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등원 전쟁, 언제까지”…8세 ‘독립’ 못하면 여든까지 갑니다 [워킹맘의 생존육아]

이새봄 기자(lee.saebom@mk.co.kr) 2024. 4. 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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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픽사베이]
“둥근해가 떴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제일먼저 이를 닦자 윗니 아랫니 닦자. 세수 할 때는 깨끗이 이쪽 저쪽 목닦고 머리빗고 옷을 입고 거울을 봅니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니 새로운 전쟁이 시작됐다. 이름하여 ‘등교 전쟁’이다. 유치원과는 달리 학교는 등교 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아이는 처음에 잘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일하는 엄마 아빠를 둔 아이들은 유치원을 다니더라도 엄마·아빠의 출근시간과 업무 시작 시간에 맞춰 기관에 가지만, 학교는 말 그대로 본인의 필요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등교를 해야하는 곳이다. 정확한 등교시간이 정해져있고, 그 시간에 학교에 가야하며 늦으면 ‘지각’이라는 딱지가 붙는다는 것을 아이가 정확히 인지했으면 했다.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규범과 규율을 지켜야하는 진짜 사회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나는 이때까지 아주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어릴때 수도 없이 들었던 ‘둥근해가 떴습니다’ 동요처럼 당연히도 학교에 가는 어린이들은 학교 갈 준비를 스스로 한다는 착각 말이다. 이 가사를 잘 들여다보면 둥근해가 뜨면 아이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를 닦고 세수하고 목까지 닦은 뒤 머리를 빗고 옷을 입고 거울을 본다. 밥을 꼭꼭 씹어먹은 뒤 가방 메고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선다. 심지어 이 동요속의 아이는 학교에 가는게 아니라 유치원에 간다. 그것도 아주 씩씩하게. 어린시절 이 동요를 들으며 약간 갸우뚱했던 점은 ‘왜 이를 먼저 닦고 아침을 먹을까’였다. 나는 일어나서 밥을 먹고 난 다음에 이를 닦는데 말이다. 여튼 사실 어린시절의 나는, 아니 우리는 상당수는 이 동요처럼 살았던 것 같다. 아침에 엄마가 이불을 홱 걷으며 ‘일어나’라고 소리치는 것 정도가 추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문 앞에서 엄마와 인사를 하고 우리는 유치원에 갔다. 당연히 학교에도 스스로 갔다.

요즘의 저학년 어린이들은 어른과 등교를 한다. 하교도 마찬가지다. 세상이 조금 더 위험해졌고 아이들을 더 안전하게 키우려는 문화를 타박하지는 않는다. 당연히 나 역시도 1학년이 된 딸아이를 어른과 등하교하도록 하고 있다. 달라진 시대에 불만을 제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적어도 학교에 가는 어린이라면 학교 갈 준비 정도는 스스로 해야하는 것 아닌가. 아니, 스스로 하게끔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부끄럽게도 우리 집은 둥근해가 떴음에도 일어나지 않는 아이를 깨우고, 막 잠이 깨 입맛이 없어하는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양치를 ‘시키고’ 옷을 찾아 ‘입히고’, 심지어 양말까지 ‘신겨서’, 가방을 ‘챙겨주고’ 등교길에 올랐다. 가끔 한 두가지의 과정은 아이 스스로 할 때가 있지만 아이가 늦게 일어나면 등교길이 더 촉박해지기 때문에 모든 것을 부모가 해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의 바쁜 아침이 너무나도 부끄럽다.

어느날 나보다 육아 선배인 친구의 이야기를 들으며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이가 스스로 학교 갈 준비를 하는 것은 절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기회를 줘야하는 것이다. 아기 아빠인 나의 친구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하던 해에 1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의 등교 루틴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일어나서 세수하기, 전날 챙겨놓은 옷 입기, 아침밥 먹고 양치질 하기, 물통·신발주머니를 챙기고 알림장 점검하기 등 아침에 아이가 스스로 해야할 항목을 냉장고를 비롯해 집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었다고 했다. 아이가 하는 행동이 답답해도 절대 도와주지 않았다. 초반에는 아이가 울고 떼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년 이상의 혹독한 훈련을 거듭한 나의 친구는 어느날 자기가 아직 침대에서 자고 있을때 아이가 자기를 깨우더라며 자랑(?)을 했다. 아이가 학교갈 준비를 먼저 모두 마치고 식사를 하자고 자기를 깨워줬다는 것이다. (당연히도 밥을 차려준 것은 아니다) 아이가 스스로 하는 방법을 배우자 이 집의 등교 전쟁은 평화롭게 막을 내렸다.

도서 ‘7~9세 독립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의 저자이자 현직 교사인 이서윤 작가는 모든 아이들은 자율성을 가지고 있고 속도만 다를 뿐 혼자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이 작가는 부모의 마음이 급하고 아이의 실수를 참지 못하면 아이가 어설프게 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무척이나 힘겹지만, 아이가 혼자 하려고 시도하는데 엉성해서 부모가 기다리기 힘들어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고 지적한다. 아이에게 “나중에 더 커서해”라거나 “너 또 이거 하다가 실수 하려고?” 혹은 “나중에 더 커서해”라고 말하며 부모가 대신 해주면 아이는 ‘잘 하지 못할 거면 하면 안 되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는 부모는 ‘모든것을 다 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가 알아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그래서 아이가 자기 자신이 주체인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선택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능력을 키운다.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를 쓴 엔절린 밀러는 자신을 ‘인에이블러(Enabler)’라고 표현한다. 상대를 도와준다고 생각하고 동시에 상대를 너무 사랑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망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는 과거에 종종 아이들을 도와주려는 마음에 아이들의 일을 대신하고 싶어했다고 한다. 아이들의 인생을 애들 자신보다 본인이 더 잘 처리할 수 있다고 믿었다.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는 게 그의 고백이다.정체성이란 감각은 각종 경험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를 발견하면서 생겨난다. 그리고 자존감은 자신이 가진 재질을 계발하면서 생겨나는 감정이다. 앤절린 밀러는 과거의 자신이 아이들의 정체성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자존감을 조금씩 깎아내리고 있었다며 반성했다.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며 ’나는 내가 좋은 엄마인 줄 알았습니다‘ 가장 첫 장에 나오는 글을 공유하고 싶다. 아이의 정체성을 살려주고, 자존감을 끌어올려주고,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라도 스스로 등교하는 어린이로 키워야겠다는 거창한 다짐을 하면서 말이다.

억제하지 못할 때면나는네 신발을 집어주고네 배낭을 져 나르고네 교통 위반 벌금을 납부하고네 상사에게 거짓말로 핑계대고 네 숙제를 해주고 네 앞길에서 돌멩이를 치우고“내가 직접 했어!”라고 말하는 기쁨을 네게서 뺏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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