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소장 개인 빨래도 했는데…" 경비원들은 여전히 갑질 속에

장영준 기자 2024. 4. 21.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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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소장, 입주민, 용역회사 직원에 의한 괴롭힘이 대다수
2~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이 원인…"고용불안 해소 우선돼야"
경기도의 한 아파트 경비실 내부(해당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 경기일보DB

 

지난해 서울 강남 아파트 경비 노동자 박 모씨가 관리소장의 갑질을 호소하며 사망한 지 400여일이 흘렀지만 경비원들의 상황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 아직도 많은 아파트 경비 노동자들이 갑질과 괴롭힘을 당하고 있음에도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제대로 된 항의조차 못하고 있었다.

직장갑질119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올해 4월 15일까지 들어온 신원이 확인된 이메일 상담 중 아파트 및 각종 시설에서 일하는 경비, 보안, 시설관리,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노동 상담이 총 47건에 달했다고 21일 밝혔다. 대부분 관리소장, 입주민, 용역회사 직원들에 의한 괴롭힘을 호소하는 내용들이었다.

구체적으로 △동대표가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다음날까지 모든 것을 반납하고 나가라고 통보하거나 △입주민의 '인간성이 좋지 않은 직원은 잘라야 한다'는 막무가내식 항의 △부당한 지시라도 관리소장이 나가라면 나가야 한다는 용역업체의 강요 △노동청 진정 이후 조용히 계약 만료가 되어 버린 상황 등 대부분 고용불안 문제와 연결되는 경향을 보였다.

또 다른 사례자는 "관리소장이 근로계약서에도 없는 부당한 업무지시(야간 주차단속, 놀이터 청소, 단지 내 낙엽처리, 조경업무 등 휴계시간에도 업무지시와 사적인 관리소장의 빨래지시)가 너무하다는 생각에 분리조치를 요구했으나 진전이 없어 노동청에 진정했다"며 "그러나 증거를 제출했음에도 괴롭힘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건이 종결되었고, 이후 회사는 제게 계약만료를 통보했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경비 노동자들이 각종 갑질에 시달리는 배경에는 2~3개월 짜리 계약으롣 대표되는 '초단기 계약'이 있다. 이런 계약을 맺은 상황에서 입주민과 갈등이 싱기면 근로계약이 갱신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는 식이다. 지난 2019년 발간된 '전국 아파트 경비노동자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 94%가 1년 이하 단기 계약을 맺고 있었고, 3개월인 경우도 21.7%에 달했다.

원청갑질도 문제다. 괴롭힘 가해자인 관리소장은 대부분 공동주택 노동자와는 달리 원청 회사 소속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이유로 관리소장에게 아무리 괴롭힘을 당해도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경비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한 용역회사의 경우, 현실적으로 관리소장이나 입주민과의 관계에서 '을'의 위치에 있어 '갑'의 의사에 반해 경비 노동자를 보호하고 나설 가능성 역시 낮다.

공동주택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초단기 계약을 근절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탁관리 업체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경비 노동자를 쉽게 쓰고 버리기 위해 악용할 수 있어서다. 아울러 근로기준법상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적용대상을 입주민, 원청회사 등 특수관계인으로 확대해야 할 필요도 있다.

직장갑질119 임득균 노무사는 "다단계 용역계약 구조에서, 경비 노동자들은 갑질에 쉽게 노출된다"며 "입주민과 관리소장의 갑질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접근하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3개월 이내의 초단기 근로계약으로 인해 계약이 만료되거나 용역 회사 변경 과정에서 계약이 종료될 우려로 인해 갑질에 대응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갑질로 인해 사망한 동료를 위해 싸운 경비원들은 입주자대표회의의 감원 결정으로 근로관계가 종료됐다"며 "공동주택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에게 발생하는 갑질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상 직장 내 괴롭힘의 범위를 확대하고, 초단기 계약 근절 및 용역회사 변경 시 고용승계 의무화를 통한 고용 불안 해소가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장영준 기자 jjuny5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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