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로 상처받은 마음, 종이꽃 접으며 치유”

이소정 기자 2024. 4.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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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는 밤낮으로 울었는데 여기 나오면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15일 서울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기억다방인 '반갑다방'에서 만난 김운자 씨(73)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치매 진단을 받고도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만 했었다"며 "남편이 아플 때 자식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나까지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센터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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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구, 치매 어르신 사회활동 지원
카페 작은 화단엔 종이꽃 전시
자존감 향상 등 프로젝트 지원키로
15일 서울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반갑다방’에서 김운자 씨가 직접 내린 커피를 손님에게 내주고 있다(왼쪽 사진). 은평구는 센터 어르신들이 직접 접은 색종이 튤립 꽃으로 꾸민 ‘한뼘 미술관’을 반갑다방 옆에 열었다고 21일 밝혔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처음 치매 진단을 받았을 때는 밤낮으로 울었는데 여기 나오면서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죠.”

15일 서울 은평구 치매안심센터 기억다방인 ‘반갑다방’에서 만난 김운자 씨(73)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김 씨는 능숙하게 위에서 세 번째 찬장 선반에서 컵을 꺼내 원두 커피를 내렸다. 김 씨는 “치매 환자도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남은 인생을 살고 싶다”고 말하며 직접 만든 커피를 내밀었다.

치매 어르신에게 사회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반갑다방에선 센터 내 경증 치매 어르신 7명과 치매 가족 1명 등 총 8명이 일하고 있다. 치매 어르신들이 편하게 근무할 수 있도록 찬장 서랍장에 어떤 물건이 어느 위치에 들어 있는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그는 “2010년에도 치매가 의심된다며 한 병원에서 뇌파 검사를 받아 보자 했지만 극구 반대했다가 2012년 은평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처음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당시 환갑이 넘은 나이였지만 치매 진단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남편을 떠나보낸 지 몇 년 되지 않았을 때였다. 김 씨는 “치매 진단을 받고도 가족들에게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가슴앓이만 했었다”며 “남편이 아플 때 자식들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나까지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 센터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수업을 들어도 머리에 남는 게 없었다. 뭘 배워도 잠시뿐이었다. 집에 돌아가면 그날 배운 것들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 김 씨에게 친구이자 의사 선생님이 되어준 것은 바로 색종이였다. 애써 배웠던 한글도 다 잊어버리고 하고 싶은 말조차도 제대로 생각이 나지 않을 때, 색종이만큼은 접었다 편 자국대로 차근차근 다시 접으면 예쁜 꽃으로 피어났다. 그는 “공부는 아무리 하려 해도 머리에 입력이 안 되지만 색종이는 폈다 다시 접어도 제자리로 간다”며 “지금은 아침이나 저녁이나 수저만 놓으면 색종이를 접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김 씨가 접은 색종이들은 기억다방 옆 작은 화단인 ‘한뼘 미술관’으로 꾸며졌다. 한뼘 미술관은 카페에서 활동하는 어르신들이 함께 접은 튤립 종이꽃 1080개로 꾸며져 있다. 센터 관계자는 “종이접기는 손가락을 움직여 두뇌를 자극해 치매 증세를 늦추고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집중력을 기를 수 있어 치매 어르신 인지 활동에 좋은 활동”이라며 “여름에는 장미를 접어 새롭게 화단을 꾸밀 예정”이라고 말했다.

치매 안심센터를 다니며 가장 달라진 점으로 김 씨는 자신감을 꼽았다. 처음에는 접시 하나 꺼내려면 찬장을 다 열어야 했지만, 지금은 손님 수대로 접시를 꺼내 커피 내릴 준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력도 많이 개선됐다고 했다. 은평구는 치매 어르신의 사회 활동을 늘리고 자존감을 향상시킬 수 있는 활동을 확대하는 등 반갑다방과 센터의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주민의 치매 인식 개선에 노력한다는 방침이다.

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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