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없던 美하원의장, ‘어쩌다 처칠’ 됐다... 찬사 쏟아진 이유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4. 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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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우크라 지원안 통과시켜… 리더십 주목
與野서 칭송, CNN “어쩌다 처칠이 됐다”
당내 강경파는 반발, 트럼프 입장 주목
공화당 소속 마이크 존슨 연방 하원의장이 16일 미국 워싱턴DC 의회의사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미국 의회가 20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내용이 담긴 950억 달러(약 130조원) 안보 예산안을 통과시킨 가운데, 반년 간 표류하던 법안을 매듭지은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존슨은 이른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 불리는 당내 강경파 반발을 무릅쓰고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워싱턴 정가에서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여야 간 협치란 평가와 함께 존슨을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을 승리로 이끈 전쟁 영웅 윈스턴 처칠(1874~1965) 전 영국 총리에 비유하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 스타덤에 오른 무명의 ‘최약체’ 하원의장

지난 20일 미국 워싱턴DC 의회의사당 앞에서 한 시민이 우크라이나 지원을 호소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AP 연합뉴스

1972년 루이지애나에서 태어난 존슨은 주 의회를 거쳐 2017년 연방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이후 내리 4선을 했지만 존재감이 없었는데 지난해 10월 탄핵된 케빈 맥카시에 이어 연방 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되면서 비로소 중앙 정치권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당시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로 떠오르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추인 아래 이뤄진 것이라 임기를 시작한 후에도 친(親)트럼프 성향 강경파 의원들에 휘둘리며 줏대가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도 그를 ‘트럼프 거수기’로 봤고 무게감이 없는 역대 최약체 하원의장으로 비판했다. 존슨이 사석에서 고된 일정, 수면 부족 등을 호소하며 “그만두고 싶다”는 뜻을 피력하기도 했다.

존슨 본인도 과거에는 “미국이 더 이상 외국에 군사적 지원을 하지 말고 손을 떼야한다”는 고립주의 성향에 가까웠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2022년 5월 미 의회가 400억 달러짜리 지원 법안을 통과시켰을 때 여기에 앞장서서 반대한 공화당 의원들 중 한 명이 존슨이었다. 하지만 하원의장이 된 이후 만난 사람들, 이 과정에서 접한 일급 기밀들이 그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존슨과 두 차례 가진 만남에서 우크라이나 전황(戰況)에 대해 상술하며 지원을 호소했고, 빌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여러 차례 브리핑을 통해 그 당위를 뒷받침했다. 이밖에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 러시아와 마주하고 있는 에스토니아의 카자 칼라스 총리, 데이비드 카메론 영국 외무장관 등이 존슨을 붙잡고 왜 지금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을 해야 하는지 설득했다고 한다.

이후 존슨은 주변에 “나는 이제 지역구 출신이 아니라 하원 전체와 이 나라 전체를 대표하는 정치인이 됐다”며 기조 변화를 시사했다. 공화당 동료인 맥스 밀러 의원이 가족의 3분의 2가 홀로코스트(유대인 학살) 때 독일 나치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실을 말하며 눈물로 미국의 지원을 호소한 것이 결정적 장면이었다. 존슨은 지난주 법안 통과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선 입술을 파르르 떨며 “이기적인 결정을 내릴 수도 있었지만 옳은 일을 하는게 맞다고 믿는다”며 “지금은 중요한 시간이다. 역사가 우리가 한 일을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중국·이란 등을 “세계 번영과 안보를 위협하는 위협”으로 평가하며 “우리가 지금 등을 돌리면 참담한 결과를 낳을 것이다. 국제적인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하원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존슨의 아들이 올 가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할 예정인데 그는 “거칠게 말하자면 나는 우크라이나에 미국 청년들 보다 총알을 보내는 게 더 낫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 여야서 리더십 주목… 트럼프 입장이 관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오른쪽)이 지난 12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러라고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왼쪽이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 /AP 연합뉴스

이번 지원 법안 통과를 전후로 보인 존슨의 언행 변화에 워싱턴 정가에선 초당적인 환영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텔레그램 메세지에서 존슨을 콕 집어 “역사가 올바른 궤도 위에 계속 있게 해줘서 특별히 고맙다”고 했다. 공화당 소속인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은 “존슨이 본인과 그의 커리어보다 국가의 이익을 앞세운 진정으로 용기있는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로 칸나 의원은 “나는 존슨과 많은 이슈에 있어서 동의하지 않고 그에게 비판적이지만, 존슨은 올바른 일을 했고 하원의장직을 계속 유지할 자격이 있다”고 했다. CNN은 “어쩌다 하원의장이 된 존슨이 예상 밖의 처칠이 돼버렸다”고 평가했다.

다만 앞으로 존슨의 정치 행보가 가시밭길일 가능성이 큰 것도 사실이다. 법안은 통과했지만 여기에 반대한 공화당 의원이 112명이나 된다. 존슨이 법안 통과의 반대 급부로 얻어낸 것이 거의 없고, 대선 7개월을 앞둔 시점에 바이든의 가장 큰 외교·안보 분야 골칫거리를 해결해준 셈이 됐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당내 불만도 상당하다고 미 언론들은 전했다. 존슨에 대한 해임을 추진중인 마조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이 나라의 수치”라며 “이미 존슨의 레임덕이 시작됐다”고 했다. 20일 법안 통과 직후 민주당 의원들이 의사당 안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흔드는 장면이 ‘바이럴(viral)’한 영상이 돼 소셜미디어(SNS)에 퍼지고 있는데, 상할대로 상한 매가 지지자들의 감정에 기름을 끼얹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존슨의 운명은 대선 후보로 보수 진영 여론 형성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트럼프가 어떤 입장을 내느냐에 달려있다. 트럼프는 지난 12일 본인의 마러라고 자택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안팎으로 시달리던 존슨을 향해 “나는 하원의장을 지지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이날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11월까지는 존슨이 의장직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트럼프 본인은 물론 핵심 지지층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극도로 거부 반응을 보여왔기 때문에 이번에 통과된 법안에 대해 그가 어떤 새로운 메시지를 낼지가 관심 거리다. 한편 트럼프는 20일 노스캐롤라이나주 윌밍턴에서 유세를 개최하려 했지만 강풍과 우박 등 위험한 날씨가 예고돼 30분 전 이를 취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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