과학자들도 돌아오려 하지 않는다.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보나.

“일본의 오키나와과학기술대학원대학(OIST)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과거 OIST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그곳의 문화와 성과가 인상적이었다. 설립 초기부터 국제 연구소로 설계해 유전학 분야 석학인 조너선 도판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를 영입했다. 공식 언어로는 영어를 사용하고 국제 협력을 위한 다양한 장치를 갖췄다.

물론 충분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기본이다. 중국은 해외 연구자와 자국 연구자를 유치하기 위해 독립적인 연구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자들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도 가장 기본이 돼야 한다.”

–한국의 연구 지원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나는 전산생물학자인 만큼 수학과 컴퓨터과학 분야에서는 한국이 우수하다고 본다. 여러 분야와 협력을 강조하면서 생물학, 화학, 물리학 연구 사업을 통해서도 많은 지원이 이뤄진다.

이런 방식은 연구자 개인뿐 아니라 국가의 과학기술 발전에도 좋은 전략이다. 화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전통적인 실험 방법에 의존하지만 컴퓨터를 활용하면 혁신적인 발견이 가속화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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