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다] 우리들의 행복한 노년

김채린 2024. 4. 21.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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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보다 9회] 우리들의 행복한 노년

가죽의 매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습관에 따라 자연스럽게 길들여진다는 데 있습니다.

길이 잘 든 가죽 특유의 중후한 멋이 있죠.


생각해보면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굽이굽이 삶의 길목을 지나며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다룰 수 있게 되고,

그러면서 나만의 매력이 은근히 배어 나오기도 합니다.

시간과 더불어 완성되어 가는 하나의 작품.

나의 노년은 그래서 소중합니다.


고령기를 노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인생의 완성기라고 부릅니다.

완성기야말로 신나게 웃으면서 살고 싶잖아요?

그렇게 살기 위해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늘 생각해 왔습니다.


■ 신노년이 사는 법

<서울 강서구>

<인터뷰> 이병철 / 71세
저는 이병철입니다. 나이는 52년생, 만으로 칠십 하나입니다. 제가 혼자 산 거는 한 20년 됐어요. 부인하고 헤어지고 그래서 혼자 살게 됐고, 스스로가 잘 살려고 노력을 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이병철 씨가 직접 만든 가죽 가방을 들고 도착한 곳. 집 근처 영어 회화 클럽입니다.

지난해 11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 그룹 수업에 나가고 있습니다.


- 선생님: What did you do over the weekend?
- 이병철: Last weekend, my body condition, very not good.
- 선생님: Not good? for what? 왜?
- 이병철: So much allergy.
- 선생님: Allergy for... for what?
- 이병철: I ate 돈가스. Today morning, body, 두드러기....

<인터뷰> 박희수 / 영어회화 선생님
처음에 병철 님은 영어로 하나도 못 하셨는데 단어 하나하나만 이렇게 (말)하시는 분이셨는데, 지금은 그래도 계속 문장을 만들려고 하는 게 눈에 보여서. 엄청 기특해요. 선생님으로서.

두 시간 동안의 수업이 끝났습니다. 점심은 곰탕집에서 ‘혼밥’입니다.

식사 전 인증 샷은 필수.


곰탕 한 그릇을 뚝딱 비웁니다.

배를 채우고 또 어디론가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병철 씨.


근처의 공립 도서관입니다.

<인터뷰> 이병철 / 71세
밖에서 할 일이 없을 때, 아무 스케줄이 없을 때 집에 하루종일 혼자 있어야 되는 경우라든지 할 때는 (도서관에 가요.) 저는 그런 게 눈에 잘 띄어요. 왜냐면 시간을 잘 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아, 여기는 나의 오피스다 생각하고.

노트북에선 코딩 프로그램이 실행 중입니다.

<인터뷰> 이병철 / 71세
작년에 한 3개월 배웠어요. 강서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치매 예방도 되고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웃음) 또 재미도 있어요, 코딩하면.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걸어서 20분 거리의 카페입니다.

익숙한 듯 모자를 쓰는 병철 씨. 가슴엔 명찰도 답니다.


바리스타로 변신하는 시간입니다.

<인터뷰> 이병철 / 71세
(한 달 수입이) 이제 연금 나오는 거 하고 해서 100만 원이 좀 안 돼요. 하루에 3시간 근무하고 한 달에 10번이니까 한 달에 30시간이니까 뭐 1만 원씩 줘도 30만 원인데. 돈의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시간을 나가서 잘 쓰고, 또 내가 배워온 걸 가지고 또 할 수 있다고 하고 있고 하니까 자신감도 생기고. 자긍심도 있고. 바리스타 2급, 1급, 홈카페 마스터. 이렇게 해서 3개 (자격을 가지고 있어요). 로스팅도 이제 배울 거예요.

배우고, 일하고, 만나며 다채롭게 흘러가는 병철 씨의 일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노인의 삶과는 사뭇 달라 보입니다.

<인터뷰> 이병철 / 71세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게 혼자서 잘 사느냐. 1인 기획자잖아요, 저는. 나 자신에 대한 1인 기획자니까. 그런 기획을 긍정적으로 능동적으로 내가 만들고 찾아가서 참여하는 거. 이 사회에서 어떤 커트 라인에서 ‘너 이제 나이가 이만큼 됐으니까 하지 마’라고 하지 않는 한은 가고 싶다는 거죠. 그렇게 내가 찾아서 계속 가겠다는 거죠.

