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사라진 일꾼들… 이 일을 어떡허니

김재근 선임기자 2024. 4. 21.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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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꿀벌은 어디로 갔을까
지난해 최소 222억 마리 사라져
양봉산업 붕괴 위기… 수익 타격
식량안보 직결, 대책 마련 목소리
충남 부여군 규암면 양봉농가 엄명희씨가 봄철 개화기를 맞아 꿀벌이 집을 짓고 생활하는 소초판을 살펴보고 있다. 김재근 선임기자.

꿀벌 실종 사태가 심각하다. 추운 겨울을 지나 봄이 돼 벌통을 열어보니 벌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특정한 질병 때문에 폐사했으면 사체라도 있어야 하는 데 그것조차 없다. 미국에서는 이를 군집붕괴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이라고 하는데 우리도 비슷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국양봉협회 충남지회가 '2024년도 봉군(꿀벌 떼) 소멸피해 현황'를 조사한 결과 1148개 농가의 18만 1335 봉군 가운데 57.66%인 10만 4560봉군이 피해를 입었다. 공주시는 161개 농가 2만 5241봉군 중 60%, 청양은 150농가, 2만 1127봉군 중 65%가 사라졌다.

꿀벌 실종 현상은 매년 연례행사처럼 벌어지고 있다.

한국양봉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겨울 전국 농가 1만8000여곳의 122만여 개 봉군에서 꿀벌이 사라졌다. 봉군 하나에 꿀벌이 1만5000~2만 마리가 들어있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 183억~최대 244억 마리의 꿀벌이 자취를 감춘 셈이다. 지난해에도 전체 247만 봉군 중 약 60%인 148만 봉군이 피해를 입어, 최소 222억마리의 벌이 사라졌다.

꿀벌은 꿀과 프로폴리스, 꽃가루 등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농작물의 꽃가루를 옮겨 씨앗과 열매가 맺히게 한다. 김재근 선임기자

□ 응애, 농약, 기후변화, 등검은말벌 등 원인

꿀벌의 실종 이유는 복합적이다. 꿀벌응애와 낭충봉아부패병 미국부저병,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 파괴, 과다한 농약 사용, 등검은말벌의 공격 등이 거론된다.

꿀벌응애(진드기)는 꿀벌의 피를 빨아먹고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바이러스를 전파하여 벌떼를 전멸시킨다. 20여종의 꿀벌 바이러스가 있는데 이들 대부분을 응애가 퍼뜨리는 등 꿀벌 실종의 가장 큰 원인으로 손꼽힌다. 낭충봉아부패병은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유충이 번데기가 되지 못하고 말라 죽게 된다. 미국부저병은 꿀벌의 유충을 썩게 하는 세균성 질병이다. 낭충봉아부패병은 제2종, 부저병은 제3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 관리하고 있으며, 피해가 심한 꿀벌응애를 제1종으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기후와 생태계 변화도 꿀벌에게 치명적이다.

벌들은 겨울에 벌통 안에서 둥글게 뭉쳐 체온을 유지하고 꿀을 먹으며 추위를 견딘다. 여기서 태어난 유충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죽거나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어미 세대의 벌이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면역력이 약하기 때문이다. 겨울철 이상기온으로 여왕벌이 너무 일찍 산란하여 애벌레가 태어나고, 이 애벌레를 키우기 위해 벌들이 밖으로 나와 꽃가루를 찾아다니다 죽는 사례도 많다.

꽃들의 개화시기 변화도 꿀벌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의 경우 목련과 개나리, 벚꽃, 진달래, 복숭아꽃, 배꽃, 철쭉 등의 봄꽃이 거의 동시에 피어나고 있다. 이상기온으로 한꺼번에 꽃이 피자 벌들이 시간을 두고 차례로 꿀과 꽃가루를 모으는 게 불가능해졌다. 남부와 북부의 개화시기 차이가 2007년에는 30일에서 2017년에는 16일로 줄어들었고, 요즘에는 10일 안팍으로 좁혀졌다. 2018년에는 이상기온으로 아까시아꽃의 꽃대 형성이 부진, 꿀 생산이 전년보다 51.9%나 급감한 바 있다.

농약도 꿀벌을 위협한다. 드론으로 농작물과 밤나무 등에 농약을 살포하는데 그 범위가 넓은 데다 농도가 짙어 꿀벌에게 치명적이다. 과학계에서는 살충제가 꿀벌의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하고, 기억과 판단 기능에 장애를 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등검은말벌과 장수말벌에 의한 피해도 적지 않다. 등검은말벌은 동남아산 외래종으로 꿀벌의 유충은 물론 성충도 공격하여 잡아먹는다. 장수말벌은 꿀벌보다 6-7배나 큰 대형 말벌로 한 마리가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꿀벌을 물어 죽인다.

