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의 멋] 자연과 함께, 공간을 누리다 ‘담양 소쇄원’

김보경 기자 2024. 4. 21. 08: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선조들의 멋] 전통조경의 진수’ 담양 소쇄원
조선 최고의 민간 원림 꼽혀
계류 중심으로 건물 세워져
주위엔 큰 나무들 자리잡아
인공적인 조형 최소화하고
주변 자연물은 그대로 유지

길가에 말끔하게 정돈된 수풀과 가로수, 공동주택 앞 예쁘게 꾸며진 화단. 잘 가꾼 경관은 무심코 지나칠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처럼 생태적 요소를 이용해 생활공간을 가꾸고 조성하는 일을 ‘조경’이라고 한다. 그 가운데서도 ‘전통조경’은 경관을 아름답게 조성할 뿐만 아니라 우리 고유의 멋과 선조들의 사상·관습·문화가 담겨 있다. 지난해 전통조경의 보급·육성을 다룬 ‘자연유산법’이 제정되면서 그에 대한 관심도 점점 커지는 추세다. 이재용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와 함께 전통조경의 진면모를 느낄 수 있는 전남 담양 ‘소쇄원’을 찾았다.

“기자님은 소쇄원을 와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자주 이곳에 와요. 계절마다 볼 수 있는 경관이 다 다르거든요.”

이 교수를 만난 곳은 울창한 대나무숲이 펼쳐진 소쇄원 입구다. 광주광역시와 전남을 두루 걸친 무등산 자락에 있는 소쇄원은 조선 중기 학자 양산보 선생이 세속에서 벗어나 은둔하며 수양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4628㎡(1400평) 규모에 ‘광풍각’ ‘제월당’ ‘대봉대’ 건물과 짧은 담장이 자연과 어우러져 있다. 500년이 넘는 세월에도 군더더기 없이 소박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소쇄원은 조선 최고의 민간 ‘원림’이라고도 부른다. 원림이란 집에서 멀지 않은 풍광 좋은 곳에 수시로 오갈 수 있도록 만든 공간으로 오늘날 별장 같은 개념이다. 이 교수는 소쇄원을 조선시대 초기 원림 양식을 그대로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로 꼽았다.

나무에 연둣빛 이파리가 돋아나기 시작하는 전남 담양의 소쇄원 풍경. 이재용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조경학과 교수(맨 왼쪽)와 기자가 광풍각 마루 끝에 걸터앉아 전통조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쇄원은 과거 경관을 짐작할 수 있는 많은 고문헌이 남아 있어 전통조경 연구에 큰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하서 김인후의 시 ‘소쇄원 48영’과 작자 미상의 판화 ‘소쇄원도’가 대표적이에요. 특히 ‘소쇄원 48영’엔 원림의 구성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방법과 즐기기 좋은 시기까지 자세히 언급돼 있죠.”

계류 위를 지나는 외나무다리. 소쇄원의 정취에 선비가 된 듯 자연스럽게 뒷짐을 지게 된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하다는 뜻인데, 소쇄원에 들어서자마자 이유를 알게 됐다. 오전부터 이곳을 찾는 방문객이 많았지만 모두 이곳 경치에 취한 듯 조용한 바람소리만 들렸다. 이 교수는 소쇄원을 즐기는 순서가 따로 있다며 입구에서 50m 떨어진 외나무다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외나무다리를 건너 가장 먼저 보이는 건물은 계류(溪流·계곡물) 옆에 지어진 정자 광풍각이다. 과거엔 사랑방이자 물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던 장소다. 지금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소쇄원의 정취를 느끼며 잠시 걸터앉는 쉼터다.

“광풍각은 계류를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장소예요. 소쇄원은 이 계류를 중심으로 조성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물길을 따라 건물이 세워졌고, 주변으로 오동나무·목백일홍 같은 큰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어요.”

광풍각을 지나 계단을 올라가면 팔각지붕의 제월당이 나타난다. 제월당은 주인이 거처하면서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곳이다. 마루 끝에 앉아 소쇄원 전경을 내려다보니 한폭의 진경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전통조경엔 어떤 사상이 담겨 있을까. 한국 전통조경엔 일본·중국 등 어느 인접 국가보다도 ‘자연주의’ 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자연주의 조경이란 인공적 조형을 최소화하고 자연물을 그대로 유지하되, 섬세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공간의 아름다움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말한다.

소쇄원 곳곳에도 이러한 전통조경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제월당 좌측에 세워진 ‘매대(梅臺)’다. 매대는 매화꽃을 심은 ‘화계’인데, 화계는 돌로 계단처럼 층층이 단을 쌓아 그 위에 꽃나무 등 식물을 심는 전통 조경시설이다. 우리나라 전통정원은 산지 위에 조성된 곳이 많다. 이 때문에 경사가 심한 곳에 화계를 만들어 자연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지형적 한계를 극복한 것이다. ‘오곡문’ 옆 물길이 뚫린 담장에서도 지혜를 엿볼 수 있다. 담장 밑을 돌로 받쳐 그 사이로 물이 흐르도록 만든 것이다. 자연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선조들의 배려가 담긴 조경 방법이다. 이 교수는 계류와 두개의 연못을 잇는 나무 홈통도 이곳만의 특별한 구조라고 설명한다.

오곡문 옆 담장엔 물길이 뚫려 있다. 위태롭지만 단단하게 쌓인 돌 사이로 계곡물이 유유히 흘러간다. 담양=김원철 프리랜서 기자

“계류에서 흘러온 물이 나무 홈통을 타고 내려와 연못으로 이어지도록 만들었어요. 마치 나뭇가지에서 빗물이 떨어져 물웅덩이를 만들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죠.”

그는 “전통조경은 오래 볼수록 그 진가를 알 수 있다”며 “한 공간을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가보는 걸 추천한다”고 환한 미소를 지었다.

소쇄원처럼 전통조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에 찾아가 봄의 정취를 만끽해보는 건 어떨까.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