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교과서 수정'만 기소한 검찰, 5년 만에 '무죄'로 끝났다 [서초동M본부]

나세웅 salto@mbc.co.kr 2024. 4. 2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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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문재인 정부 초기, 초등학생용 교과서를 무단 수정했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교육부 공무원 2명이,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습니다. 수사가 시작된 지 5년여 만입니다. 1심은 검찰 기소내용을 모두 인정하고 공무원들에 징역형을 선고했습니다. 반면 2심은 1심이 사실 판단과 법리 해석 모두 잘못했다며 전부 무죄로 뒤집었습니다. 검사가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2심의 판단이 맞다고 봤습니다.

실무 담당자였던 공무원들은 천당과 지옥을 오고 갔습니다. 공무원은 금고 이상 형이 확정되면 당연 퇴직하게 되고, 연금도 절반으로 줄어들기 때문이죠. 직업적으로는 사형선고와 다름없습니다. 검찰은 왜 이들을 법정에 세웠고, 법원에선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린 걸까요?

"1948년, 건국이냐 정부 수립이냐" 법정으로 간 교과서 수정

논란은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새로 들어서고 나서, 교육부는 교과서의 일부 기술을 고치려고 했습니다. 앞서 박근혜 정부에서 집필된 기존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는 1948년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아닌 "대한민국 수립"으로 표현했습니다.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즉 우리나라가 1948년 새로 건국됐다고 보는 관점을 반영합니다. 영토와 주권이 인정되고, 선거에 의해 나라가 제대로 모습을 갖춘 건 이때라는 겁니다. 이 입장은 2000년대 초 뉴라이트 그룹이 시작해, 보수 진영이 지지해왔습니다.

반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표현은 1948년 이미 존재하던 나라를 되찾았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1919년 3·1운동과 임시 정부 설립으로 이미 나라가 세워졌고 1948년 정식 정부가 출범했을 뿐이라고 봅니다. 일제의 불법 침략, 항일독립운동을 연장선상에서 인식하는 건데, 주로 진보진영의 입장과 일치합니다. 제헌 헌법의 시각이기도 합니다.

정부를 넣느냐 마느냐, 단 한 단어 차이지만 논쟁이 거듭 되면서 관점 차이가 커졌습니다. 박근혜 정부에선 '정부 수립' 대신 '대한민국 수립'을 쓰라는 국정역사 교과서 사태를 겪었습니다. 박 대통령 탄핵으로 새 정부가 출범한 것을 계기로, 교과서에서 문제의 표현을 고치기로 했습니다.

"나 몰래 수정됐다" 책임 집필자 폭로 뒤 검찰 수사

그런데, 재수정 이듬해인 2018년, 교과서의 책임 집필자였던 진주교대 박 모 교수의 폭로가 나왔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초등학교 6학년 사회 교과서의 기술이 다수 바뀌었다는 겁니다. 교육부가 1948년 시기를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수정해달라고 요구하길래 고함을 치며 거부했는데, 아예 자기를 배제한 채 교과서가 변경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당시 현 여당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의 고발로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2019년, 검찰은 당시 수정 과정에 관여한 교육부 과장 등 공무원 2명과 교과서를 출판한 출판사 직원을 재판에 넘겼습니다. 검찰은 책임집필자인 박 교수 동의 없이 교과서가 2백여 군데나 수정됐고, 이 과정에 교육부의 서류 조작 등 불법이 있었다고 결론 냈습니다.

