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로맨스는 어떻게 세계인을 설레게 했을까

정덕현 문화 평론가 2024. 4. 2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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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연가》에서 《눈물의 여왕》까지…이제는 글로벌로 통하는 한국 멜로 드라마의 성장과 진화 스토리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최근 방영되고 있는 《눈물의 여왕》은 시청률 20%를 돌파할 정도로 국내 반응이 뜨겁다. 그런데 동시에 글로벌 반응 또한 열광적이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이제는 국내와 글로벌의 시차가 사라져버린 지대에 'K로맨스'라는 하나의 장르가 세워지고 있다고나 할까. 

"김수현과 김지원의 사랑, 제5차 한류 열풍을 견인하다"(일본 엔터테인먼트 전문매체 '리얼 사운드'), "역동적인 서사, 주연배우 케미스트리, 매력적인 캐스팅으로 시간을 투자해 정주행할 가치가 있다"(싱가포르 최대 일간지 '스트레이츠 타임스'), "낡은 관습을 타파하는 신선하고 볼 만한 K로맨스"(미국 '타임'),  "많은 K드라마가 '그리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만 《눈물의 여왕》은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미국 '포브스'), "김수현과 김지원, 히트 로맨스로 마음을 사로잡다"(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눈물의 여왕》이 tvN 역대 시청률 3위에 올랐다. 2015년 혜리, 박보검, 류준열의 《응답하라 1988》을 능가했다"(인도 '힌두스탄 타임스'), "김지원은 《눈물의 여왕》의 실력파 스타다. 드라마에서 시대를 초월한 아름다움으로 오늘날 한국 최고의 여배우 중 한 명으로 널리 호평받고 있다"(인도 '타임스 오브 인디아'), "드라마틱하고 무거운 주제인데도 《눈물의 여왕》은 활기차고 확실히 코믹하다. 김수현과 김지원의 상호작용과 캐릭터 개인의 자아 사이의 대조는 놀랍다"(영국 매체 'NME').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 ⓒtvN 제공

국내외 반응 동시에 터진 《눈물의 여왕》  

방영 중인 tvN 토일드라마 《눈물의 여왕》에 대해 쏟아진 글로벌 반응은 그것이 국내와 더불어 동시에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물론 이미 《별에서 온 그대》와 《사랑의 불시착》으로 글로벌 인기를 구가했던 박지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이번 작품 역시 글로벌한 관심이 이어질 거라는 걸 어느 정도는 예고한 바 있다. 하지만 《별에서 온 그대》나 《사랑의 불시착》 모두 어느 정도의 시차를 두고 글로벌 반응이 터졌던 것과 비교해 보면 《눈물의 여왕》은 거의 실시간으로 화제가 되는 상황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존재한다. 하나는 《사랑의 불시착》에 이어 《눈물의 여왕》 역시 방영되고 있는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미 해외 매체에서 K로맨스라고 부를 정도로 국내 멜로 드라마에 대한 글로벌 팬덤의 저변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넷플릭스나 디즈니+ 같은 글로벌 OTT를 통해 《오징어 게임》부터 《킹덤》 《무빙》 등 그간 한국 드라마들이 잘 시도하지 않던 장르물들(특히 좀비물이나 크리처물, SF 같은)이 글로벌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마치 그것들이 K드라마의 전부인 양 존재감을 드러낸 바 있지만, 그건 K드라마의 한 부분일 뿐이다. 실상 K드라마의 명맥을 오래도록 이어왔던 주류가 K로맨스였다는 건 국내 드라마 업계에 종사해온 이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OTT를 통해 막 열린 글로벌 시장에서 서구식 장르를 한국 색채에 맞게 퓨전하는 방식으로 K드라마가 먼저 얼굴을 알렸지만, 이제 그 글로벌 저변이 생긴 상황에서 K드라마의 진가라고 할 수 있는 K로맨스에 대한 관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사실상 멜로는 한국 드라마의 오랜 전통에 가깝다. 한때 신파가 드라마의 중심을 이루던 시기에도, 또 트렌디 드라마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기에도 멜로는 늘 그 중심에 서있었다. 한국 드라마의 성장을 이끌었던 김수현 작가가 주로 그려온 작품세계가 가족 드라마(심지어 가족 드라마 안에서도 멜로는 중심이었다)와 멜로 드라마였다는 사실이 그걸 방증한다. 《사랑이 뭐길래》나 《별은 내 가슴에》 같은 작품들이 1990년대에 이미 중국에서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지만 실질적으로 한류를 경험한 건 윤석호 감독의 《겨울연가》부터였다. 욘사마 열풍을 불러온 이 작품은 한국 드라마의 제작 환경에서 멜로만큼 가성비 높은 장르가 없다는 걸 재확인시켜줬다. 

