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털 밀면 쿨하잖아요”…주요부위 제모, 요즘 얘기만은 아니다 [사색(史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4. 2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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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65] 고대 그리스 여신을 묘사한 석상에는 주요부위(?)에 털이 없습니다. 그곳은 자고로 매끈해야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브라질리언 왁싱’이전에 ‘그릭 왁싱’이 있었습니다.

그리스가 최초 제모의 민족은 아니었습니다. 고대 문명의 상징으로 통하는 이집트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려 그리스는 이집트의 영향으로 제모를 했다는 분석도 나올 정도입니다.

고대 그리스 석상에 주요부위에 털이 거의 없다. 왁싱을 했다는 증거로 해석되기도 한다. 사진은 1906년 발견된 고대 그리스 석상.
제모의 나라 ‘이집트’
고대 이집트의 왕족과 귀족들에게 제모는 필수였습니다. 북아프리카 더운 날씨 유행병에 대응하기 위해 털을 제거한 것이지요. 털은 이와 기생충이 서식하기 매우 좋아하는 환경입니다. 지금처럼 샤워를 매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었기에, 털을 제거함으로써 최소한의 위생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물론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민중들에겐 왁싱은 꿈도 못 꿀 일이었겠지요.
장 레옹 제롬의 1866년 작품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
왕족과 귀족은 언제나 몸의 매끈함을 유지했습니다. 머리털도 제거하고 대신 가발을 썼을 정도였지요. 우리가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하면 생각나는 그 머리 모양 역시 ‘가발’이었습니다.

신을 모시는 사제들 역시 경건함의 상징으로 온몸의 털을 없앴습니다. 화산석의 일종인 경석을 사용했습니다. 현대사회의 ‘왁싱’이 성애적 느낌을 자아내는 것과는 정반대였던 셈이지요.

기원전 1세기 후반 현무암으로 묘사한 클레오파트라 추정 동상. 온 몸의 털이 매끈하게 면도 돼 있다.
털을 밀어야 아름답다고 여긴 그리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도 이집트의 제모 문화가 계승됐습니다. 고위 계층은 왁싱으로 자기 계급의 고귀함을 뽐내었지요. 그들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가 제모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매끈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은 순수함과 우월함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를 묘사한 고대 그리스 석상.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 법. 기독교 사회가 들어오면서 왁싱은 침체에 빠집니다. 음모를 제거하는 것이 성적인 유혹으로 느껴질 수 있어서였지요. 기독교 여성들은 비록 얼굴에 있는 털을 제거하긴 했었지만, 몸에 손을 대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그곳이 매끈한 여성을 발견했다면, 그녀는 ‘마녀’로 심판되었습니다. 털 한번 잘 못 밀었다가 화형대에 오르게 되는 셈이었지요.

보수적인 기독교에서는 신체를 가꾸는 걸 죄악이라 여겼다. 베일을 쓴 베로니카. 1470년 한스 멤링 작품.
이슬람에서 제모는 필수
기독교의 적 이슬람에서는 다른 양상으로 흘러갑니다. 음모와 겨드랑이털을 제거하는 것이 종교적으로 유익하다고 여겨져서였지요. 자연스러운 상태라는 뜻의 아랍어 피트라(fitra)라고 불렀습니다. 신에게서 받은 신체 그대로 돌아가자는 의미였지요.
“털은 다 밀었어요.”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가 묘사한 무슬림 하렘.
무슬림 거주 지역이 아무래도 더운 지역이 많았기에 제모도 종교적으로 용인됐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9세기 스페인 남부의 이슬람 학자였던 지르얍은 여성용 화학 제모제 사용방법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현대 왁싱의 아버지...찰스 다윈?
제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찰스 다윈’입니다. 진화론의 아버지인 그 학자 맞습니다.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1871년)이라는 명저에서 주장이 불러온 나비효과였지요.

다윈은 이 저서에서 이렇게 주장합니다. “털은 원시적 형태의 인간과 연관이 있다. 더 많이 진화할수록 더 적은 털을 가진다. 인간은 털이 적을수록 성적으로 매력적이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다윈은 왁싱의 신기원을 열었다.
다윈의 생각은 학자들에게 폭넓게 수용됩니다. 후속 연구가 이어졌고, 이 연구를 기업가들이 주목하기 시작하지요. 털로 뒤덮인 원시적 여성들을 매끄럽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재탄생시켜 주겠다는 광고 카피가 봇물 터지듯 유행합니다. 체모는 광기, 질병, 폭력과 연계되지요.
“겨드랑이 털은 흉하다”
1900년대가 되면 마침내 제모의 대유행 시대가 열립니다. 특히 여성의 겨드랑이가 표적이었습니다. 학자들이 이 시기를 ‘원대한 겨드랑이 캠페인’(The Great Underarm Campaign)이라고 부르는 배경입니다.

하퍼스 바자와 같은 유명 잡지에는 “여성들이여, 겨드랑이에 자리 잡은 불쾌하고, 흉하며, 불결한 털을 제거하라”는 광고가 잇따랐습니다. 실제로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세면도구와 미용 서비스 광고는 음식 산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습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겨드랑이 제모 광고.
면도기 제조사로 유명한 질레트의 1915년 광고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 면도기는 당신의 부끄러운 문제를 해결하고 겨드랑이를 하얗고 매끈하게” 유지해줍니다“

민소매를 입은 여성이 자랑스럽게 팔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새로운 미로 자리 잡지요. 고대 그리스 석상의 여신들이 그러했듯이.

1960년 유럽과 미국에서 68혁명이 일어납니다. 베트남전으로 촉발된 범지구적 반전 운동이었지요. 이 반전운동을 계기로 각종 사회운동도 터져 나옵니다. 페미니즘의 태동이었지요. 여성주의자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남성과 자본이 강요한 제모를 더 이상하지 않겠다”라고요. 현대 사회에서 겨드랑이 털을 대놓고 드러내는 배우들에게 ‘페미니즘’이라는 딱지가 붙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1916년 질레트의 여성용 면도기 광고.
매끈함과 복슬복슬함. 역사가 보여주듯이 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모두 각자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면 될 일이지요.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미(美)가 있기 때문입니다. 곁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따뜻한 봄날, 당신의 외모에 주제넘게 품평하는 이가 있다면 일갈해주시기를. “너나 잘하세요.”

<네줄요약>

ㅇ주요부위에 털을 미는 관습은 고대부터 존재했다

ㅇ이집트는 거의 모든 털을 밀었고, 그리스로마도 제모가 아름답다 여겼다.

ㅇ기독교에서는 몸 제모에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슬람은 제모가 필수였다.

ㅇ찰스 다윈의 저작 하나로 주요부위 왁싱이 다시 유행했다. 제모는 그렇게 돌고 돌았다.

<참고문헌>

ㅇ리처드 작스, 발가벗기는 역사, 고려문화사,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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