법정에 선 교육부 공무원들은 실무 관료로서 절차대로 교과서를 고쳤을 뿐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수정 내용은 별도로 임명한 대학교수와 현직 교사 등 심의위원들이 결정했고, 자신들은 역사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만큼 개입할 능력도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이들은 또 애초에 박 교수가 책임 집필한 교과서가 교육부 공식 기준을 지키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점은 검찰도 수긍했습니다. 왜냐하면 해당 교과서에 적용된 2009년 교육과정 성취기준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표기하도록 돼 있기 때문입니다. 공무원들은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 기조에 맞춘 "대한민국 수립" 표현이 바뀌었고, 발간된 교과서를 본 일선 교사들과 다른 집필진의 지적이 있었기 때문에 재수정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기준 어긋난 표현 바로 잡은 것"‥1심 "공무원들 직권남용"

하지만, 지난 2021년 1심 재판부는 검찰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교육부 공무원들이 권한을 남용해 박 교수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했다고 봤습니다. 박 교수가 한 차례 교과서 수정을 거부했다고 해서 최종적으로 교육부의 승인을 거쳐 수정 보완할 권리 자체를 포기했다고 볼 수 없고, 교육부가 수정을 주도해놓고 별도로 꾸린 편찬위원회가 승인을 요청한 것처럼 꾸미기까지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판사 1인이 심리하는 단독 재판부는 검찰 공소장 논리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그러면서, 교육부 공무원들이 "무책임한 변명을 하는데 급급하고 문제의식도 없다"고 질타했습니다. 교육부 담당 과장에겐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이, 실무 연구사에겐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됐습니다. 편찬위원장인 박 교수의 도장을 대신 찍은 출판사 직원만 선고 유예로 선처했습니다.

반전은 2심에서 일어났습니다. 징역형이 선고됐던 공무원 2명 모두 무죄로 뒤집힌 겁니다. 논리는 단순했습니다. 관련 규정과 국정교과서 위탁 계약에 따르면, 교육부가 교과서를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에, 처음부터 집필진 동의 없는 무단 수정이란 개념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실제 위탁 계약서는 "필요할 경우 교육부 장관은 편찬위원장에게 개편 또는 수정을 요구할 수 있고, 위원장은 이를 수용해야한다"(8조)고 돼 있었습니다. 또 교과서 발간 이후라도 "편찬위원장은 수정 보완 요구에 성실히 응해야한다"고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또한 "교과서 개발 완료 뒤 교육부장관이 자체적으로 수정 보완할 수 있다"(10조)고 정해놓았습니다. 그러니 책임집필자이자 편찬위원장인 박 교수가 수정을 거부한 건 오히려 계약 위반에 해당합니다.

2심 전원 무죄‥"편찬 계약에 '교육부 자체 수정 가능'"

더구나 문제의 초등 6학년 사회 교과서는 자율성이 다소 인정되는 검정 교과서가 아닌, 국정교과서였습니다. 국정교과서는 교육부 주문에 따라 집필해서 개발이 끝나면 저작권이 교육부에 귀속됩니다. 처분권이 교육부에 있는 저작물이란 의미입니다.

검찰은 수정에 반대한 박 교수를 배제하고 임의로 수정을 검토할 위원회를 구성한 것도 직권남용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이 역시 교육부가 정당한 권한으로 교과서 수정을 직접 주도하는 과정에서 위원들을 위촉한 것이니, 권한 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무엇보다 교육 과정 기준에 맞지 않는 잘못된 표현을 정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부 절차상 부적절한 점이 있더라도 부당한 행위로 형사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의 공소장이 국회를 통해 공개됐을 때, 출판사 직원이 교육부 지시로 수정 사항을 협의한 기록에 참여하지 않은 박 교수 도장을 몰래 날인했다는 대목이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언론은 '도둑 날인'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행위는 사문서 위조 등의 범죄로 기소됐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이 혐의도 무죄로 판결 났습니다. 출판사 직원이 정말 교육부의 조작 지시를 받고 도장을 찍은 건지, 아님 관행대로 알아서 대리 날인했을 뿐인지 검찰이 입증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실제 이 직원은 1심 재판정에서 "매년 해왔던대로 협의록을 (날인) 작성해서 보냈다"면서, "박 교수 도장을 가지고 있다고 교육부 공무원한테 이야기한 적도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문정부 교과서 수정 과정만 '콕' 집어 기소, 적절성 논란

