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 코로나 이후 과학자들 더 존중 …자원 부족·고령화, R&D로 극복해야"

문세영 기자 2024. 4.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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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마르 비슬러 독일 헬름홀츠협회 회장
오트마르 비슬러 독일 헬름홀츠협회 회장이 18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국제협력관에서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KIST 제공.

"천연자원 부족, 비싼 인건비, 고령화 등에서 한국과 독일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양국의 과학기술 연구 분야도 비슷합니다. 연구개발(R&D)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양국이 함께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개최한 '한-독 과학기술협력'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18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방문한 오트마르 비슬러 헬름홀츠협회 회장은 한국과 독일이 공통점이 많다는 점에서 동반 성장할 수 있는 지향점을 마련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헬름홀츠협회는 막스플랑크연구회 등과 함께 독일의 4대 연구회 중 하나다. 

독일과 한국 정부출연연구기관 간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방한한 비슬러 회장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과학기술 분야에서 한국과 협력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기대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과학자들이 더욱 존중받고 있다며 한국의 의대 증원과 관련해 과학계에 대한 지원과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음은 비슬러 회장과의 일문일답.

Q. 독일의 4대 연구회 중 하나로 꼽히는 헬름홀츠협회를 소개하면.

"독일에서 가장 큰 연구기관으로 암연구센터, 율리히연구센터, 물성·에너지센터 등 18개 회원 기관들이 있다. 연방정부의 많은 지원을 통해 도전적인 과제, 사회적 문제와 연관된 다학제 간 연구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연구 분야는 크게 에너지, 지구 환경·기후, 바이오·메디컬, 항공·우주, 모빌리티·교통, 하이엔드 물리학, 정보 기술 등으로 사회적인 도전 과제들을 다룬다"

Q. 헬름홀츠는 막스플랑크, 라이프니츠, 프라운호퍼 등 나머지 4대 연구회와는 어떤 차별점 혹은 강점이 있나.

"독일에 있는 연구기관들은 각기 다른 우선순위와 목표가 있다. 막스플랑크는 기초과학에 집중하고 있고 프라운호퍼는 응용과학에 집중하면서 업계와 많은 협업을 한다. 라이프니츠는 사회과학부터 박물관, 공학, 바이오·메디컬까지 연구범위가 넓은 편이다. 

헬름홀츠는 시대가 당면하고 있는 여러 중요한 문제들, 도전과제들, 협업이 필요한 과제들에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다학제 간에 장기적으로 진행하는 과제들에 집중하고 있다. 헬름홀츠 산하 기관들의 특징이나 규모들을 보면 국제적인 차원에서 해결이 필요한 과제들을 풀어나가는 데 매우 이상적인 연구기관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새로운 에너지 시스템을 만든다거나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찾거나 신약 개발, 미래 모빌리티를 위한 새로운 전략, 인공지능(AI) 및 양자컴퓨팅 솔루션 등을 구축하는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

Q. 한국 연구기관들과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이번에 방한했는데 한국을 협력 파트너로 고려한 이유는 무엇인가. 

"헬름홀츠협회는 전 세계가 당면한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연구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적인 협력이 상당 부분 요구된다. 

한국은 R&D가 굉장히 탄탄하고 막강한 국가이고 경제력도 갖춘 국가다. 한국과 독일은 공통적인 부분도 많다. 천연자원은 부족하고 노동비와 인건비는 비싼 편이다. 그래서 양국은 R&D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연구 분야 자체도 비슷하다. 좀 전에 만났던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관계자를 통해 한국도 에너지, 기후, 헬스, 모빌리티, 물리학, 정보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고 들었다. 이런 점들을 감안했을 때 함께 협업하면 양쪽 모두에게 좋은 ‘윈윈 상황’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Q. 이번 행사는 생명과학, 에너지, 정보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암과 종양 유전학 연구를 했고 의사이기도 하니 생명과학 분야에 특히 관심이 많을 거 같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는 한국과 어떤 협업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이번 방문이 굉장히 짧기 때문에 몇 개의 분야만 선택했는데 개인적으로는 생명과학, 바이오와 메디컬에 관심이 있다. 헬름홀츠협회의 18개 산하 기관 중 5곳이 바이오와 메디컬을 담당하고 있다. 암 연구, 감염병 연구, 당뇨 연구, 고령화 연구, 심뇌혈관 연구 등 5개 분야를 각 기관이 맡아서 연구하고 있다. 

5개 분야 모두 한국과 협업할 수 있다고 본다. 한국도 독일처럼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사회다. 노화로 인한 질병은 한국과 독일 모두가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양국이 협업해야 하는 분야로 생각된다. 종양학 쪽도 마찬가지다. 양국이 협업을 활성화할 수 있는 분야다."

오트마르 비슬러 독일 헬름홀츠협회 회장이 18일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국제협력관에서 동아사이언스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KIST 제공.

