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 초대석]“전셋값 상승은 퍼펙트스톰… 대비 못하면 3년 뒤도 ‘부동산 대선’”

박용 부국장 2024. 4. 2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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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동산 시장의 ‘닥터 둠’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올 서울 아파트, ―6%∼+2% 움직일것
인플레 못 잡아 월세-전셋값 상승세… 내년 이후 전셋값이 집값 불안 요인
보금자리주택처럼 공공분양 늘리고… 공공 리츠로 시장형임대 공급해야
전세사기, 사회적 재난급 대응 필요
‘부동산 트렌드’ 전문가인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왼쪽)가 9일 서울 종로구의 한 대단지 아파트를 배경으로 올해 서울 집값 전망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서울 아파트 값은 초등학교에서 100m 멀어질 때마다 1200만 원씩 떨어진다”며 “하지만 학생이 줄어 앞으로는 학군의 영향력이 줄고 직장과의 접근성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2021년 서울 집값이 급등할 때 ‘20% 폭락’을 예견했던 한국 부동산 시장의 ‘닥터 둠’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53)가 또 다른 위기의 전조를 지목했다. 서울 전셋값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는 진단이다. 2021년 대선 때처럼 부동산 민심이 정부여당에 다시 등을 돌리게 될 수 있다는 경고다.

김 교수는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정보시스템 석사, 하버드대에서 도시계획·부동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부동산 리서치 회사 PPR에서 일하면서 개발한 가격 예측 모형과 빅데이터 분석을 토대로 2022년부터 매년 국내 부동산 시장을 전망하는 책을 내고 있다. 김 교수와 총선 전인 9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21일 전화 인터뷰를 추가로 했다.》




● “올 서울 아파트값은 보합, 전셋값은 불안”

부동산 시장에서 김 교수는 ‘하박(하버드대 박사) 출신 집값 하락론자’로 불린다. 하지만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AI)인 ‘제미나이’는 “과거 발언이나 논문 등을 살펴보면 단순히 하락론자로 분류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한다. 실제로 그는 그간의 하락론을 접고 올해 서울 아파트값에 대해 “보합세”를 예상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태, 국제 금융시장 등의 충격으로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7%까지 오르면 지난해 2분기(4∼6월)에 비해 약 6% 하락하겠지만, 위기 대응에 성공해 금리가 안정되면 2% 정도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다. 김 교수는 “지금도 유효한 시나리오”라고 말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주택 가격은 보합(0.00%)으로 전환했다. 아파트 가격 하락 폭(0.02%)도 2월(―0.14%)보다 줄었다. 김 교수는 한국 집값 흐름을 보려면 집이 있는 지역(공간 변수)과 투자 시점의 금리(금융변수), 특히 국고채 10년물 금리를 주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요즘 김 교수의 걱정은 다른 데 있다. 그는 “인플레가 오면 월세가 오른다. 인플레를 잡지 못해 월세 대체재인 전셋값이 지금 오르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0개월 연속 3.50%에 묶어두고 있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해 7월 이후 9개월 연속 상승세다.

여기에다 전세 사기 여파로 빌라 전세를 피하는 ‘빌라포비아’ 현상과 부동산 PF 사태 등으로 입주 물량까지 줄어 아파트 전셋값을 밀어 올리고 있다는 진단이다.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3개월 연속 1만 채를 밑돌았다. 서울 강동구 둔촌동에 둔촌주공아파트를 재건축한 1만2000여 채 규모의 올림픽파크포레온이 11월 입주를 시작하면 전셋값 상승세가 다소 주춤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강남구 개포동에 7000채 아파트 입주 물량이 나왔을 때 3개월 정도 영향을 미쳤다”며 “강동 광진 송파 등 인접 지역 전셋값에 6개월 정도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서울 전역에 1년 이상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셋값이 오르면 ‘이 가격에 전세를 사느니 차라리 사겠다’거나 ‘갭투자를 하는 게 낫다’는 사람이 생긴다. 실거주자나 투자자들이 동시적으로 이렇게 판단하는 순간 어떻게 될지 모른다.”

김 교수는 “부동산 사이클이 짧아졌고 소비자들은 똑똑해져 시장이 굉장히 빨리 바뀐다”며 “내년 이후 물가 상승, 주택 공급 부족, 빌라포비아 등이 맞물리면 전셋값 상승이 거의 ‘퍼펙트스톰’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 말기와 같은 집값 폭등세는 없겠지만 전셋값이 매매가를 밀어 올리고, 놀란 청년들이 ‘영끌 투자’에 나서는 악순환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다.

● “부동산 PF 더 일찍 터뜨렸어야”

“부실 부동산 PF를 터뜨리면 토지가격이 떨어진다. 우량한 건설사 대표들이 ‘현금을 쌓아 놓고 있다. 땅값이 떨어지면 들어가서 다 사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대출 연장 등으로 부동산 PF 시장에 개입하면 시장이 움직이지 않는다.”