달라진 노년의 모습, 사실 병철 씨 한 사람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노년층의 관심사와 삶의 방식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요즘 노인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깃거리는 뭘까요?


노인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최근 4년간 언급량이 증가한 키워드를 분석해봤더니, 새로운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인터뷰> 송길영 / 빅 데이터 전문가·<시대예보> 작가

시니어 커뮤니티에서 저희가 데이터를 뽑아서 라이프스타일 키워드를 좀 봤었어요.

첫 번째가 친구를 만나는 소셜라이징 부분이에요. 카톡 친구처럼 오픈 채팅에서 모이시는 경우도 있고 그만큼 취미와 취향으로 움직여서 본인의 삶에 대한 어떤 저변을 넓히시는 것들이 좀 보여요.

늘 나오는 건 이제 건강이죠. 건강이 예전의 방식이 나는 아파서 치유나 치료에 대한 부분이 나왔다면 피부과라든지 필라테스라든지 이런 부분들도 많이 나와서 적극적으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건강의 유지에 대한 부분들을 도모하는 것들도 보이고요.

마지막 부분이 이제 문화나 소비 부분인데 이런 것들이 주로 도시에 많이 포진돼 있기 때문에 이 생활이 나는 좀 필수적이다라는 것들도 나오고요. 그걸 표현하는 방식들도 인스타그램이라든지 틱톡처럼 새롭게 만들어지는 어떤 미디어를 통해서 본인의 친구들에게 소통하거나 혹은 그걸 넘어서 다른 세대와의 교류를 원하는 것들도 보이거든요. 나이 드신 분들도 내 삶의 주체성을 가지고 본인의 삶을 꾸려가고 싶어 하는 것이고, 이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시는 분들은 앞으로 늘어날 거예요.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내년에 전체 인구의 20%, 2050년엔 40%를 넘어설 것으로 보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노년층이 놓지 못하는 고민이 하나 있습니다.


<인터뷰> 이병철 / 71세
언젠가는 아프잖아요. 언젠가는 눕게 되잖아요. 그랬을 때가 이제 걱정이죠. 내가 그때 어떻게 선택을 해야 하느냐.

늙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병철 씨와 친구들이 만날 때마다 늘 얘기하는 주제입니다.

- 박은화: 근데 나는 우리 딸내미한테 하는 얘기가, 걱정하지 마. 엄마는 요양원 갈 거야.
- 이병철: 내가 알아서 할게.
- 박은화: 응. 엄마는 그러니까 건강할 때까지는 내가 내 집에서 내가 남편이랑 같이 또는 나 혼자서 또는 내가 혼자가 되고 난 다음에... 글쎄 친구랑 같이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이제 그렇게 하고 살다가 어느 시점이 돼서 내가 남의 도움이 필요한 시점이 되면 엄마는 기꺼이 요양원에 들어갈 거야.
- 배연희: 우리 아버님도 요양원에 계셨었고 어머님도 이제 내가 케어하기 전에 요양원에 좀 계셨는데 스스로 들어가셨다 스스로 나오셨어요. 보통 요양원이 시설이 좋다는 건 보호자가 보기에 좋은 거고. 우리가 얘기 많이 했었잖아. 지금은 그 (시니어) 타운에 들어가면 밥해줘, 빨래해줘, 청소해줘, 그러면 나는 그냥 손 놓고..
- 유희두: 오히려 정신 건강에 난 안 좋을 거 같아요.
- 배연희: 그리고 몸도 안 움직이잖아요. 그래서 나는 식과 의를 스스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그 소일거리가 있는 그런 시설이면 좋겠어.


나이가 들수록 다른 사람의 도움이나 돌봄을 받는 입장이 될 거란 걸 알지만, 나의 힘과 의지로 하고픈 일은 여전히 많습니다.
- 이병철: 영어를 이제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우리나라에서 무슨 국제 행사 같은 거 할 때 뭐 봉사 요원들 뽑을 때 통역 봉사 요원들 뽑고 막 그러잖아요. 이제 그런 것도 이제 참여하고 싶어. 머리 희끗해져서 나이 들어서 활동할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되고.
- 유희두: 제가 작년에 치앙마이 한달살이 갔다 왔잖아요. 그거처럼 이렇게 1년에 기간을 정해서 여기저기 다녀보는 거예요.
- 박은화: 저 거기에 동의해요. 동의해요.
- 유희두: 네. 여기저기. 그렇게 해가면서 나의 열정을 좀 이렇게 태워보기도 하고, 또 이렇게 자율적인 일도 해보고. 또 사람도 새로운 사람도 만나보고. 이렇게 사는 것이 나는 건강하지 않을까.