2심에 이어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지만, 2018년 이래 6년 넘게 수사와 재판을 받아야 했던 공무원들은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1심 유죄 판결 이후 징계 절차도 시작됐습니다. 일부 언론은 징계 결론을 내지 않고 법으로 보장된 육아 휴직을 쓰게 해줬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처음부터 검찰이 형사처벌이 어려운 사안을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비판도 나옵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문재인 정부 때의 교과서 수정 과정만을 똑 떼어 문제 삼았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안은 박근혜 정부 시절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부터 살펴야 합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에서 국사 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확정된 뒤, 청와대 비밀TF를 만들고 교과서 집필 기준을 수정하라는 요구 21건을 교육부에 전달했습니다. 당시 교육부는 아직 교과서가 따라야 할 사회과 교육기준의 성취기준이 바뀌지도 않았는데, 정부 방침에 따라 사실상 집필이 종료된 2017학년도 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고쳤습니다. 발간 시점에 적용됐어야 할 2009년 성취 기준을 어긴 겁니다.

이때의 수정 역시 교육부 연구사가 편찬위원장 박 교수에 요청해서 이뤄졌고, 다른 집필자들이 참여하는 절차 없이 편찬위원장 주도로 진행했습니다. 박 교수 역시 "교육부 요청으로 수정한 걸 다시 수정해달라 하니 거부했다"는 취지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다른 편찬 위원들은 수정 사실을 알지 못해 절차상 문제의 소지는 이때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박근혜 정부 시절 수정 행위는 기소하지 않았습니다.

수사와 공소 유지를 담당했던 검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와 연결지었습니다. 특히 경찰이 당초 불기소로 의견을 올렸지만 끈질긴 수사로 자신이 범죄를 밝혀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검사는 "검수완박 법안 시행 시 백지장처럼 하얀 아이들이 잘못된 국정교과서에 노출되더라도, 검찰에선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라며 "왜 이렇게 무리하게 검수완박을 추진하는지 그 의도를 알 것 같다"고 공개 주장했습니다.

정권 바뀔 때마다 검찰 수사‥"무능한 공무원만 생존"

사실 이 사건 배경엔 정치권의 '힘겨루기'가 있었습니다. 박 교수의 무단 수정 폭로가 있던 2018년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교과서 사태에 대한 교육부 진상조사가 있던 시기입니다. 박 정부가 찬성 서명지 조작에 관여하고 관변단체 지지 신문 광고와 교수 집단 성명을 기획하는 등 여론조작했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습니다.

탄핵 이후 '수세'에 몰렸던 자유한국당은, 이번 사안을 '공세'로 전환할 계기로 삼고자 했습니다. 박 교수 폭로 뒤 당 차원의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적인 이슈로 제기했습니다. 자유한국당은 교육부총리와 청와대를 겨눴습니다. "박근혜 정부 국정교과서를 공격하더니, 문재인 정부가 저지른 더 심한 불법이 발견됐다"는 겁니다.

공직 사회에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역사 전쟁'에 애먼 실무 직원들만 고통을 겪는다는 불만이 나옵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이때 교과서 수정은 2009년 교육과정 성취 기준에 맞게 되돌리자는 거였다. 그런데, 박 교수가 거부해 원래 교과서를 주로 집필한 다른 교수분께 수정 작업을 맡긴 것"이라며 "기소된 당사자들은 너무 억울해한다"고 전했습니다.

윤석열 정부 공무원들도 자의적인 검찰 수사의 칼끝이 자신들을 향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현 정부 대통령실에 근무했던 한 고위공무원은 "일을 할 때 직권남용죄가 적용될 수 있는 지부터 생각할 수밖에 없다. 수사를 피하려면 해오던 대로 하면 된다"면서 "복지부동하는 무능한 공무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나세웅 기자(salto@mbc.co.kr)

기사 원문 - https://imnews.imbc.com/news/2024/society/article/6591165_3643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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