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병도 막지 못한 父子의 꿈, 주변 60명이 밀어줬다

박정훈 기자 2024. 4.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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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종훈씨, 아들 배재국씨 휠체어 밀며 보스턴 마라톤 완주

온몸의 근육이 경직되는 난치병인 ‘근이영양증’을 앓는 배재국(28)씨와 아버지 배종훈(58)씨가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 마라톤을 완주했다. 재국씨가 탄 휠체어를 아버지가 밀며 뛰었다. 부자(父子)가 보스턴 마라톤에 도전하고, 완주하기까진 여러 고비가 있었다고 한다. 이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부자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부자는 “그분들이 안 계셨으면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포기는 없다 - 지난 15일(현지 시각)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 출전한 배종훈씨가 아들 배재국씨의 휠체어를 밀며 15마일(약 24㎞) 정도 지난 지점에서 한 외국인이 카메라를 들이대자 풀쩍 뛰며 포즈를 취했다. /배종훈씨 제공

배씨 부자의 마라톤 도전은 지난 2012년 시작됐다. 근이영양증 진단을 받은 재국씨가 “미국을 횡단하고 싶다”고 했고, 아버지 종훈씨가 그 꿈을 위해 마라톤을 시작했다. 재국씨는 2005년 “병 치료 방법이 없어 기껏해야 10년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은 상태였다.

마라톤을 뛰던 부자의 사연이 알려지고, 주변의 본격적인 도움이 시작된 건 지난 2019년부터다. 전국 각지의 마라톤을 뛰며 알게 된 30여 명이 ‘팀 재국 후원회’를 만들었다. 아들 재국씨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한라산 백록담 등정을 이뤄주기 위해 모였다. 팀 재국 후원회는 지난달 서울 관악산 트레일런 대회를 열어 부자의 보스턴 마라톤 경비 200여만원을 마련했다. 후원회장인 황태인(53) 사단법인 방촌황희연구원 사무총장은 “우리가 종훈씨처럼 영웅적인 모습을 직접 보이진 못한다”며 “하지만 이 부자를 조금이나마 도와 이 땅의 수많은 재국이가 희망을 갖고 양지로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배씨 부자와 마라톤 대회에서 인연을 맺은 1959년생 마라토너들의 모임 ‘59황금복도야지’도 후원에 나섰다. 이들은 작년 3월 관악산 트레일런 대회를 개최해 모금한 800여만원으로 재국씨의 낡은 휠체어를 교체해줬다. 재국씨는 지난 2015년 특수 제작한 휠체어로 마라톤에 참가했는데, 병이 진행되면서 신체구조가 변형돼 새 휠체어가 필요했다고 한다. 59황금복도야지 관계자는 “혼자 달리기도 어려운 마라톤 풀코스를 아들이 탄 휠체어를 밀고 달린다는 건 아버지의 자식을 위하는 애틋한 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배씨 부자가 앞으로도 열심히 달려 밖에 나오지 못하고 안에서 생활하는 많은 장애인에게 힘을 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배씨 부자 후원한 '59황금복도야지' - 배재국·배종훈 부자의 보스턴 마라톤 출전 후원을 위해 작년 3월 서울 관악산에서 기부금 대회를 연 '59황금복도야지' 회원들의 모습. /59황금복도야지

김영근(58) 아이닥안경 대표는 이 부자를 위해 200만원 상당의 변색 고글을 내놨다. 김 대표는 “언제 생을 마감할지 모르는 아들을 휠체어에 태우고 달린다는 건 정말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라며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 않고 달리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안경 쓰는 사람들의 달리기 모임인 ‘유리알 속 맑은 세상’ 회원들과 배씨 부자에게 137만원을 기부할 예정이다. 작년에 회원들이 달린 거리를 1㎞당 100원으로 계산한 금액이다. 조웅래 조웅래나눔재단 이사장은 대회 참가비 500달러를 보탰고, 대전속편한내과 이봉수 원장도 미국행 경비로 200만원을 기부했다. 이렇게 60명가량의 주변 사람들이 배씨 부자를 도왔고, 그 수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 종훈씨는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함께 도전에 나섰는데 마라톤 최고의 역사를 가진 곳 중 하나인 보스턴에서 많은 함성과 응원을 받았다”며 “무엇보다 환한 미소로 완주했다는 것이 아직 꿈만 같다”고 했다. 배씨 부자의 이번 보스턴 마라톤 완주 기록은 4시간 52분 46초로 국내 대회 3시간 30분 38초에 못 미친다. 종훈씨는 “보스턴 현지 아이들을 비롯해 재국이에게 간식을 주고 하이파이브를 해주는 등 응원해주시는 분이 많아 추억을 더 쌓게 해주고 싶어 일부러 속도를 내지 않았다”며 “달리는 중엔 몰랐는데 나중에 찍힌 사진을 보니 재국이가 환하게 웃는 얼굴을 하고 있어 뿌듯했다”고 했다.

배씨 부자의 다음 목표는 재국씨의 마지막 꿈인 미 대륙 횡단이다. 아버지 종훈씨는 “아들의 마지막 남은 꿈을 이뤄주기 위해 작년에 제주도에서 하루에 50km씩 뛰는 연습도 했다”며 “여건만 허락된다면 꼭 도전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보스턴 마라톤 완주 직후 미국 현지에서 배씨 부자와 만난 여행사 ‘오픈케어’ 임성빈 대표는 “미 대륙 횡단 꿈을 꼭 이루라”며 이 부자에게 200만원을 건넸다고 한다.

종훈씨는 “‘투병 중인 재국이가 응원을 받으며 마라톤에 나서면 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부모와 같은 심정으로 많은 분이 도와주신 것 같다”며 “앞으로 더 행복한 모습으로 달려주는 게 그분들을 위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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