<인터뷰> 송길영 / 빅 데이터 전문가·<시대예보> 작가
이분들(노년층)에 대해서 누가 간병을 하고 어떤 기관이 그거를 담당해야 할 건지에 대한 것들을 많이 얘기하고 계세요. 이미 닥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데 그 이전 단계에 그런 상태에 가기 전에, 얼마나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내가 생의 기쁨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건지, 그럼 그때 사회적으로 격리된 게 아니라 사회 참여를 하면서 느끼는 효능감이라든지 기여감에 대한 부분은 어떻게 할 것인지로 계속 커질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불(간병 문제)을 껐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그 다음에 또 (노년층의) 다른 욕구가 나올 거니까, 그걸 어떻게 좀 더 이어서 함께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해보셔야 해요.

하고 싶은 게 부쩍 많아진 노년층, 더 행복하게 늙어가려면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고민이 먼저 시작된 곳, 19년 전 이미 초고령사회에 들어선 일본입니다.


<일본 도치기현 나스마치>

<인터뷰> 치카야마 케이코 / 74세
저의 이름은 치카야마 케이코입니다. 도치기현 나스 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현재 74살입니다.
일을 할 때는 아침 9시까지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합니다.


아침부터 분주한 사무실. 사실 9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초등학교 교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떠난 자리를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 함께 만드는 노년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 모두 운동복 차림입니다.


라디오 체조와 함께 아침을 열고, 산책도 합니다.

한쪽에선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는 이곳. 노인들이 함께 마을을 만들어 살아가는 나스 마을 공동체입니다.


그 중심에는 74살 치카야마 씨가 있습니다.

치카야마 씨는 40년 가까이 노인 주택을 만드는 기획자로 일해 왔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거처를 구상하던 7년 전 우연히 한 폐교를 발견했습니다.


<인터뷰> 치카야마 케이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대표·74세
우연히 제가 살고 있는 노인주택 근처에 폐교가 나와서 공공지원 사업에 응모했어요. ‘저출생 고령화 사회의 작은 거점 만들기’라는 나스마치(자치단체) 공공지원 사업에 응모해서 1등을 한 거예요. 그래서 폐교를 수리해서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버려진 학교를 노인들이 사는 마을로 바꾸겠다는 아이디어.

치카야마 씨의 독창적인 기획안은 연달아 정부 표창을 받으며 화제가 됐습니다.


지역 은행의 대출을 받고 정부 보조금도 지원받으면서, 90억 원의 시공비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다카하시 히로시 / 도쿄통신대 명예교수‧일본 고령자주택협회 고문
보조금을 지급한 이유는 선진성과 모델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폐교’라는 공간을 활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벌이 수단인 쇼핑센터와는 달리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에요.

그렇게 첫발을 뗀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의 실험.


2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 폐교 운동장엔 20여 채의 공동 주택이 들어섰습니다.

학교 뒤에 있던 수영장 건물도 주택이 됐고, 급식실은 빵집으로, 교무실과 교실은 식당과 마트 등으로 바뀌었습니다.



지난해 1월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돼 지금은 70여 세대, 83명이 살고 있습니다. 80% 이상은 60대에서 90대 사이의 노년층입니다.

<인터뷰> 카부라기 다카하시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 ‧ 65세
60세 이하는 13가구밖에 없어요. 가능한 한 다양성을 중요시하면서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젊은 사람이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다양성을 늘리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어요.

행복한 노년을 위해 노인들이 직접 만든 마을. 이곳만의 특별한 점이 있습니다.
<인터뷰> 카부라기 다카하시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 ‧ 65세
우리는 늙어가잖아요? 건강할 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여러 단계가 있는데요. 그 단계가 끊어지지 않고 연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마련해 놓았어요.

<인터뷰> 사사키 토시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 ‧ 71세
우선, 교정에 있는 ‘광장의 집 나스1’은 현재 건강한 분들을 위한 노인 주택이 있어요. 이쪽에 있는 수영장을 수리해서 ‘광장의 집 나스2’를 만들었어요. 요양등급 1이상으로, 간병 대상자를 위한 주택 26가구가 있어요. 부지 옆에는 ‘임종의 집 나스’가 있어요. 그곳은 앞으로 임종을 맞이하게 될 분이나 간병에 지친 가족들이 머무는 집이에요. 주택은 이와 같이 구성되어 있어요.


