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적 리얼리즘’ 하면 이 영화감독을 떠올리리 [비장의 무비]

김세윤 2024. 4. 21.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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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라짜로〉(2018)를 만들 때 이야기.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새 영화 〈키메라〉의 주인공 아르투(조시 오코너)는 도굴꾼이다.

'특별한 사건'을 겪으면서 주인공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와 동행하는 '특별한 시간' 덕분에 우리의 세계관이 달라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 죽음과 생명, 성스러운 것과 불경스러운 것이 공존하는 땅에서 "마침내 이 다층적인 이야기, 두 세계 사이의 관계를 다룬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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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감독:알리체 로르바케르
출연:조시 오코너, 알바 로르바케르, 이사벨라 로셀리니, 캐롤 두아르테

영화 〈행복한 라짜로〉(2018)를 만들 때 이야기. 투자자들이 알리체 로르바케르 감독에게 물었단다. 그래서 영화가 끝날 때쯤 주인공에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느냐고. 주인공이 ‘특별한 사건’을 겪으면서 조금이라도 ‘삶이 달라지는 이야기’를 관객은 보고 싶어한다면서.

“아니요. 그런 일은 제 영화에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턴테이블의 가운데 축(spindle) 같은 거예요. 움직이지 않는 축이 레코드를 돌아가게 하는 것처럼, 주인공이 아니라 주인공을 둘러싼 세상이 변하는 거죠.”

그렇게 받아치며 완성한 영화가 제71회 칸 국제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과거의 시골 마을과 현재의 대도시를 가로지르는 주인공 라짜로의 신비로운 여정에 나 역시 푹 빠져들었다. “순식간에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이 시대의 우화”라는 〈뉴욕타임스〉의 한 줄 평이 곧 내 마음이었다.

알리체 로르바케르의 새 영화 〈키메라〉의 주인공 아르투(조시 오코너)는 도굴꾼이다. 땅속 유물을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가 찾아낸 무덤 덕분에 동료들이 점점 더 많은 돈을 만지는 사이, 다시는 만질 수 없는 존재를 향한 그리움만 더욱 커져가는 아르투. 떠나간 연인을 찾아 헤매는 그의 여정을 따라 영화의 시공간이 뒤틀린다. 마법 같은 순간들이 찾아오고 기적 같은 판타지와 마주친다.

라짜로가 턴테이블의 축이라면 아르투는 카트리지의 바늘. 제자리에 붙박인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씩 나아간다. 발밑의 세상에 귀 기울여 과거의 이야기를 듣고, 시간의 틈을 따라 미끄러지다 삶의 다른 칸에서 깨어난다. 그래서 이야기가 끝날 때쯤 주인공이 어떻게 달라지느냐고? 아니. 이번에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특별한 사건’을 겪으면서 주인공이 변하는 게 아니라 그와 동행하는 '특별한 시간’ 덕분에 우리의 세계관이 달라지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고 자란 이탈리아는 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이다. 흙 몇 센티미터만 파면 자갈 사이로 유물 조각이 드러나고, 로마시대 수도(水道) 바로 옆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는다. 와인 저장고에 들어가면 그곳이 한때 에트루리아 문명의 무덤이었다는 걸 알게 되는 식이다.”

과거와 현재, 죽음과 생명, 성스러운 것과 불경스러운 것이 공존하는 땅에서 “마침내 이 다층적인 이야기, 두 세계 사이의 관계를 다룬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는 감독. 흔히 시간을 ‘흐르는 강물’에 비유하지만 그의 영화 속 시간은 언제나 ’머무르는 호수’에 가깝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대신 시간의 깊이를 헤아리게 만드는 영화. 과거·현재·미래가 함께 담긴 시간의 호수 위로 새벽 물안개처럼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이야기 〈키메라〉.

전작 〈행복한 라짜로〉처럼 신비롭지만 이번엔 그때보다 훨씬 더 낭만적인 기운이 넘친다. 영화가 끝난 뒤에도, 보이지 않는 빨간 실 한 올 손에 움켜쥐고 오랫동안 새로운 상상을 이어가게 만든다. 몇 해 전 봉준호 감독이 뽑은 ‘앞으로 20년 동안 세계 영화계를 이끌 신인 감독 20명’ 가운데 한 사람. 알리체 로르바케르. 나는 그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는 오래된 용어의 새로운 주인이라고 생각한다.

김세윤 (영화 칼럼니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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