요즘은 다양한 종류의 봄꽃이 피는 시기로 꿀벌들의 활동이 매우 왕성하다. 김재근 선임기자

□ 꽃가루 매개… 과수 등 농업생산에도 큰 영향

꿀벌 실종은 양봉농가는 물론 농업생산과 자연생태계 전반에 엄청난 악영향을 준다.

꿀벌 감소는 수익 감소로 직결된다. 올해 충남지역 양봉농가의 경우 농가에 따라 40-50% 가량 꿀 생산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봉군 가격도 개당 17만원-20만원에서 올해는 30만원 정도로 크게 올랐다.

꿀벌은 농산물 생산과 생태계 유지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농산물의 대부분은 꿀벌이 화분(꽃가루)을 옮겨줘야 씨앗과 열매가 맺힌다. 특히 과채류는 거의 대부분 꿀벌이 이 일을 담당한다. 실제로 부여와 논산의 딸기, 방울토마토, 수박 재배농가는 꿀벌을 임대하여 비닐하우스 안에 풀어놓는다. 꿀벌이 없으면 곡식과 과수 생산량이 급감할 수밖에 없다. 한 학회는 2022년 우리나라 꿀벌의 경제적 가치를 약 6조7000억원으로 추정했다.

양봉농가들은 꿀벌 실종이 2021년부터 매년 반복되고 있다며 정확한 실태 파악과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2020년 현재 우리나라 양봉농가는 2만7464호, 사육 봉군 수는 267만9842군이며, 사육 가구 수는 영남 45.2%, 충청 28.8%, 호남 26.2% 순이다. 2021년 양봉산업 생산액은 7208억원으로 이중 벌꿀이 86.8%인 6257억원이고, 프로폴리스 359억원, 화분 56억원을 차지했다. 1차 생산물인 꿀이 수입의 대부분이다.

2019년 양봉산업의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5개년 종합계획을 수립, 시행하고 있지만 구체성이 미흡하다는 게 중론이다. 농가들은 우선 꿀벌의 집단 폐사에 대한 원인 규명과 방제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이외에도 꿀벌 실종의 농업재해 인정, 꿀벌 응애 구제제 개발, 가축재해보험 포함, 꿀벌의 공익적 기능과 가치를 반영한 양봉공익직불금 등을 요구하고 있다.

□ 공익적 가치 인정, 국가차원 종합대책 마련해야

전문가들도 양봉산업에 대한 인식전환과 현장 밀착형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꿀 생산은 물론 농업생산 및 생태계 유지에 필요한 화분 매개 기능을 정당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공익적 가치를 바탕으로 기후변화와 질병에 강한 육종 및 품종개량, 밀원 조성 확대, 약제 개발 지원 및 방역방제 시스템 구축, 양봉 기자재의 국산화, 생산실명제와 신뢰성 있는 인증제도 확립, 국가차원의 R&D기관 설립, 농림식품부에 양봉의 특수성을 반영한 전담부서 설립(현재는 축산 부서 소속) 등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2014년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시로 '꿀벌 등 꽃가루 매개자 보호를 위한 국가전략'을 발표하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 대책을 마련했다. 유럽연합(EU)도 꿀벌을 보호하기 위해 2030년까지 화학살충제 사용량을 절반 이하로 줄이기로 했으며, 유엔도 꿀벌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5월 20일을 '세계 꿀벌의 날'로 지정했다.

기후변화로 꿀벌이 사라지고 있다. 양봉산업은 물론 식량안보 차원에서 정확한 현황 파악을 바탕으로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을 조속하게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더 늦으면 사과 맛보기도 어려워진다"

강재선 한국양봉협회 충남지회장

"지역의 월동 봉군 피해(실종)가 농가별로 적게는 20%, 많게는 70%에 이릅니다. 대부분이 다른 농사를 짓는 겸업농으로 양봉 규모가 영세해, 경제적 타격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양봉협회 강재선 충남지회장은 전국에서 수년째 꿀벌 실종 현상이 벌어져 양봉농가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며 우선 당장 꿀벌 실종의 원인 규명과 방제약품 개발, 정확한 피해 규모 파악 및 지원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강 지회장은 기후변화와 각종 바이러스 창궐로 꿀벌 피해가 날로 심화되고 있다며 국가 차원의 컨트롤 타워 설치와 양봉 전문 연구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꿀벌 실종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국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추진하고, 백악관에서 직접 꿀벌을 길렀다"며 "우리 정부가 꿀벌이 곡물과 과수 생산, 생태계 유지에 끼치는 공익적 기능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강 지회장은 충남 부여에서 직접 100여통의 꿀벌을 치며, 충남과 세종 1200여 양봉 농가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권익을 대변하는데 힘쓰고 있다.

"벌꿀이 사라지면 꿀이 없어지는 것은 물론 딸기나 토마토, 수박, 오이, 사과, 배도 맞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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