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아름다운 해변은 ‘돼지’와 함께…털보 아저씨 손맛 제대로네 [푸디人]

안병준 기자(anbuju@mk.co.kr) 2024. 4. 2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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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덕해수욕장서 돼지고기 먹고 싶다면!
[푸디인-25] 자매국수 & 제주 함덕흑돼지 왕표고기 (feat. 날씨 참 좋은 제주)

남들은 제주공항에 비행기가 도착하자마자 캐치테이블 앱을 켜서 대기번호부터 받아둔다고 했다. 주말점심에 조금만 늦어도 대기번호가 80~90번 정도 된다고 하니 그럴 만도 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제주 이호테우 해수욕장에서 올레길을 따라 걷다가 무작정 전국구 고기국수 맛집으로 유명한 ‘자매국수’를 찾아갔다. 아주 다행스럽게도 주말 점심인데도 불구하고 대기번호 74번을 받았다. 예상 대기시간은 74분…ㅜㅜ

캐치테이블로 예약하지 않고 매장에 직접 갔더니 대기번호가 74번이었다. 안병준 기자
평소 같았으면 기다리지 않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을 테지만 고기국수로 유명하다고 해서 참아보기로 했다.

‘나 혼자 산다’와 ‘전지적 참견 시점’을 2배속으로 모두 보고 나니 내 이름을 불러주었다. 이들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아마 1시간 넘는 대기시간 동안 사랑하는 사람과 ‘왜 이런데서 시간을 낭비하냐’며 옥신각신 싸우고 있었을 것이다.

자매국수를 꽉채운 전국에서 온 손님들. 안병준 기자
식당 안은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 대기 손님을 응대하고 입장을 명령하는 직원분은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고기국수를 먹겠다는 일념 하나로 식당을 점령한 나를 포함한 좀비 떼들이 1초라도 빨리 입장하고 싶은 마음에 “입장해도 되나요?” 와 같은 질문을 수백번 반복하니 지칠 수밖에…

일단 자리에 앉으니 인기 식당답게 태블릿PC로 주문받았다. 고기국수와 비빔국수와 함께 기다림에 지친 내게 알코올을 투약하기로 했다. 마침 ‘생유산균 제주 막걸리’가 눈에 띄었다.

기다림에 지친 내게 알코올을 투약하기로 했다. 마침 ‘생유산균 제주 막걸리’가 눈에 띄었다. 안병준 기자
막걸리와 맥주가 먼저 나왔다. 당연히 막걸리에 손이 먼저 갔는데 결국 좋은 선택이었다. ‘생유산균 제주 막걸리’는 탄산감이 장수막걸리처럼 강하지 않아 좋았다. 개인적으로 탄산감 높은 막걸리가 주는 트림을 극도로 싫어한다. 단맛이 덜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맛이 단조로울 수 있지만 깔끔해서 한 병 더 마시게 됐다.

고기국수와 비빔국수가 술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나왔다. 고기국수 위에 올라온 돼지고기 수육이 꽤 큼직했다. 95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가성비가 좋은 편이었다. 국수 국물은 생각보다 진하지 않았다. 담백하고 깔끔하다는 평가가 많이 있던데 육수가 진하지 않은 점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면발은 탱글탱글했고 치자나무의 과실인 치자로 반죽해 노란색을 띄고 있었다. 다만 일반 짜장면과 짬뽕 면발과 같은 느낌이었고 자가제면이 아닌 듯한 점은 뭔가 2% 부족한 느낌이었다.

비빔국수 양념은 대중적인 입맛을 완벽하게 저격했다. 특히 비빔국수와 함께 나온 국물이 고기국수 국물과는 다른 멸칫국물 같은 느낌이 났고 시원해서 좋았다.

자매국수의 고기국수와 비빔국수. 안병준 기자
이 집에서 가장 맛있었던 것을 꼽으라면 김치이다. 배추김치를 온라인 몰에서 따로 팔 정도다. 해안가임에도 불구하고 젓갈 사용이 적고 담백한 편이었다. 깍두기도 국수와 함께 먹기 딱 좋다.

자매국수는 기존 국수문화거리에 작고 아담하게 운영되다가 많은 관광객이 몰리면서 노형동에 분점을 열었고 지금은 새롭게 단장한 이호일동 매장으로 모두 통합됐다.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비행기가 자주 지나가는데, 세심하게 이를 고려해 인테리어 한 것처럼 식당 내부에서 비행기가 착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주차장과 매장도 널찍해 돈을 많이 벌었다는 느낌이 물씬났다. 직원들도 많아 고용창출 효과도 엄청나다. 그런데도 이걸 1시간 이상 기다려서 먹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사람마다 입맛은 다르니 어디까지나 선택은 본인의 몫이다. 먹을 거라면 반드시 캐치테이블로 예약하고 아니면 대기하면서 영화 한 편 보는 것도 방법이다.

자매국수에서 보이는 제주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안병준 기자
제주도 지정 1호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함덕해수욕장. 안병준 기자
제주도에는 그림 같은 해수욕장이 많이 있다. 그 중 함덕해수욕장은 수심이 얕지만 에메랄드 빛의 아름다운 해변을 가진 제주도 지정 1호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경사도가 5° 정도로 아무리 걸어 들어가도 어른 허리에도 미치지 않을 만큼 수심이 얕아 가족 단위 피서객이 즐기기에 적당하다.

함덕해수욕장에서 제주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꼼꼼하게 선별한 고기 원육을 가져다 숙성해 판매하는 제주 함덕흑돼지 왕표고기라면 실패한 선택은 아닐듯하다.

주인장인 털보 아저씨가 대형 무쇠 솥뚜껑에서 초벌작업을 해준다. 안병준 기자
주인장인 털보 아저씨가 대형 무쇠 솥뚜껑에서 초벌작업을 한 뒤 약 5분 정도 레스팅(resting)을 한다. 레스팅을 하는 이유는 뜨거운 팬에 구워진 고기의 속까지 익히기 위해서다. 레스팅이 끝나면 다시 테이블에서 살짝 구워 마무리한다.

왕표고기의 매력 중 하나는 다양한 소스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첫 고기는 함초 소금를 찍어 즐기길 추천한다. 함초 소금은 바다의 산삼이라고 불리는 함초가 들어간 소금인데 고기 본연의 고소한 맛을 살려준다. 두 번째는 고기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생와사비와 홀그레인 머스타드가 적당하다. 직접 만든 파간장 특제소스는 물론, 갈치속젓과 제주산 멸치액젓을 섞은 젓갈 소스도 일품이다.

초벌 이후 테이블에서 다시 굽는 모습. 안병준 기자
이곳 사장님은 부산에서 10년 넘게 고깃집을 운영하다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제주에 정착하면서 새로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지금은 함덕의 대표적인 숙성고기집으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메뉴로는 흑돼지와 백돼지가 있으며 숙성한우 등심도 맛볼만하다. 고기 먹은 후 탄수화물 섭취는 국룰이니 왕표된장찌개에 밥 말아 된장죽으로 먹거나 시원한 왕표딱새우라면을 흡입하는 것도 추천할만하다.

제주 돼지고기가 어딜 가도 평타 이상은 하기 때문에 이걸 먹기 위해 반드시 찾아가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할 정도는 아니지만 함덕해수욕장에 왔다면 한번쯤 가보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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