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첼라에서도 통한 K팝, 가창력 논란은 ‘옥에 티’

김영대 음악 평론가 2024. 4. 2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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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위상 커지면서 코첼라 무대에서도 ‘귀한 대접’…가창력 논란, 산업 전반을 돌아보는 계기 삼아야

(시사저널=김영대 음악 평론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콜로라도 사막 위에 쏟아지는 뜨거운 햇볕. 화상을 입고도 그저 음악에 취해 있을 뿐인 마니아들의 더 뜨거운 열정. 모든 뮤지션이 평생 한번쯤은 소망하는 꿈의 무대. 2주에 걸쳐 6일간 펼쳐지는 지구상 최고의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이야기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콜로라도에서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 제공

블랙핑크가 열어젖힌 큰 무대

빌보드 차트, 그래미 어워드와 마찬가지로 미국 대중음악 산업을 떠받치는 중요한 축인 코첼라는 우리와는 관련이 없는 남의 집 잔치로 여겨졌다. 하지만 K팝이 글로벌한 성장을 거둔 이후 코첼라는 해외에서의 지명도를 확장하려는 K팝 아티스트들의 중요한 쇼케이스 기회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돌, 힙합,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뮤지션이 참여해 한국 대중음악의 현대성을 과시하는 자축의 장이 되고 있다.

물론 그 기회를 얻은 아티스트는 아직 많지 않다. 한국 대중음악 전체로 보자면 10개 팀 남짓이다. K팝 아이돌 그룹으로 좁히면 5개 팀 정도다. K팝 3세대 아이돌의 정상이자 글로벌 팝 스타로 등극한 블랙핑크가 대표적이다. 블랙핑크는 2019년 K팝 그룹으로는 최초로 이 무대에 섰다. 4년 후에는 K팝은 물론 아시아 가수 최초의 '헤드라이너'(당일 공연 라인업의 메인 출연자)로 무대에 서서 글로벌한 위상을 한껏 과시했다. 두 무대 모두 K팝에 대한 인지도 상승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탁월한 퍼포먼스와 무대 매너로 아시안 걸그룹에 대한 이미지 자체를 바꿨다'는 평가를 받았다. K팝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이자 터닝포인트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블랙핑크의 성공은 후발주자들에게 중요한 영감이자 발판이 됐다. 2022년에는 레이블 '88 rising'이 꾸민 특별무대의 게스트로 4세대 걸그룹 에스파가 등장했다. 신인답지 않은 퀄리티의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으며 올해 최초로 두 팀의 아이돌을 코첼라에 소개하는 성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반응은 엇갈렸다.

4세대 보이그룹을 대표하는 팀 중 하나인 '에이티즈(ATEEZ)'의 무대는 K팝의 가장 중요한 매력으로 간주되는 퍼포먼스의 매력을 나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마라맛' 혹은 '청양고추맛'으로 묘사되는 이들의 음악은 일반 음악팬들에게는 과하게 느껴질 만큼의 타격감과 노이즈에 가까운 강렬한 사운드를 조합한 것이 특징이다. 빠질 수 없는 게 이 강렬한 사운드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퍼포먼스다. 동작의 강도와 세밀함, 동선의 치밀함, 기계적이지 않으면서 통일감을 주는 춤의 각과 소위 '칼군무' 등의 요소도 중요하겠지만, 사막 한가운데에 지어진 코첼라 무대처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고, 집중도를 확보하기 어려운 무대에서 공연의 성패를 좌우하는 건 역시 라이브 퍼포머로서의 기본기다.

이 기본기에는 가창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지만, 그 외에도 무대 위에서의 자신감, 그리고 분위기를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두루 포함돼야 한다. 밴드의 라이브 연주에 맞춘 에이티즈의 코첼라 공연은 이펙터가 입혀진 일부 구간이나 더빙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라이브로 소화됐는데, 노래의 난이도와 안무의 격렬함 등을 감안했을 때 비교적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줬다.

