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선, 아시아 여성 첫 베를린 필 지휘… “관객 반응 모를 정도로 집중”

김성현 기자 2024. 4. 2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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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필 정기 연주회 지휘

“연습할 때부터 감동했고 가슴이 벅찼습니다.”

지난 18~20일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하모닉과 세 차례 연속 연주회를 마친 지휘자 김은선(44)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140여 년 역사의 베를린 필하모닉은 푸르트벵글러·카라얀 같은 지휘의 거장들이 이끌었던 명문 악단이다. 김은선은 21일 베를린 현지 영상 인터뷰에서 “이틀간 연습한 뒤 곧바로 셋째 날부터 사흘간 연속 공연하는 일정이었는데도 베를린 필은 다음 날 더 빼어난 연주를 보여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줬다”고 했다.

지휘자 김은선(왼쪽)이 20일 베를린 필하모닉 연주회를 마친 뒤 관객들의 박수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은 베를린 필 악장인 일본 바이올리니스트 가시모토 다이신. /베를린 필하모닉

아시아 여성 지휘자 가운데 정기 연주회에서 이 악단을 지휘한 건 김은선이 처음이다. 광복 이후 한국 지휘자의 이 악단 정기 연주회 지휘는 KBS교향악단 계관지휘자인 정명훈(71) 이후 두 번째. 김은선은 베를린 필의 강점으로 “단원들 간의 호흡과 의사소통, 어떤 소리든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유연성”을 꼽았다. 그는 “지휘자가 단원들에게 재량과 여유를 주면 더 많은 역량을 뿜어내고, 그 에너지는 지휘자에게 다시 고스란히 전달된다. 왜 베를린 필이 세계 최정상인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김은선은 베를린 필 데뷔 무대에서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교향곡 3번과 쇤베르크(1874~1951)의 ‘기대’를 골랐다. 라흐마니노프가 러시아 후기 낭만주의의 절정이라면 쇤베르크는 까다롭고 난해한 현대음악의 탄생을 알리는 작곡가다. 김은선은 “두 작곡가의 나이는 불과 1년 차이지만 음악적 언어는 무척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양쪽을 보여줄 수 있었다”고 했다. 마지막 연주회는 전 세계에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됐다. 관객 반응이 시종 뜨거웠지만, 그는 “무대에 입장할 때에는 제가 해야 할 것에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박수 소리는 크게 들리지 않았다”며 웃었다.

김은선의 베를린 필 데뷔는 ‘젊은 동양 여성 지휘자’라는 삼중의 어려움을 딛고 이겨낸 ‘사건’이기에 의미가 적지 않다. “20여 년 전에 지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저 자신도 ‘내가 지휘를 해도 되는 걸까’라고 자문했을 만큼 남녀의 직업 구분이 존재했다. 정치와 회사 등 어떤 분야나 사회 현상에서도 변화에는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지만 지금은 부지휘자로 활동하는 젊은 여성 지휘자가 늘어서 저 자신도 놀란다”고 전했다.

김은선은 연세대 음대에서 작곡을 전공하다가 대학 4학년 때 학내 오페라 공연에 참여하면서 지휘와 인연을 맺었다. 그는 “지휘는 악보라는 종이에 쓰여 있는 2차원적 정보를 3차원적으로 구현하는 일이기 때문에 결국은 악보 공부로 귀결된다. 그렇기에 어느 악단을 지휘하든 마음가짐은 같다”고 말했다. 2018년 휴스턴 오페라극장의 수석 객원 지휘자로 임명됐고, 2019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극장의 첫 여성 감독으로 지명됐다. 그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매년 바그너와 베르디의 오페라를 한 작품씩 하는 것이 목표”라며 “올해는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도 초연 200주년을 맞아서 지휘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영어·독일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프랑스어 등을 구사하는 ‘노력파’로도 유명하다. 2019년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를 지휘할 당시에는 입으로 체코어 아리아를 따라 부르는 모습으로 미국 음악계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번 베를린 필 연주회를 앞두고 현지 인터뷰에서도 그는 능숙한 독일어로 “오페라의 대본뿐 아니라 관현악적 뉘앙스까지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언어는 중요하다. 지금도 여러 언어를 매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선

세계 음악계에서 ‘최초’ 기록을 잇달아 쓰고 있는 한국 여성 지휘자. 2019년 미 샌프란시스코 오페라극장 음악 감독으로 임명됐다. 이 극장 첫 여성 감독이자 첫 동양인 감독이라는 두 가지 기록을 동시 작성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음대에 유학한 뒤 2008년 스페인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오페라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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