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집이란 무엇인가 [독서일기]

장정일 2024. 4. 21. 08:1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축복을 비는 마음〉
김혜진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이지영 그림

인간은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라고 실존주의자는 말한다. 하지만 인간은 웬만해서는 세계에 함부로 내던져지지 않는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공간의 시학〉(민음사, 1990)에서 그들의 성급한 형이상학을 이렇게 공박한다. “인간은 ‘세계에 내던져’지기에 앞서, 집이라는 요람에 놓여지는 것이다. 삶은 잘 시작된다. 삶은 집의 품속에 포근하게 숨겨지고 보호되어 시작되는 것이다.” 인간이 언젠가는 요람 밖으로 내쳐진다는 사실을 바슐라르 또한 모르지 않는다. 다만 실존주의는 인간이 안락한 상태에 놓였던 시원의 단계를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 바슐라르는 낙원에 대한 몽상을 애초부터 삭제하고 시작하는 실존주의를 ‘2차적인 형이상학’에 지나지 않는다고 깎아내린다. 그럴 때, 행복에 대한 원초적인 기억을 끈질기게 되살리는 바슐라르의 시학은 1차적인 형이상학이 된다.

김혜진의 세 번째 단편소설집 〈축복을 비는 마음〉(문학과지성사, 2023)에 실려 있는 작품 여덟 편은 ‘집’이 중요한 모티프다. 행복의 철학자 바슐라르의 말대로 하면, 집은 세계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포근한 요람이어야 하지만, 이 소설집에 나오는 대부분의 주인공들에게는 집이 없다. ‘미애’에 나오는 이혼녀 미애는 여섯 살 난 딸을 데리고 친구가 잠시 집을 비운 임대동 아파트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지만, 친구가 지방에서 돌아오는 석 달 후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20세기 아이’에 나오는 세미의 가족, ‘산무동 320-1번지’에 나오는 대리인 부부, 장마철마다 악취가 진동하는 천변 동네의 원룸에서 탈출하는 게 희망인 ‘자전거와 세계’의 현지는 그나마 사정이 낫지만, “집이 최고지(‘사랑하는 미래’)”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불안과 불확실한 미래에 시달린다. 그런데 이 소설집에 나오는 어떤 주인공들은 집이 있는데도 똑같은 고통을 당한다. ‘목화맨션’의 만옥 부부와 ‘이남터미널’의 남우 사모님이 그렇다. 만옥 부부는 지은 지 30년이 되는 열 평짜리 오피스텔의 주인이고, 남우 사모님도 그와 비슷한 형편의 오피스텔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집 하나를 갖겠다는 일념으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정보를 모으고, “빛바랜 집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집들. 누구도 원하지 않고, 가지려고 하지 않는 집들(‘이남터미널’)“을 찾아다녔다. 이들은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모아서 빚까지(‘목화맨션’)” 내어 집을 장만했지만, 자신들은 여전히 전세나 월세를 산다.

만옥 부부와 남우 사모님이 빚을 내서 구도심과 외곽 지역에 매물로 나온 낡아빠진 집을 구입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월세 수입으로 노후 보장을 해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개발 프리미엄을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7~8년이 넘도록 ‘된다, 안 된다’ 하던 재개발이 물 건너가면서 이들이 구매한 집은 ‘죽은 동네’의 아무도 살지 않으려는 집이 된다. 이러면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세입자를 구하더라도 골칫덩이를 만나게 된다. “돈 주고 산다고 다 자기 집이 되나요? 감당할 능력이 있어야지(‘목화맨션’).”

집이 없는 사람의 불안과 집을 소유한 사람의 불안을 동등하게 취급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불안은 뿌리가 같다. 집이 거주의 목적을 잃고 환금 대상이 되면서 수십억 원짜리 집을 가진 사람도 집값의 오르내림에 따라 주체 못할 불안을 겪는다. 바슐라르는 집에 4원소(물·불·흙·공기)와 같은 지위를 부여했지만, 자본주의에서는 4원소도 집도 모두 환금과 투자의 대상이 되었다.

다들 아는 이야기지만, 영어로는 주거 공간을 ‘house(집)’라 하고, 거기에 사는 구성원을 합한 것을 ‘home(가정)’이라고 한다. 전통사회에서는 집과 가정의 의미가 일치했으나, 집이 점점 더 중요한 투자 대상이 되면서 집과 가정은 점점 뜻이 멀어진다. 거주할 집이 없어서 결혼 내지 동거를 하지 못하고, 집이 생길 때까지 아이 낳기를 미루는 것이다. 과장하자면, 가정은 집에 담기는 내용물이다.

“이 나라는 부동산 때문에 망할 거야”

열악한 주거에 놓인 주인공들은 대개 이혼녀이거나 독신녀이고, 외부모 밑에서 자라거나 아예 부모 없이 자랐다. 또 몇몇 소설에서는 남편이 중병에 걸렸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경제적 능력이 없다. 이런 설정은 집과 가정의 밀접성을 강조해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가정을 정상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소설집의 표제작 ‘축복을 비는 마음’의 결말은, 어쩌면 열 살이나 차이 나는 두 주인공이 생활동반자(성인 두 사람이 상호 합의에 따라 일상생활과 가사 등을 공유하며 서로 돌보는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하게 만든다.

‘산무동 320-1번지’의 주인공이 “이 나라는 부동산 때문에 망할 거야”라고 저주했던 한국의 주택 문제는 SF적 발상으로 접근한 김유담의 〈스페이스 M〉(위즈덤하우스, 2024)에서 희극적인 해결을 본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음침한 다세대주택에서 탈출할 길이 없던 임하나는 스페이스 M이라는 회사가 분양 중인 독신자들의 공유주택 미니어처 랜드에 입주한다. 이곳의 입주자들은 공유주택에 출입할 때마다 자신의 몸을 10분의 1 크기로 줄이거나, 본래대로 몸의 크기를 되돌리는 약을 먹어야 한다. 10분의 1 크기로 줄여진 인간에 맞게 지어진 미니어처 랜드는 땅값과 건설비도 그만큼 적게 들었기에 분양권이나 월세도 정상적인 주택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몸이 커지고 작아지는 알약이 아무런 과학적 설명이나 원리에 의거하지 않았기에 이 소설은 SF에 미달하지만, 소설의 주제만은 명확하다. 집이 없는 인간은 온전한 인간이 아닌, ‘10분의 1’의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을 ‘세계-내-존재’라고 했던 마르틴 하이데거는 인간은 어딘가에 거주함으로써만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는 거주의 가장 큰 특성으로 보살핌을 꼽았는데, 인간은 어딘가에 거주할 때 서로가 서로에게 귀속해 있음을 실감하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여 듣게 된다고 한다. 거주에 대한 이런 정의는 집과 가정의 밀접성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김혜진의 소설 ‘사랑하는 미래’의 여주인공 강주인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게 되면서 자신의 초라한 집이 달라진 것을 깨닫는다. “그녀의 집은 잿빛 담벼락 너머에 자리한 수많은 주택 중 하나가 아니다. 그 집엔 서로를 향한 두 사람의 순수한 애정과 진실한 마음이 머물러 있다. 그녀의 집은 특별하고 유일한 장소다. 매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하고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움트는 공간이다.” 청년들에게 집을 주라. 거기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