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살’ 단어 사용 금지”…NYT ‘팔레스타인 보도지침’ 논란
“이스라엘 전쟁 범죄만 특별 대우” 비판
뉴욕타임스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다룰 때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 ‘점령지’ 등 용어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의 보도지침을 내부에 공유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몇 달간 친이스라엘적인 관점에 치우쳐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 상황을 공정하게 보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안팎에서 받아 왔다.
미국의 비영리 탐사보도전문매체 ‘더 인터셉트’는 지난 15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가 내부 메모를 통해 자사 기자들에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보도할 때 ‘대량 학살’(genocide), ‘인종 청소’(ethnic cleaning) 등 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라고 보도했다. 해당 지침은 그 밖에도 가자지구를 ‘점령지’(occupied territory), ‘난민 캠프’(refugee camps)라고 표현하거나 ‘팔레스타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제한하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해당 지침은 뉴욕타임스의 수잔 웨슬링 스탠다드에디터와 필립 판 국제에디터가 작성한 것으로 지난해 11월부터 배포됐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됐다. 찰스 스타트랜더 뉴욕타임스 대변인은 인터셉트에 “이러한 지침을 발표하는 것은 뉴스의 정확성, 일관성, 뉘앙스를 유지하기 위한 표준 관행“이라며 “뉴욕타임스는 (이-팔 분쟁처럼) 복잡한 사건을 포함해 모든 사안에서 언어 선택을 섬세하고 명확하게 하려고 노력한다”라고 내부 지침의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 안팎에서는 ‘편향된 시각을 수면 위로 드러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인터셉트가 인용한 익명의 뉴욕타임스 내부자는 “이-팔 분쟁의 역사적 맥락을 모른다면, (지침 내용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안다면, 이 메모가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내용이라는 점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내부자도 “언론사는 종종 보도 가이드라인을 내곤 한다. 다만 이스라엘의 전쟁 범죄에는 유독 특별한 기준이 적용된다”라고 짚었다.
인터셉트는 지난 1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이스라엘 전쟁 보도 편향성을 분석한 바 있다. 해당 보도를 보면, 지난해 10월7일(무장 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 발발일)부터 11월25일까지 팔레스타인 희생자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뉴스에서 팔레스타인 언급량은 줄어들었다. 팔레스타인은 자국민이 2명 죽을 때마다 한 번꼴로 언급된 데 반해, 이스라엘은 자국민이 1명 죽을 때 8번씩 언급됐다. 팔레스타인보다 16배 높은 비율이다.
용어의 불균형도 두드러진다. 최신 뉴욕타임스 보도 지침에는 ‘학살’(slaughter), ‘대학살’(massacre) 등은 감정적 표현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인스펙트 분석을 보면 뉴욕타임스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사람을 살상할 때보다 이스라엘 사람이 하마스에 의해 살상했을 때 이 용어를 훨씬 더 자주 사용했다. ‘학살’은 이스라엘 희생자에 22번, 팔레스타인 희생자에 1번 쓰였고, ‘대학살’은 이스라엘에 53번, 팔레스타인에 1번 쓰였다.
인터셉트는 그 밖에도 이스라엘이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어린이 희생자를 내고 있음에도 기사 제목에 ‘어린이’(children)라는 단어가 거의 들어가지 않은 점,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내 정착촌은 유엔이 규정한 불법임에도 ‘점령지’라는 용어를 쓰지 못하게 한 점, 역시 가자지구가 유엔에서 인정한 난민 정착촌임에도 ‘난민 캠프’라는 단어 사용을 제한한 점, 미국 내 반유대주의는 부각하고 반이슬람주의는 도외시한 점 등을 편파적인 보도 행태로 지적한다.
뉴욕타임스 내부에서도 문제 제기가 빗발친다. 지난해 11월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알시파 병원 공격 때는 관련 보도를 두고 편집국 내부 메신저를 통해 격렬한 논쟁이 벌어져 화제가 됐다. 이어 12월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공격하며 조직적인 성폭력을 자행했다고 전한 특집 기사는 피해자 가족이 성폭력 사실을 부인하면서 조작 인터뷰 논란에 휩싸였다. 뉴욕타임스 내부에서는 보도 배후를 두고 의심의 목소리가 나왔다. 경영진은 지난 3월 해당 보도를 지지한다고 밝혀놓고도 해당 기사를 쓴 프리랜서와는 계약을 해지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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