몸이 아프면, 간병인과 간호사가 상주하는 주택으로 바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이곳에 살려면 돈은 얼마나 들까?

<인터뷰> 사사키 토시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 ‧ 71세
수도권에서 이쪽으로 오시는 이유 중에 한 가지는 가격이 싸다는 거예요. 이곳은 토지가 지자체 소유로 빌려 쓰고 있기 때문에 토지대금이 별로 들지 않아요. 자립기 주택 나스1의 경우 매월 관리비가 4만 엔(35만 원)대에요. 우리는 15년치 집세를 일시불로 받는데 대략 천 5백만 엔(1억 3천만 원) 정도예요. 저축이 2천만 엔(1억 8천만 원) 정도 있는 분들이 입주하고 있어요. 간병기 주택 나스2는 지금 당장 간병이 필요한 개호보험(노인요양보험) 수급자들이 살고 있는데요. 한 달에 14~16만 엔(125~145만 원) 정도를 가족들이 지불하고 있어요.

한 마을에 모여 식구처럼 살기를 선택한 사람들.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뭘까요?

<인터뷰> 치카야마 케이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대표 ‧ 74세
가장 중요한 건 즐거움 아닐까요? 모두가 즐겁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터뷰> 사사키 토시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 ‧ 71세
재미없는 마을엔 살고 싶지 않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마을 만들기 차원에서 이곳을 처음 지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에요. 모여서 재밌게 살자는 것이 가장 큰 핵심이죠.

여럿이 모이면, 종종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일어납니다.

마을 근처 텃밭에서 파를 뽑는 사람들. 텃밭을 가꾸고 마을 환경을 정비하는 모임입니다.


주민들은 저마다 각자의 취향에 맞는 모임에 들어있습니다.

<인터뷰> 아라이 타카오 / 모임 리더 ‧ 74세
몸을 움직여서 땀을 흘리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요. 오늘도 나무를 베서 장작을 만들었는데요. 밤에 술이 맛있어져요.

<인터뷰> 치카야마 케이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대표 ‧ 74세
하루살이 생활을 해서는 안 돼요. 그래서 내가 죽을 때까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한 번 되돌아보고 그 생각이 일치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즐거워요.

<인터뷰> 마츠오 치에코 / 입주민 ‧ 81세
이곳은 죽기 위해서 온 게 아니에요. 살기 위해서 온 거에요. 그것이 일반적인 시설과 다른 점이에요. 그래서 여기저기 열심히 참여하고 있어요.

주민들은 마을 공용 공간을 빌려 직접 기획한 행사를 열 수도 있습니다.


오카다 씨는 함께 그림을 그리며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해보고 싶어 세미나를 준비했습니다.

<인터뷰> 오카다 요코 / 입주민 ‧ 63세
생각을 하니까 세미나를 열 수 있는 거예요.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뭔가 곤란하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스스로 만들어가는 거예요.

이렇게 주민들이 마련하는 행사에는 종종 반가운 손님들도 찾아옵니다.

이날은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인터뷰> 쿠시비키 준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72세
젊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시선, 움직임을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요. 이 나이가 되어서 새로운 만남이 생기는 건 굉장히 고마운 일이에요. 마을의 단독주택에서 혼자 살면, 이런 만남은 없을 거예요.

베테랑 토목설계사인 타카쿠와 씨는 마을의 크고 작은 가구를 직접 만듭니다.

여생을 즐겁게 보내려면 무언가 할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게 여든을 넘긴 타카쿠와 씨 생각입니다.


<인터뷰> 타카쿠와 아키라 / 입주민 · 81세
나이 들어서 가장 중요한 건 사회 속에서 뭔가를 한다는 것이에요. 젊었을 때는 일을 열심히 했고, 지금은 뭔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엔도 씨는 30년 경력의 영상 제작자입니다. 마을 행사 촬영을 도맡고 있습니다.

<인터뷰> 엔도 노리코 / 입주민 · 75세
매달 여러 가지 이벤트가 열려요. 그 이벤트 중에서 재밌는 걸 골라서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려요. 오사카에 사는 지인이나 친구, 또는 도쿄에 사는 친구들에게 내가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유튜브를 통해서 전달하고 있어요.


