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찬구의 스포츠 르네상스] 맨유·한화·LA에인절스… 지는 팀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심찬구 스포티즌 대표 2024. 4. 2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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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에는 승패가 따른다. 그럴법한 승패도 있지만, 별로 질 이유가 없는 팀이 실망스러운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팀 중 하나로 불리는 앨릭스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침체에 빠진 이유, 오타니 쇼헤이가 LA 에인절스에서 미래를 찾지 못하고 이적을 결심한 이유 등을 살펴보면 우연한 패배는 없다.

그래픽=이철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퍼거슨 시절 EPL 최초로 트레블(프리미어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달성한 명문이다. 재정이나 선수 자원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데 2023년 기준 10년째 무관이다.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가 유럽 최강으로 성장한 것과 대조된다. 맨시티 CEO 페란 소리아노에게 직접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우리는 전문가들이 경영한다. 그러나 맨유의 이사진은 오래된 팬들이다.” 스페인 국적의 소리아노는 FC바르셀로나를 ‘훌륭한 축구팀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발전시킨 축구 산업의 대표적 경영자이고, 삼고초려 끝에 맨시티로 영입된 인사다.

2018년 맨유의 이사회는 레전드인 솔셰르를 차기 감독으로 택했다. 축구 변방 노르웨이에서 지도자 경력의 대부분을 보냈고, 2014년 웨일스 카디프 시티 FC에서도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는 등 빅리그 감독으로서 검증이 되지 않았던 그다. 솔셰르 선택의 기준은 맨유 시절 명성과 유대감이었다. 결국 그는 경험 부족을 드러내며 2021년 리그 6위로 급락, 경질되었다. 전문성 없는 리더십의 정서적 의사 결정의 결과물이다.

연고주의는 시야를 좁히고 선택의 폭을 없앤다. 수원 삼성은 K리그 전통의 명문이다. 그런데 2010년부터 ‘리얼블루’ 순혈주의를 선언했다. 구단을 잘 아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수원 출신에게만 감독을 맡겼다. 새로운 생각이 자라날 공간이 없었고, 토론과 자성이 불가능한 문화가 자리 잡았다. 이후 수원은 더 이상 K리그의 강자가 아니었고, 결국 2023년 2부리그로 강등되었다. 삼성그룹의 지원 축소를 탓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2023년 기준 250억원 운영비는 여전히 K리그1 평균 이상이다.

철학을 망각하고 팬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승패 이상의 가치도 잃어버린다. 전북현대는 K리그 최다승인 9승, 특히 2017~21까지 리그 5연패를 하는 등 K리그에서 절대 1강이었다. 그러나 최근 전북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하다. 풍족한 예산과 국가대표급 선수단을 고려하면 경기력과 결과가 실망스럽다. 2022년에는 팬들이 저조한 성적과 전북의 철학으로 자리 잡은 ‘닥공’ 즉, 특유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이지 못하는 데 대한 항의의 뜻으로 집단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중 하나가 ‘무음 응원’이었다. 이에 맞서 구단은 서포터스의 응원 소리가 녹음된 음향을 틀었고, 팬들은 이를 무시와 선전포고로 받아들였다. 팀은 팬들의 마음을 잃었고, 모기업 이미지도 타격을 받았다. 결국 자동차 판매왕 출신 대표이사는 팀을 떠나야 했고, 수비적인 축구를 추구하던 감독 역시 사임했다.

각각의 분야에는 고유의 가치 체계와 소통의 방식이 존재한다. 그리고 타 영역에서 온 리더가 이를 존중하지 않을 때 전체가 흔들린다. K리그에서 존재감 있는 한 수도권 팀은 재무통 리더가 취임한 후 진통을 겪었다. 재무의 언어로 축구산업의 가치체계와 무형의 자산이 설명되길 원했다. 그러나 실전 자원이 아닌 유망주의 연봉도, 미래의 팬이자 선수 자원인 유소년 클럽에 대한 투자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해외리그에서 원 소속팀으로 복귀, 국내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며 기여하고자 했던 레전드의 선의도 빛이 바랬다. 축구의 언어를 통한 설득이 쉽지 않자 조직원들은 소극적으로 임했고 구단은 강등위기를 겪는 등 암흑기를 보냈다.

권력의 맥락 없는 개입은 동기의식을 저하시키고 현장 리더의 손발을 묶기 마련이다. 최근 흥국생명 배구단은 모기업 고위 인사가 선수 기용, 전술 지시 등을 수시로 해왔음이 감독 경질 뉴스를 통해 드러났다. 2020~21시즌 월드스타 김연경 영입에도 불구하고 2등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 모기업 브랜드는 오히려 손상되었다. 이렇듯 현장 리더의 권위를 실추시켜 조직력을 훼손해 저조한 퍼포먼스를 내는 팀들이 의외로 많은 것은 스포츠에서 비밀도 아니다.

소수의 스타에만 의존해서는 이길 수 없다. LA에인절스는 스타의 명성만으로는 MLB 최고 수준이다. 2012년 마이크 트라우트가 데뷔했고, 2018년 오타니 쇼헤이를 영입했다. 2012년 알버트 푸홀스를 당시 기준 1루수 역대 최대 규모 10년 2억4000만달러로 영입하는 등 기록적 투자도 하였다. 그러나 정작 팀 성적은 초라하다. 최근 10년간 포스트시즌 진출은 2014년 1회뿐, 2015년 이후 한 번도 승률이 5할에 미치지 못했다. 몇몇 대형 스타는 있었지만 나머지 포지션이 상대적으로 형편없었다. 트라우트는 대가 없이 소모되고 있고, 오타니는 2023시즌 종료 후 팀을 떠났다.

성장하는 조직은 경험과 가능성이 조화를 이룬다. 한화이글스는 2019년 최하위 성적을 기록한 직후, 2020년 경영진을 교체하며 젊고 경제적인 팀으로의 리빌딩을 선언했다. 리그 최고의 톱 타자 이용규를 비롯, 김태균 등 베테랑들을 모두 내보냈다. 내부 유망주 위주로 팀을 재편한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2021시즌 이후 한화의 성적표는 전체 10개 구단 중 10위와 9위를 오갔다. 제대로 성장하여 주전으로 자리 잡은 신인은 노시환밖에 없다. 현실도 붙잡지 못했고 미래도 못 만들었다. 신인은 베테랑의 경험을 보고 자라는데 한화에는 이끌어 줄 베테랑이 없었다. 2023시즌 한화가 30대 베테랑 채은성을 6년 90억원에 영입한 것은 리빌딩의 실패를 불과 2년 만에 자인한 것에 다름없다.

리더의 오만과 무지, 전문성 없는 리더십의 정서적 의사결정과 연고주의, 철학을 망각하였기에 벌어지는 실패를 아쉬워하는 팬들의 목소리까지 무시하는 리더십, 고유의 가치체계에 대한 존중의 부족, 현장 리더십에 대한 과도한 개입, 몇몇 뛰어난 개인에게만 의존하는 균형감 없는 조직, 베테랑 퇴출 후 따르는 경험 부족의 위기 등이 패배 방정식의 독립변수들이다. 그리고 이는 반드시 스포츠 승패의 현장에서만 보여지는 현상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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