Q. 독일은 과학자들에 대한 처우가 좋은 편인가. 한국은 최근 의대 증원 이슈와 맞물려 이공계 학생들이 의대로 쏠릴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재정적인 측면에서 보다 안정적인 직업을 택하려는 선호도 때문이다. 

"독일 과학자들의 보수는 괜찮은 편이다. 많은 존중을 받고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존중 받게 됐다. 전 세계의 인류가 위협적인 상황에 처했을 때 과학자들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걸 국민들이 느끼게 됐다. 

의사와 과학자 간 처우에 차이가 있다는 점은 알고 있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독일 전부 그렇다. 이 부분은 해결이 필요한 부분으로 생각된다.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한국 정부가 의대 증원을 생각하는 것 같은데 과학계에 대한 지원과 의료적인 부분에 대한 지원의 균형을 잘 맞춰나가야 한다."

Q. 의대 증원을 해도 대부분 임상의사가 되며 의사과학자 비율은 낮다. 독일 상황은 어떤가.

"독일은 상황이 좀 다르다. 독일에는 의사과학자들이 제법 많다. 과학자가 의학에 대해 이해하고 임상 지식을 잘 활용할 수 있다는 건 바이오 및 메디컬 연구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도 이런 부분을 준비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독일 정부는 연구기관들에 R&D 예산을 충분히 지원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독일은 20년 전부터 국가 발전에 있어 R&D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천명했다. 이러한 정부의 방침이 과학자들과 연구기관들에게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등 여러 지정학적인 이슈들이 발생했고 물가와 인건비가 오르면서 과학계가 부담을 느끼는 부분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연방정부는 계속해서 강력하게 R&D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도 R&D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양국은 앞서 말한 것처럼 닮은 점이 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서는 R&D와 혁신에 의존해야 한다."

Q. 한국이 최근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으로 가입했다. 그런데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일부 유럽 연구자들은 한국의 가입을 환영하지 않는다. 보조금을 두고 한국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인데 독일 같은 과학 선진국보다는 과학 선진화가 더딘 유럽 국가들에서 나오는 얘기다. 이런 불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한국이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으로 가입한 것을 굉장히 환영한다. 유럽연합(EU)이 R&D 파트너 선정에 개방적이라는 점 또한 반갑게 생각하고 있다. 과학은 국제 협력이 필요하다. 최고의 과학기술을 가진 국가들이 협력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한국은 굉장히 좋은 파트너이고 한국과 EU가 동반 성장하는 상황을 그려갈 수 있다. 

과학은 ‘경쟁적인 비즈니스 분야’이기도 하다. 경쟁을 회피할 수 없다. 오히려 경쟁해야 한다. 보조금과 예산에 대해 얘기하자면 한국은 준회원으로 가입하면서 기금을 출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자국의 몫을 내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가입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함께 하게 돼서 기쁘게 생각해야 한다."

Q. 중국과 미국이 치열하게 기술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데 이 양강 구도로 계속 갈 수는 없다. 독일, 한국 등은 이 구도를 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미국과 중국 간에 기술에 대한 치열한 패권 경쟁이 있다. 이런 국가 경쟁 구도 속에서 독일도, EU도 ‘메이저 플레이어’로 부상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과학기술과 탄탄한 R&D를 갖춘 국가들끼리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고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이 EU의 좋은 협업 사례가 될 것으로 생각하고 일본, 싱가포르, 호주 등의 국가도 함께 협업해나갈 수 있을 것으로 본다."

Q. 독일은 노벨상 수상자들을 많이 배출한 나라다. 아직 한국은 과학 분야에서 노벨 수상자가 없는데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독일은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세계 인류 문제에 대해 연구해왔다. 기초과학에 대한 호기심과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노벨상 수상자들은 기초과학 분야에서 많이 나왔다. 기초과학은 혁신과 응용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기초연구와 응용연구가 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기초 연구를 통해서는 노벨상처럼 명성 있는 수상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응용연구는 경제적인 이득으로 이어진다. 한국은 응용 분야에 있어서는 굉장히 성공적인 결과물들을 내고 있다."

Q. 앞으로 한국과 독일이 단기적, 장기적인 차원에서 어떤 청사진을 함께 그려나가길 바라는가? 

"젊은 과학자들 간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양국의 인재들이 서로 만나고 서로의 연구기관을 방문하는 것이 장기적인 협업으로 가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양국의 연구기관들이 장기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분야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번 방문이 그런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양국이 두루 득을 볼 수 있고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성해낼 수 있는 분야를 찾아야 하는데 바이오, 메디컬, 데이터사이언스, 에너지 등에서 협업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독일과 굉장히 비슷하다는 사실을 느낀다. 양국 간 협업은 실질적인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두 국가의 협업에 대해 낙관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독일이든 한국이든 혼자 하는 것보단 함께 했을 때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문세영 기자 moon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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