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수준 학교까지 年 1000억 지원하는 ‘글로컬 대학’ 후보로

표태준 기자 2024. 4.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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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곳 중 21곳 신입생 다 못 채워
“정치권 입김에 자격 미달도 통과”
김중수 글로컬대학위원장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2024년 글로컬대학 예비지정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뉴스1

올해 정부의 ‘글로컬 대학’ 예비 지정 평가를 통과한 대학 33곳 중 64%가 작년 신입생을 다 채우지 못한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글로컬 대학은 정부가 혁신하는 지방대에 5년간 1000억원씩 지원하는 사업이다. 작년 대학 14곳(10팀)을 선정했고 올해에도 최종 심사를 거쳐 8월 10팀을 선정한다. 교육부는 작년 2월 이 사업 목적을 “지역 성장을 견인할 역량을 갖춘 대학을 선정해 세계적 대학으로 육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 예비 지정을 통과한 대학 상당수는 신입생 충원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입생 충원율(입학 정원 대비 실제 모집 인원)은 대학의 경쟁력을 판단할 때 최우선으로 이용되는 지표다.

교육계에서는 “취지와 달리 경쟁력이 떨어져 폐교될 수순의 학교까지 국고가 투입될 모양새”라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는 2014년부터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해, ‘부실대 살리기’라는 비판을 받았던 ‘대학재정지원’ 선발 범위를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대학 퇴출을 유도해 왔다. 글로컬 대학 사업이 이러한 기조에 반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비판이다.

올해 정부의 ‘글로컬 대학’ 예비 지정을 통과한 대학 33곳(20팀) 중 신입생 충원율이 99% 미만(작년 기준)인 곳은 21곳이었다. 대개 충원율이 99% 미만이면 신입생 모집에 실패한 것으로 본다. 다른 대학에 추가 합격하거나 개인 사정 등으로 최종 입학 등록을 하지 않는 학생들이 있어 대부분 대학 충원율은 99~100% 사이다.

그래픽=김하경

교육부는 작년에 대학을 합치는 ‘통합’이나 홀로 지원하는 ‘단독’ 형태만 지원을 허용했다. 법인을 합치기 어렵고,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사립대에 불리한 구조였다. 그런데 올해부터 인력·물자를 공유하는 ‘연합’ 형식으로도 지원이 가능하게 규정을 바꿨다. 사립대 참여가 늘며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들 참여도 늘어난 것이다.

연합 형식에는 13개 사립대와 전문대가 도전장을 냈다. 이 중 10곳이 작년 신입생 정원 모집 미달이었다. 사립대는 동명대(신입생 충원율 87%), 신라대(80.1%), 동신대(91.3%), 초당대(94.9%) 등이다. 전문대는 목포과학대(95.8%), 울산과학대(95.1%), 대구보건대(97.4%), 광주보건대(90.2%), 대전보건대(82.8%) 등이다. 이 중에는 정부 지원금을 타내려 실제 학교에 다니지 않는 ‘유령 학생’을 등록해 신입생 충원율을 조작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대학도 있다. 3년 전 교육부 감사에서 법인 임원이 교비 수십억 원을 빼돌리는 등 비리 38건이 쏟아져 논란이 된 곳도 포함됐다.

단독 지원한 사립대 8곳도 절반이 작년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건양대(94%), 경남대(86%), 인제대(94.6%), 대구한의대(97.3%) 등이다. 단독 지원한 국립목포대도 신입생 충원율이 86.7%였다. 통합 형식으로 지원한 대학 중에서는 원광대(사립·95.4%), 원광보건대(전문·88.5%), 승강기대(전문·72.1%), 창원대(국립·98.2%) 등이 신입생을 다 채우지 못했다. 한국사학진흥재단 관계자는 “사립대의 경우 학생 등록금 의존도가 높아 신입생 충원율이 90% 미만이면 향후 재정적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김한수 경기대 경영학부 교수는 “솔직하게 몇몇은 1000억원을 쏟아부어도 세계적 특성화 대학이 될 역량 자체가 없는 데다 재정도 열악해 내일 문 닫아도 이상이 없는 학교들”이라며 “이런 대학에 국가 예산을 투입해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사업으로 변질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했다.

일각에선 정치권 압박에 교육부가 ‘자격 부족’ 대학까지 선정되도록 규정을 완화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글로컬 대학 사업에는 최대 3조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이 때문에 전국 시·도 지자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들이 자기 지역 대학을 선정하라고 정부에 전방위 로비를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정부가 글로컬 대학 예비·최종 선정 대학을 발표할 때마다 각 지역 의원들이 “제가 교육부와 중앙 부처에 지정 필요성을 소상히 설명한 결과” “제가 정부 고위 관계자를 설득했다” 등 본인 치적으로 홍보한 경우가 상당수였다.

교육계에서는 “대학들도 언젠가 없어질 운명인 걸 알지만, ‘퇴로’가 없다 보니 어떻게든 지원 사업을 타내 버티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현행법상 사립대는 문 닫으면 학교 재산이 모두 국가로 귀속된다. 이에 설립자 입장에선 어떻게든 버티려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학이 폐교 때 빚을 청산하고 남은 재산 일부(30%)를 설립자에게 ‘해산 장려금’으로 주는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한 전직 대학 총장은 “글로컬 대학 사업은 경쟁력 확실한 10곳만 추려 전폭적인 지원을 하는 게 훨씬 실효성이 있을 것”이라며 “각 지역에 선심 쓰듯 돈을 뿌리자는 게 사업 목표가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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