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담보로 월급·후원 거절” 설경구→황정민 사랑한 ‘학전’ 김민기[어제TV]

서유나 2024. 4. 22.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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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캡처
SBS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캡처
SBS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캡처

[뉴스엔 서유나 기자]

조승우, 설경구, 황정민 등 배우들이 '학전'과 김민기를 사랑하고 존경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공개됐다.

4월 21일 첫 방송된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 1부에서는 33년 만에 폐관하는 대학로의 상징 소극장 학전과 학전을 설립한 대표이자 '아침 이슬' 작곡가 김민기의 이야기가 공개됐다.

이날 김민기를 잘 아는 배우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김민기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굉장히 낯설어했다. 황정민, 장현성은 입을 모아 "처음이다. 그만큼 선생님이 싫어하니까. 선생님이 카메라 앞에 서는 것도 싫어하시고", "본인 얘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며 '뒷것'을 자처하는 김민기에 대해 전했다.

황정민은 자신에게 '학전'은 "20대를 온전히 바쳤던 극장"이라며 "그 20대를 지금의 와서 보니 나날들을 허투루 쓰지 않았더라"고 말했다. 이는 설경구가 "오합지졸"이라고 표현할 만큼 경험 없는 신인들을 연극 무대에 세우기 위해 김민기가 기울인 노력 때문. 설경구조차 뮤지컬 노래도 춤도 아무것도 할 줄 모를 때 성실해 보인다는 이유로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에 캐스팅 됐다.

'힉전'은 김민기가 음반 수입을 쏟아부어 세운 소극장이었다. 김민기는 그럼에도 '지하철 1호선' 초연에 경험도 없는 신인들을 배우로 발탁하는 과감한 선택을 했고 설경구는 "(이런)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초연을 하려고 했지.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모험을 하셨다는 생각이 든다"고 회상했다. 김민기는 배우들에게 발성, 발음, 몸 쓰는 법은 물론 박자 세는 법, 악보 보는 법까지 전부 기초부터 가르쳤다.

'지하철 1호선'은 처음엔 반응이 좋지 않았다. 황정민은 "망했다"고 이를 한마디로 표현했다. 전부 신인배우들에 홍보도 안 된 상황 관객은 스무 명 남짓이었다는 것. 황정민은 이에 홍보를 위해 "저희가 입간판을 두르고 대학로를 매일 돌아다니고 그랬다. 매일 그게 일이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곧 '지하철 1호선'은 입소문만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해 나중엔 무려 객석 점유율 130%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학전'이 배우, 직원들에게 특별한 건 기존 극단들과 다른 투명한 운영 때문이었다. 당시 '학전'에는 계약서를 작성하고 수익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원칙이 있었다. 안내상은 "전화가 온다. 6개월 일하고 10만 원 받았다더라. 되게 유명한 사람이다. 그땐 그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학전'에 오니 계약을 하는 거다. 개런티 계약이었다. 기가 막혔다"고 밝혔다.

배우지만 당시 '학전'에서 총무부장 일도 했던 강신일은 "'학전'이 처음으로 시도한 게 각 공연자들과 계약하는 거였다. 연극이 얼마나 어렵고 배고픈지 알아서 참여하는 공연자들에게 최저 금액을 보장하고 기여도에 따라 약간 차등이 있긴 했지만 크지도 않았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다 나눠줬다. 참여하는 배우들이 관객이 얼마나 되고 수입이 얼마나 들어오는지를 아니까 투명한 행정이었고 민주적이었다"고 설명을 더했다.

장현성은 "그때 대표였던 김민기 선생님은 40대 중반쯤이었다. 20대 초반 아들, 딸같은 배우들이 대표의 월급보다 훨씬 많이 받아갔다. 그게 굉장했다. 그리고 그걸 나눠주시는 날 얼굴이 너무너무 밝았다. '자 이번달에도 여러분들이 저를 이기셨습니다!'라고 하셨다"고 떠올리기도 했다.

'학전'을 통해선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조승우, 이정은, 안내상, 김대명, 이선빈 등 수많은 성공한 배우들이 탄생했지만 김민기는 33년 내내 신인배우들을 무대에 세우는 원칙도 고수했다. 배우 이황의는 "학전이라는 말 자체가 배울 학 자에 밭 전 자다. 학전은 못자리다. 다 크면 내보내고 또 모 새로 심고. 농사짓는 마음으로 하셨던 것 같다. '잘되면 얼른 나가. 뒤돌아보지 마'라고 말씀하셨다"고 과거의 김민기의 뜻을 대신 전했다.

문제는 메르스, 코로나19 등을 거치며 찾아온 재정난이었다. 전배수와 이정은은 "늘 선생님을 만나러 오시는 분들은 9시에 나오는 분들이셨다. 경기고, 서울대 출신들, 기득권. 이에 (김민기가) 되게 쉽게 돈을 마련해 연극할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절 후원을 받지 않으셨다", "대기업이 돈 준다고 할 때 투자를 받으시라고 했는데도 완고하셨다"고 전했다. 설경구는 심지어 김민기가 배우, 직원들에게 줄 돈이 없어 "일산 아파트가 잡히셨다"며 이에 돈을 안 받겠다고 하자 김민기가 화를 냈던 일화도 공개했다.

배우들은 "언젠가 나이드시면 그만한다고 하셨으니 언젠가 멈추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제 생각보다 그 날이 빨리 온 것 같다"며 "방에 혼자 계시면서 외로우셨을 텐데"라며 힘들게 버텨왔을 김민기를 짐작하고 울컥했다.

이후 김민기의 근황이 공개됐다. 아픈 몸으로도 학전의 마지막 공연을 관람한 김민기는 고생한 배우들에게 "오랜만이다. 마지막 공연했는데 다시 할지 이걸로 끝일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며 조금은 희망적인 미래를 기약해 뭉클함을 자아냈다.

한편 가수 겸 공연연출가 김민기는 현재 암 투병 중이다. 김민기가 운영하던 소극장 '학전'은 재정난과 그의 건강 악화로 개관 33년 만인 지난 3월 15일 폐관했다. 폐관에 앞서 50여 명의 배우, 가수, 예술인들이 자발적으로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관심과 응원을 보냈으나 김민기의 뜻에 의해 끝내 문을 닫았다.

뉴스엔 서유나 stranger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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