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깎은 밤송이

경기일보 2024. 4.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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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햐~. 깎아 놓은 밤송이처럼 생겼구먼.”

나도 모르게 이 소리가 절로 나왔다. 얼마 전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오는 국적기에서 만난 스튜어드(남성 승무원)를 바라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던 말이다.

똑똑해 보이고 잘생긴 청년을 뜻하는 ‘깎은 밤송이’가 등장한 사연은 중국 쓰촨의 삼성퇴유적박물관과 시안의 진시황 병마용에서부터 시작한다.

삼성퇴 유적은 거대한 청동 가면과 진귀한 황금 가면, 그리고 우주인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인상의 청동 두상들이 불타거나 파손돼 구덩이 속에 파묻힌 채 발견된 유적으로 그 기원과 의미가 미스터리한 고대 유적이다.

중원의 문화와는 아주 이질적인 이 삼성퇴 문화를 하나의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이데올로기에 녹여 내라는 시진핑의 지시와 관심에 힘입어 엄청난 규모의 박물관이 지난해 8월 문을 열었고 주변은 배후 단지 개발을 위한 대규모 건설사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의 문화재 활용 현실을 떠올리며 은근히 자존심이 상하는 대목이었다.

청두와 시안을 3시간40분 만에 주파하는 쾌적한 고속전철로 도착한 시안의 진시황 병마용갱은 여전히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영생을 꿈꿨던 진시황의 소망이 돈다발로 환생해 후손들 지갑 속에서 불멸의 삶을 살고 있는 게 아닐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곳을 처음 방문했을 때 살아있는 듯 생생한 병마용에 주눅이 들 정도로 압도되는 기분이었다면 이번에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흙으로 빚은 수천 명의 병사들이 지키는 진시황 무덤을 만드는 데 무려 38년의 세월이 걸렸다고 한다.

천하를 호령하며 영생을 꿈꿨던 황제였지만 결국 다른 이들과 똑같은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던 그저 평범한 한 인간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까. 그리고 그런 무지막지한 조상을 두지 않아 또 얼마나 다행이란 말인가.

그러나 장기하의 노랫말처럼 정말로 한 개도 부럽지 않았던 것만은 아니다. 문화유산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중국 정치지도자들의 관심과 지원만큼은 솔직히 부러웠다.

하루하루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현재를 뒤로하고 복잡미묘한 감상에 젖어 올라탄 비행기에서 그 깎은 밤송이 같은 스튜어드를 만났다. 서글서글한 눈웃음을 지으며 유창한 중국어와 영어로 손님을 맞이하는 그 당당한 모습은 중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늠름한 자태였다. 정말로 자랑스러웠다. “우리나라는 역시 사람이 자원이구나” 하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거가 끝났다. 오늘도 밤낮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는 수많은 ‘깎은 밤송이’들이 오롯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선출직 공무원들이 많아지기를 고대한다. 국민이 낸 귀한 세금을 맘껏 쓰는 사람들은 바로 선출직 공무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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