각자의 역할을 가진 마을 구성원으로 살 수 있다는 건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입니다.
<인터뷰> 엔도 노리코 / 입주민 · 75세
이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서로 도우면서 산다는 거예요. 일반적인 노인 주택이란 도움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입장이 다르잖아요? 여기서는 서로가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저도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요. 죽을 때까지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 다카하시 히로시 / 도쿄통신대 명예교수‧일본 고령자주택협회 고문
나스 마을 만들기 광장의 매우 중요한 특징은 (사회적) 관계 자본이 풍부하다는 거죠. 직접 참가해서 만드는 것을 중시하면서 각자의 선택에 맞는 장소를 만들겠다는 이념으로 운영한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어요.

노년층이 자신의 역할과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다양한 사람과 교류하며 함께 살아가는 마을.


신노년층의 비중이 커지고 있는 우리 사회도 눈여겨볼 만한 시도입니다.

<인터뷰> 송길영 / 빅 데이터 전문가·<시대예보> 작가
지금의 얘기는 뭐냐 하면, 나이가 드신 분들은 요양병원에 혹은 거기에 준하는 기관에 모신다는 느낌이었단 말이죠. 그게 아니라 우리 옆에 계시고 늘 함께 살고 있고, 각자가 힘에 부치면 다른 기여를 하고. 이런 식의 서로 돕는 사회가 되는 것이 우리의 생애가 끝날 때까지 가장 큰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에 대한 것들은 그냥 옆에 계신 분이다라는 생각으로 가는 것이 옳아요.

■ 신노년의 개척자들


마을의 반은 아직 비어 있습니다. 내년엔 이곳에 공동 주택 20여 채가 또 들어설 예정입니다.

마을은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운영진도 덩달아 바빠집니다.

<인터뷰> 카부라기 타카하시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 · 65세
일하는 시간은 하루에 10시간 정도. 전기계량기를 점검하거나 입주자에게 보낼 청구서를 만드는 일 등, 자잘한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요.


사사키 씨는 휴대전화를 세 대나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사키 토시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 · 71세
카페는 어떠냐? 오늘 시장은 문을 여느냐? 특히 지금은 저쪽에 개보수 공사를 하기 위해서 여러 업체가 들어왔는데, 그 전화도 걸려 와요. 그래서 전부 응대하고 있어요.


젊었을 때만큼이나 바쁘게 움직이며 인생의 완성기를 만들어나가고 있습니다.
<인터뷰> 쿠시비키 준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 · 72세
이곳이 생긴 덕분에 어떤 의미에서는 나이를 잊어버리게 된 것 같아요. 이곳이 정말 하나의 마을처럼 되어서 굉장히 즐거워요.


노년의 삶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불안감도 사라져갑니다.
<인터뷰> 오카다 사토시 / 입주민 ·63세
솔직히 말하면 80세가 되면 어떻게 될지 굉장히 불안해요. 하지만 이곳에 와보니까, 나이가 들어도 제 방식대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걸 조금 느꼈어요.

<인터뷰> 송길영 / 빅 데이터 전문가 · <시대예보> 작가
우린 보통 노년을 생각할 때 생애 단계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시거든요. 그게 아니라 그 기간이 길기 때문에 오랫동안 살아가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라고 바라보셔야 된다는 거죠. 우리의 인생이다. 이 정도로까지 장수를 고르게 혜택을 누리는 사회는 지금이 인류상 처음이거든요. 지금 전환기에 있는 것 같고요. 이분들이 지금 척후병으로 활동하고 계신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의 모습은 바뀌고 있습니다.

노년기를 어떻게 풍요롭게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이병철 / 71세
시작인 거 같아요. 우리 후세대들이 우리가 남긴 노인 세대에 대한 걸 가지고 더 좋은 노인 시대를 또 맞이하겠죠.


외롭지 않은 신노년 시대, 함께 만들어가는 노인들의 삶이 그 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사사키 토시코 / 나스마을 만들기 광장 운영진 · 71세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서로가 또 도우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행복하죠. 할 수 있는 한 이 속에서 뭔가 역할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취재기자: 김채린
촬영: 조선기 강우용
영상편집: 이기승 강정희
그래픽: 장수현
자료조사: 김예은 신용하
조연출: 유화영 김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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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채린 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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