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르세라핌…그래서 '기타 레전드'와 뭘 했다고?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4. 20.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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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핌첼라(르세라핌 코첼라)'가 아쉬웠던 진짜 이유 (feat. 나일 로저스) (글 : 임희윤 음악평론가)


▶ 관련 영상 : Daft Punk - Get Lucky (Official Video) feat. Pharrell Williams and Nile Rodgers
[ https://www.youtube.com/watch?v=CCHdMIEGaaM ]

찰랑찰랑, 이 애간장 태우는 사운드 아시죠? 16분 음표로 기타를 후려갈기는데 절묘하고도 정교한 저 스타카토와 당김음. 거대한 댄스 플로어 전체를 출렁이게 하는 전기기타 연주. 주인공은 바로 펑키한 기타 사운드의 전설,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입니다.

'로봇 듀오'로 유명한 프랑스의 다프트 펑크가 2013년 'Radom Access Memories'를 만들 때, 그 차가운 디지털과 뜨거운 아날로그의 컨버전스라는 콘셉트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이 로저스 옹이었습니다. 1952년생. 1977년 밴드 쉭(CHIC)의 멤버로 데뷔했죠. 쉭의 동료이기도 한 베이시스트 버나드 에드워즈의 어마어마한 베이스 사운드와 함께 디스코와 펑크(funk)를 넘어 팝계 전반에 걸쳐 '그루브(groove)'의 개념을 다시 썼습니다.

▶ 관련 영상 : Sister Sledge - We Are Family (Official Music Video)
[ https://www.youtube.com/watch?v=uyGY2NfYpeE ]

이제 아시겠죠? 지금 딱 두 곡 들었는데도 '아, 이게 나일 로저스 사운드구나!' 하는 감이 오시리라 믿습니다. 다이애나 로스, 데이비드 보위, 마돈나, 듀란듀란을 비롯해 다프트 펑크, 아비치, 비욘세,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까지…. 수많은 음악가가 로저스 옹을 기타리스트나 프로듀서로 기용해 '역대급 펑크 마사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2017년 미국의 한 페스티벌에 갔을 때 먼 발치에서 그를 알현한 적 있습니다. 텍사스주 오스틴, SXSW 뮤직 페스티벌의 기조연설자로 무대에 섰거든요. 버락 오바마, 레이디 가가도 이 페스티벌의 기조연설자를 맡은 바 있습니다. 로저스가 무대에 나타나자마자 전 세계 음악 관계자들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객석에서는 그의 등장만으로도 오랫동안 기립박수가 이어졌습니다.

"히트곡이야말로 진정한 컨버전스(융합)의 예라고 전 늘 생각해 왔습니다. 수백만 음악 팬의 가슴에 말을 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그의 말에 설교라도 듣듯 현장의 많은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습니다.

▶ 관련 영상 : LE SSERAFIM (르세라핌) 'UNFORGIVEN (feat. Nile Rodgers)' OFFICIAL M/V
[ https://www.youtube.com/watch?v=UBURTj20HXI ]

그러니 작년 이맘때쯤 이 곡이 나왔을 때 저는 물론이고 국내 음악평론가와 관계자들이 경악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feat. Nile Rodgers)'. 괄호 안에 쓰인 몇 글자의 무게가 실로 대단했으니까요. 정작 재생 버튼을 누르고 난 뒤엔? 나일 로저스가 나타나기는커녕 사라졌다는 데 무게가 실렸어요.

'나일 로저스의 기타는 도대체 어디에 들어간 거냐' '10번, 100번을 들어도 안 들린다'는 수군거림이 음악계에 퍼졌죠. 물론 곡을 끌어가는 메인 테마가 기타로 연주되긴 합니다만, 이건 나일 로저스스럽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어떤 기타리스트도 소화할 수 있는 수준이었죠. 그래서 이 건은 '나일 로저스 피처링 사건'이 아니라 '나일 로저스 실종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 관련 영상 : Le Sserafim Coachella 2024 Weekend 1 - Unforgiven (Fancam)
[ https://www.youtube.com/watch?v=iiubUZF8dNI ]

13일(현지시간) 미국 코첼라 페스티벌의 르세라핌 무대에 나일 로저스가 깜짝 등장했을 때, 그래서 광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드디어! 나일 로저스가 정확히 어떤 파트를 연주했는지 알 수 있겠구나!'

