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난 듯 우울해 보이는 아들…“버려도 되나요” [씨네프레소]
[씨네프레소-119] 영화 ‘애프터 양’
“그 아이는 고장난 것처럼 우울해 보였죠. 환불받았어요.”
인간을 두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사회에서 곧 매장당할 것이다. 입양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누구든 알기 때문이다. 입양은 한 존재를 낳는 것과 다르지 않은 행위다. 이제 인간은 개나 고양이를 입양했다가 파양하는 것도 비인간적인 일이라고 여긴다.
사실 ‘사람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존재를 어디까지 존중할 것인가’라는 물음은 새롭지 않다. SF영화의 닳고 닳은 주제다. 하지만 ‘애프터 양’은 이 질문이 비단 로봇에 한정되지 않음을 보여주면서 인간이 자기 존재를 성찰할 기회를 부여한다.
사실 양은 인간이 아닌 휴머노이드다. 제이크가 아시아계인 딸을 입양할 때 함께 사들였다. 딸이 미국 사회에 보다 잘 정착하기 위해서는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양은 딸에게 아시아인으로서 알아야 할 것을 알려주고, 또 딸의 감정적 필요를 채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양이 고장난다. 각종 수리센터를 돌아다녔지만 고칠 수 없다는 이야기만 한다. 그 과정에서 제이크는 양의 기억이 담긴 메모리칩을 발견하고, 그의 기억을 따라간다.
제이크가 이를 몰랐던 것은 양이 한 번도 내색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많은 상처를 받는 가운데, 세상을 향한 증오를 쌓기보다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남에게는 주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하다. 그래서 양은 제이크네 딸이 학교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정체성 혼란을 부모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보듬는다. 나무를 접했을 때, 하나가 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딸 또한 다른 곳에서 왔지만 이 집과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제이크의 부인이 언젠가 모든 게 끝난다는 사실이 두렵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양은 답한다. “저는 끝난 다음에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괜찮아요. 무(無)가 없으면 유(有)도 없으니까요.” 숱한 이별을 통해서 양은 헤어짐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제이크는 양의 기억을 더듬는 과정에서 알게 된다. 자신이 보는 ‘쓰임새’만이 양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양은 누군가를 사랑했고, 버림받았을 때 아파했다. 목적을 가지고 자기를 선택했을 뿐인 제이크네 가족을 진심으로 아꼈다. 제이크는 양의 삶이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 것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에 걸쳐 존재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나와 만나는 장소와 시간을 넘어 더 큰 영역에서 살아간다. 누군가를 도구로만 여기는 피상적인 관계를 피하기 위해선 상상력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다른 시간과 장소에선 그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적극적으로 그려보는 것이다.
‘씨네프레소’는 OTT에서 감상 가능한 영화와 드라마를 리뷰하는 코너입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 구독 버튼을 누르면 더 많은 리뷰를 볼 수 있습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더는 우리 당 얼씬거리면 안 돼”…홍준표, 한동훈 또 저격 - 매일경제
- “겁나서 돈 맡기겠나”…고객돈 4.7억 빼돌린 50대 농협 직원, 수법이 - 매일경제
- 범생 아들 폰 열어보고 기절한 엄마…“10초만에 거액 판돈 오가다니” - 매일경제
- “기초연금에 주거비도”vs“빈곤하면 기초연금 더줘야”…열띤 토론회 - 매일경제
- “삼성전자 기다려라”…AI 새옷 입는 애플, ‘온디바이스 AI’ 경쟁 점화 - 매일경제
- 한강서 처음 본 일행 폭행한 30대 배달기사…“나도 맞았다” 정당방위 주장했지만 - 매일경제
- “80층 아파트 엄청 자랑하더니”…돌연 낮고 빽빽하게 짓는다는 北, 왜? - 매일경제
- 보증금 못 받고 쫓겨난 세입자들, 도어락 교체해 들어갔다…법원 판결은 - 매일경제
- “귀에는 스칠뿐, 바로 내 심장 때렸다”…‘이 한국 청년’ 세계를 울린다 - 매일경제
- ‘ABS 오심 은폐’ 이민호 심판, KBO로부터 해고 퇴출...초유의 중징계 배경은? -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