《겨울연가》의 뒤를 이으려는 무수히 많은 멜로 드라마가 쏟아져 나왔지만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까지 K로맨스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김은숙 작가다. "애기야 가자!"라는 유행어를 남긴 《파리의 연인》부터 《프라하의 연인》 《연인》까지 3부작을 완성시킨 김은숙 작가가 쓴 멜로의 공식은 신데렐라 스토리였다. 수많은 멜로가 이 공식을 따랐고 그래서 그 많은 현대판 왕자님인 실장님들과 대표님들이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형 신데렐라를 구원했다. 멜로 드라마들의 과잉은 그 상투성에 대한 대중의 반감마저 불러일으켰고 그래서 사랑 타령에서 벗어나 좀 더 전문적인 직업을 다루는 이른바 '전문직 드라마'들을 탄생시켰다. 2007년 방영된 안판석 감독의 《하얀거탑》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전문직 드라마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김은숙 작가마저 《온에어》 《시티홀》 같은 전문직이 가미된 멜로 드라마를 시도하게 만들었다.

KBS 드라마 《겨울연가》 ⓒKBS 제공

K로맨스의 클리셰와 변주 

하지만 '멜로는 별로'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던 시절을 거치면서 멜로 역시 성장과 진화를 거듭했다. 서숙향 작가의 《파스타》 같은 전문직업의 세계가 실감 나게 그려지는 멜로는 물론이고, 김은숙 작가의 《시크릿 가든》 같은 멜로에 판타지가 더해지는 시도도 이어졌다. 그리고 박지은 작가의 《별에서 온 그대》는 외계인과의 사랑이라는 동화 같은 멜로로 한류의 불씨를 다시 살렸고, 김은숙 작가는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으로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진화된 멜로 3부작을 내놨다. 이 3부작이 의미 있었던 건, 멜로 드라마 하면 가성비라고만 생각했던 그 틀을 깨고 글로벌 대작으로서 해외 투자까지 유치해 제작한 작품들이었다는 점이다. 중국의 투자를 받아 제작된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 신드롬을 만들었고, 이어진 《도깨비》는 중국의 한한령도 막지 못하는 인기를 끌었다.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은 《미스터 션샤인》은 K로맨스가 이제 아시아권만이 아닌 전 세계로 나가는 멜로의 '개화기'를 선언한 듯한 작품이 됐다. 

이 흐름 위에서 《별에서 온 그대》로 아시아권의 팬덤을 소유한 박지은 작가는 《사랑의 불시착》으로 그 공고한 팬덤을 재확인했다. 북한으로 날아간 남한 재벌 상속녀가 북한 장교와 만나 사랑하게 되는 로맨스를 그린 이 작품은 박지은 작가 특유의 동화 같은 판타지로 글로벌 인기를 만들었다. 《눈물의 여왕》에 쏟아진 관심과 실시간 글로벌 반응들은 이처럼 오래도록 K드라마가 쌓아온 K로맨스의 텃밭이 이제 본격적인 열매를 맺고 있다는 걸 말해 준다. 

최근 TBS에서 방영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일본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는 어찌 보면 해외에서 바라보는 K로맨스의 판타지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호감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멍뭉미' 넘치는 직진 연하남, 위험한 순간에 손을 내밀어 구해 주는 장면이나 직장 내 비밀연애, 동료와 얽힌 삼각관계와 연애를 도와주는 매력적인 친구, 그 친구가 엮어가는 서브 멜로 등등. 《아이 러브 유》는 K로맨스가 주로 그려왔던 클리셰들을 대놓고 무기처럼 꺼내놨다. 사실 어찌 보면 우리에게는 너무나 공식화돼 상투적이라 여겨지는 클리셰들이다. 하지만 그것이 해외에서는 여전히 먹히는 하나의 코드로 자리했다는 걸 이 드라마는 보여준다. 