김 교수는 “당국이 총선을 의식해 부실 PF 정리에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PF 사태 등으로 아파트 건설이 줄어 집값이 상승할 수 있다’는 견해와 ‘시장이 가라앉으면 주택 매도 물량도 늘어 급등할 가능성이 낮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김 교수는 전자에 가깝다.

“토지를 사고 건설 인허가를 받는 데 1∼2년이 걸린다. 인허가를 받고 3∼4년 후 입주 물량이 나온다. 이게 지금 비어 있다. 2025, 2026년 아파트 공급이 적다는 건 다 아는데 그다음 해에도 별로 없다.”

그는 “공공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서 주택 공급 부족을 대비하지 않으면 3년 뒤 대선도 지난번처럼 ‘부동산 대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추진했던 보금자리 주택과 같은 공공 개발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개발이 가능한 공공기관 소유 땅 등을 충분히 확보하는 ‘랜드뱅킹(land banking)’을 추진하고 해당 토지의 용적률 규제 등을 과감하게 풀어 전셋값과 집값이 급등할 때 공공 분양 물량을 대거 공급해 수요를 돌려야 한다는 논리다. 또 중산층이 살 수 있는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기 위한 ‘공공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공기관이 임대료를 통제할 수 있는 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비해 너무 적다. 거대한 공공 리츠를 만들어서 대기업 브랜드의 민간 아파트를 매입하거나 대기업이 개발하게 해 중산층이 살 수 있는 적정한 가격대의 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

그는 “공공 리츠가 100채를 매입하면 거주자 100명이 리츠의 지분을 소유한 투자자이자 거주자가 되는 식”이라며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뉴스테이’가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흐지부지됐다”고 지적했다.

● “전세, 반전세로 단계적 전환해야”

“제자의 친구가 경찰인데도 전세 사기를 당했다. 청년들의 피해는 더 심각하다.”

김 교수는 안식년 때마다 ‘일’을 벌인다. 2015년 안식년 때 부친이 물려준 서울 강남구 역삼동 땅에 청년들을 위한 ‘셰어하우스’(침실은 따로, 부엌과 거실은 공유하는 주택)를 운영하며 공유경제 모델을 실험했다. 올해 1월에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지식의 씨앗을 뿌리겠다”며 유튜브 채널(김경민의 인사이트)을 개설하고 전세 사기 문제를 다루고 있다.

“집주인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세입자가 은행 돈(전세대출)을 빌려와 집주인의 갭투자(집값과 전셋값의 차액을 투자해 주택 매수)를 도와주는 게 현재의 전세 제도다. ”

그는 ‘전세 폐지론자’이다. 전세가 갭투자라는 가수요를 일으켜 집값을 끌어올리고 전세 사기의 빌미를 주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 번에 없앨 수 없다면 ‘반전세’로라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보증금을 집값의 절반으로 제한하자는 것이다. 그는 “전세 사기가 빈발하는 빌라나 정부 지원을 받아 짓는 주택이라도 반전세 제도를 단계적으로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전세 사기를 막으려면 빌라에 대한 가격 정보를 제공하는 플랫폼과 중개사나 분양 대행사에 대한 감시와 처벌을 강화하고 전세 사기 피해자의 채권 선순위 구제 등의 대책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 교수는 “투자자 책임도 있는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피해는 배상을 해준다고 하면서 잘못도 없는 청년들의 전세 사기 피해는 제대로 배상을 해주지 않고 있다”며 “전세 사기를 금융 사기, 조직범죄, 사회적 재난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전세사기피해지원특별법 시행 이후 집계된 전세 사기 피해자는 모두 1만5433명이다.

“북촌 개발 ‘경성 건축왕’… 정세권 기념사업 추진”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귀국한 제대 군인을 위한 대규모 아파트 주택 단지를 개발했다. 그보다 20여 년 빨리 한국 서울에서 규격화된 한옥단지를 개발한 부동산 사업가가 있었다고 하면 미국 도시계획학자들도 깜짝 놀란다.”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서울 북촌 등에서 한옥 주택단지를 개발한 ‘건축왕’ 정세권을 기념하는 사업을 그의 후손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다. 김 교수는 2012년 익선동 한옥의 역사를 연구하다가 정세권을 알게 됐고 유족들을 수소문해 만났다.

정세권은 1920년 ‘건양사’라는 부동산 개발 회사를 세우고 땅을 매입한 뒤 규격화된 한옥을 대량으로 공급해 일본인의 진출을 막은 부동산 개발사업가였다. 서울 북촌 가회동 익선동 등의 한옥단지가 그의 작품이다. 신간회, 조선어학회, 물산장려운동을 후원해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 교수는 “정세권 기념사업회 설립을 위해 작년 10월 총회를 열었고 서울시에 신청서를 냈다”며 “부동산 디벨로퍼(개발사업가)들과 함께 장학사업 등을 추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박용 부국장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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