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용정 그리고 근대 풍경] ⑥ 백지묶음 잡기장에 쓴 습작시

박미현 2024. 4. 20.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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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심연수(1918~1945)는 국권이 없는 시대에 짧은 생애를 살면서 290여 편의 시와 소설, 수필, 평론을 한글문학으로 남겼다.

불운한 시대는 강릉에서 태어난 그를 러시아, 중국, 일본 이주하는 삶으로 이끌었으나 언제나 문학과 함께였다.

이 자료를 직접 정리할 기회를 가졌던 필자는 그가 남긴 작품, 생활기록, 유물을 소개하며 스산했던 시대에 한 시인을 넘어 강원인 이주사를 공유하려 한다.

⑥ 백지묶음 잡기장에 쓴 습작시 시든, 수필이든, 일기든, 메모이든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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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심연수(1918~1945)는 국권이 없는 시대에 짧은 생애를 살면서 290여 편의 시와 소설, 수필, 평론을 한글문학으로 남겼다. 불운한 시대는 강릉에서 태어난 그를 러시아, 중국, 일본 이주하는 삶으로 이끌었으나 언제나 문학과 함께였다. 광복 직전에 중국 왕청현에서 불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으나 편지, 공책, 일기, 도서, 사진, 스크랩 등 다양한 유품은 중국에 남은 유족에 의해 잘 간수됐다가 지금은 강릉의 품으로 돌아왔다. 조카 심상만씨에 의해 고국에 안긴 600점 가까운 자료는 2023년 말 『심연수문학사료전집』(강릉문화원·심연수기념사업회·강원도민일보)으로 완간됐다. 이 자료를 직접 정리할 기회를 가졌던 필자는 그가 남긴 작품, 생활기록, 유물을 소개하며 스산했던 시대에 한 시인을 넘어 강원인 이주사를 공유하려 한다.

[강릉, 용정 그리고 근대 풍경] ⑥ 백지묶음 잡기장에 쓴 습작시

시든, 수필이든, 일기든, 메모이든 글을 쓴다는 것은 자기 표현이다. 고민이나 상상, 떠도는 잡념 따위를 갈무리하려는 의지이다. 심연수는 글 쓰는 행위를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귀한 것으로 여겼다. 용정국민고등학교 4학년이던 1940년 2월 16일 금요일자 일기는 참된 인생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할 지 고민이 드러나있다. 어떤 순간에서도 희망을 놓아서는 안된다는 다짐과 함께 자기를 표현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중요함을 인식하는 대목이 나온다.

“나는 문인이 부럽더라 문인인 그들은 자기하고 싶흔 일을 글로서 발현할 수 있으니 그 얼마나 행복이랴. 세상에는 자기를 표현하지 못는 자처럼 불상한 자는 또 없을 것이다.”

심연수가 문학에 매료된 이유는 다름아닌 ‘자기 표현’이다. 자기 표현은 크고 작은 굴곡진 삶의 상황에 눌리지 않는 주체성의 근원이다. 그러니 글 쓰는 것이 직업인 작가에 대한 존경과 부러움을 넘어 행복한 삶의 길로 확신하고 있다. 1940년 3월 26일자 화요일 일기에서도 이런 생각이 나타난다. “문인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기의 하고 싶은 일을 글로서 다 나타낼 수 있는 것”이라고 찬탄한다.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1940년 3월 26일 화요일

세상 일 어떤가 하니 쓰고 어렵다 합더이다

세상 일이 어떤가 하니 자미있고 싫이않은 것이라고

하더이다 이것은 어떤 편견이다

두 가지 다 있는 세상사이다 나가서

성 불성은 우리들이 제일보에

있다 천리길도 첫걸음으로부터

시작됨과 같이 다 세상사가 다 마치

한가지다

문인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기의 하고싫

은 일을 글로서 다 나타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쓴 글로서 만인을 웃기고 울리

고 할 큰 일을 하니 무명의 문인이라도

대영웅과 같고 ‘나파륜’도 다른 전세

의 영웅도 문인도 같는가 하노라

천하는 문인을 우러러 보느냐 낮게 보느냐.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 심연수 시인 사료 원문 [심상만 소장본 강릉문화원 제공]

문인을 나폴레옹과 같은 반열의 대영웅으로 놓는 이런 생각은 쉼 없는 글 쓰기 연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만주국 치하 학교 교육에서 모국어인 한글이 아닌 일본어와 만주어를 능숙하게 사용해야 하는 환경 속에서 한글로 습작해갔다. 본격적으로 글 쓰기를 시작한 시기는 동흥중학교에 진학해서였다. 교내 문학부에 가입해 활동한 사실은 졸업앨범 사진으로도 남아있다.

공책을 사는 돈마저 궁핍했던 그는 백지를 실로 묶어 잡기장을 만들어 썼다. 수학이나 물리 등 과목 문제를 풀거나 영어 단어 학습을 위해 연필로 쓴 위에 진한 펜으로 쓰거나 여백에 습작 시와 여행기를 썼다. 여러 번 지우고 고친 흔적이 담긴 학습장 유품은 지금까지 남아 온기를 전한다. 국권을 잃은 시대에 타국에서 사는 녹록지 않은 여건에서도 가슴에 품은 꿈을 키우기 위해 고투한 자취이다.

박미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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