K로맨스의 클리셰는 늘 같은 것만 반복하던 것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네 대중이 그걸 가만 놔두지 않았다. '식상하다' '상투적이다'라는 비판들이 나왔고, 그 비판 속에서 K로맨스 역시 새로운 변주와 확장을 시도하게 됐다. 《눈물의 여왕》은 이러한 클리셰를 어떻게 비틀고 뒤집어 새롭게 변주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드라마다. 재벌가가 등장하고 재벌가 사람과 결혼해 신분 상승을 이룬 인물이 등장하는 건 그 흔한 신데렐라 스토리 그대로지만, 《눈물의 여왕》은 그 남녀와 계급의 구도를 모두 뒤집었다. 재벌가 딸 홍해인(김지원)이 헬기를 타고 백현우(김수현)가 사는 용두리로 내려와 구애하는 장면은 저 김은숙 작가의 《태양의 후예》에 나오는 유시진(송중기) 대위가 헬기를 타고 강모연(송혜교)을 찾는 모습을 역으로 그려냈다. 또 그렇게 재벌가에 입성하게 된 백현우가 시월드가 아닌 처월드에서 제사 때마다 사위들이 모여 제사상을 준비하는 처가살이를 하는 모습 역시 재벌가에 입성해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계급적 요소를 뒤집는다. 매회 빠짐없이 눈물을 흘리는 남자 주인공과 시한부 판정을 받고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도도함을 유지하는 여자 주인공이 보여주는 캐릭터의 변주도 마찬가지다. K로맨스는 이처럼 클리셰가 있지만, 그 클리셰를 뒤집거나 변주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왔다.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SBS 제공

K로맨스에 더해진 사회적 코드 

하지만 K로맨스가 해낸 가장 큰 진화는 사적 사랑의 차원에 머물던 멜로에 사회적 코드들을 넣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사회적 멜로라고도 부르는 이들 K로맨스는 사랑의 차원이 어떻게 사회나 계급 안에서 갈등을 일으키는가를 탐구하기 시작했고, 사회적 약자와 차별의 문제까지를 담기 시작했다. 임상춘 작가가 대표적이다. 그의 《쌈, 마이웨이》가 스펙으로 나눠 '쌈마이' 취급하는 세상 속에서 '마이웨이'를 가려는 청춘들의 사랑을 담았다면, 《동백꽃 필 무렵》에서는 미혼모라는 차별적 시선 속에서 이를 깨뜨리고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순애보적인 사랑으로 풀어냈다. 이 흐름 위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같은 작품은 아예 사회적 약자들을 전면에 내세워 달달한 사랑 이야기와 엮인 훈훈한 휴먼 드라마로 전 세계 K로맨스 팬들을 설레게 했다. 

또 가장 빛나고 설레야 할 청춘들의 사랑이 무거운 현실 앞에서 상처받으며 더더욱 단단해지는 과정들도 K로맨스는 품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청춘기록》 같은 작품들이 단적인 사례다. 중심에서 밀려난 청춘들의 사랑 이야기는 또 하나의 사회적 멜로 계보를 만들었는데, 그건 경쟁적인 도시의 삶에서 밀려난 청춘들이 변방(지역)으로 와 그곳에서 진정한 삶의 생기를 회복하는 작품들이었다. 《쌈, 마이웨이》나 《동백꽃 필 무렵》이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면, 《갯마을 차차차》 같은 작품은 넷플릭스를 통해 해외에서도 큰 인기를 끌며 로컬을 배경으로 하는 K로맨스의 성공을 보여줬다.  

역사의 틀을 벗어나 허구적 상상력을 더하기 시작하면서 사극은 현대극이 품지 못하는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를 담는 장르로도 확장됐다. 《성균관 스캔들》 《바람의 화원》 등이나 《연모》 같은 과감한 남장여자 콘셉트의 멜로 사극이 등장했고, 《옷소매 붉은 끝동》이나 《연인》 같은 실제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펼쳐지는 멜로 또한 시도됐다. 

이처럼 현재 전 세계에서 새삼 주목하게 된 K로맨스는 갑자기 탄생한 게 아니다. 이미 K드라마의 오랜 전통으로서 멜로가 대중의 긴장감 있는 수용과 비판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변주와 진화를 거듭하면서 생겨난 결과다. 그러니 이제 K드라마라고 하면 장르물만이 아닌 로맨스를 떠올리는 게 오히려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싶다. 장르물에서도 남다르게 표현되는 인간을 바라보는 섬세함들이 어찌 보면 K로맨스의 오랜 전통 속에서 나왔다고도 할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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