최근 K팝에서 유행하는 이지 리스닝이나 섬세함과는 반대의 극단에 놓인, 고전적인 남성성을 앞세운 파워풀한 동작과 샤우팅은 코첼라 현장의 열악한 카메라 워크에도 그 매력이 적절히 전달됐다. 적어도 K팝의 정체성을 충분히 드러냈다는 점과 에이티즈 개인의 쇼케이스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국내뿐 아니라 외신들의 리뷰도 거의 예외 없이 호의적이었다.

최근 몇 년간 K팝 아이돌 신에서 가장 주목받은 걸그룹은 이번에 코첼라에 데뷔한 르세라핌이다. 적어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아티스트다. 하이브(소스뮤직) 소속 그룹답게 고급스러운 음악의 만듦새, 트렌디함, 탁월한 프로모션 능력과 풍부한 자체 콘텐츠를 두루 갖추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출신의 멤버들 덕에 팬덤도 빠르게 확보된 데다 사쿠라 등 멤버를 중심으로 일본 시장에서 지명도와 인기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들이 올해 코첼라를 통해 선보인 무대는 아쉽게도 그간 쌓아온 그들의 대내외적인 지명도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크고 낯선 무대라는 환경적인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보컬은 전반적으로 불안했으며, 일부 구간에서는 아예 곡의 핵심 멜로디들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행히 퍼포먼스는 그보다는 나았지만, 평소 그들이 보여준 시상식이나 음악방송 무대와 비교했을 때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공연이 끝난 후 그들의 가창력에 대한 비판적 기사나 커뮤니티의 반응이 속출했는데 이것이 개별적인 비판에 그치지 않고 하이브를 비롯한 최근 K팝 그룹들 전체의 가창력 논란으로 번지는 분위기가 있어 더 안타까운 부분이다.

걸그룹 르세라핌이 2월19일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이지(EASY)' 발매 쇼케이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K팝 그룹 에이티즈(ATEEZ) 멤버들 ⓒAP 연합

K팝이 K팝다울 수 있는 조건

물론 음악의 완성도나 아티스트의 가치를 오로지 라이브 능력, 그것도 순수 가창력만으로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가에 대한 의문은 있다. 유튜브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가수의 고음이 얼마나 올라가는지, 진성이니 가성이니 하는 익숙한 보컬 기교적인 논의도 음악 자체의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것과는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그럼에도 이번 르세라핌의 퍼포먼스를 비롯해 최근에 불거지고 있는 아이돌의 가창력 논란을 그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건 우리가 이제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K팝은 이제 영미권 서구팝이나 일본 대중음악의 단순 카피가 아니라 엄연한 동시대적 음악이 됐고, 아이돌이라는 포맷은 이제 선진 팝 시장에서도 한국의 것을 '아웃소싱'해서 쓰는 단계에 이르렀다.

K팝은 가장 빼어난 글로벌 재능들이 경쟁하는 첨단의 산업이 된 지 오래다. 필자의 우려는 K팝이 단순 아류가 아닌 고유한 장르이자 영역임을 주장하기 위해 K팝이 K팝다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들을 충분히 만족시키고 있느냐에 대한 부분에 있다. K팝의 가장 중요한 차별성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독보적인 비주얼적 매력과 아울러 퍼포먼스의 매력과 완성도에서 비롯된다. K팝이 보여줄 수 있는 독창적인 무대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나 고도로 연마된, 그래서 때로는 비인간적이라고도 여겨지는 극도의 완벽함도 미덕이 되는 것이다.

보컬이나 가창력 역시 이 무대의 완성도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가창력 그 자체를 따로 떼어내어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않지만 적어도 공들인 무대와 시너지를 이룰 수 있는 정도의 기본기가 갖춰져야 한다. 이건 어떤 특정 그룹이나 레이블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반적으로 한번쯤 돌아보고 점검해야 할 부분이다.

말처럼 쉬운 부분은 아니겠지만 세계 무대를 겨냥하는 K팝에 더더욱 요구되는 덕목이라 할 수 있다. K팝 산업이 그간 강조해온 K팝의 가장 중요한 특징, 토털패키지 혹은 트리플 스렛이라고도 불리는 다양한 재능의 균형 있는 조화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고, 지난 20년간 힘들게 쌓아올린 평판을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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