그러나… 알 수 없었습니다. 메인 리프는 기존 르세라핌 밴드의 다른 기타리스트가 연주했고, 로저스 옹이 이런저런 연주를 열심히 하긴 했지만 사운드 믹스의 뒤편으로 밀려나 있었고 도드라지는 선율도 발견하기 힘들었습니다.

하이브, 쏘스뮤직, 르세라핌 입장에서는 코첼라가 절호의 기회였는데 말이에요. '자, 너희 음악 덕후들 이것도 못 듣니? 이거 봐! 로저스 옹이 여기서 이렇게 연주하잖아. 심지어 우리가 직접 불러왔다고. 자, 지켜봐. 그리고 들어봐!' 보란 듯이 보여주고 들려줄 수 있는 회심의 찬스요. 그걸 이렇게 넘겨버리나요. 저라면 뼈아픈 실기(失期)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가장 아쉬웠던 건 샤라웃(shout-out·언급, 헌사) 실종 사건이었습니다. 'UNFORGIVEN (feat. Nile Rodgers)'를 부르며 멤버들이 로저스 옹에게 다가가 에워싸며 15초 정도 춤을 춘 게 전부였죠. 공연 중간에도, 피날레에도 '전설의! 나일 로저스에게 박수를!' 같은 코멘트는 없었습니다. (못 드린 박수는 아래 링크로 대신드리겠습니다….)

▶ 관련 영상 : Nile Rodgers & CHIC - Good Times (Glastonbury 2017)
[ https://www.youtube.com/watch?v=w-nC_HsH_4Y ]

'나일 로저스(의 여전한) 실종 사건'은 그러나 뜻밖의 이슈로 덮였습니다. 르세라핌 멤버들의 가창력 논란이죠. 노래를 못했냐고요? 못했습니다. 하지만 최악은 아니었습니다. 지금껏 수많은 케이팝 아티스트들은 라이브에서 'AR 떡칠'을 했습니다.

AR은 'all recorded'의 약자. 반주 트랙은 물론이고 노래(보컬)까지 다 미리 녹음된 것을 튼다는 이야기입니다. AR과 립싱크 기술은 케이팝의 태동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했습니다.

공연 무대에 오르기 전에 스튜디오에서 술렁술렁 춤추면서 약간 달리는 호흡, 미세하게 불안정한 음정으로 라이브 버전 보컬을 따로 녹음해 둔 뒤 무대 위에서 재생하고 립싱크를 하는 방식이 널리 쓰입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부분의 아이돌 레전드 라이브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케이팝뿐 아닙니다. 충격적이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정성 있는 라이브 음악 프로그램(또는 콘텐츠)이라 불리는 여러 곳에서도 이런 립싱크는 매우 일반적입니다. 아이돌 댄스 그룹에 한정된 얘기도 아닙니다.

▶ 관련 영상 : "Wanna Be Startin' Somethin'" w/ the Stars! | Lip Sync Battle Live: A Michael Jackson Celebration
[ https://www.youtube.com/watch?v=eEdPnm-AZ94 ]

립싱크 논란, 라이브 가창력 논란은 케이팝만의 문제 역시 아닙니다. 1981년 MTV가 개국하고 댄스뮤직의 패러다임이 '듣는 사람이 춤추는 음악'에서 '춤추는 사람을 보는 음악'으로 넘어가기 시작했죠. 재닛 잭슨, 마이클 잭슨, 마돈나 같은 비디오형 댄스 가수들은 실제 자신의 평소 가창력과 별개로 라이브 가창력 논란, 립싱크 논란에 끝없이 휩싸였습니다.

사실 댄스와 노래의 완벽한 겸업은, 호모 사피엔스, 현생 인류의 발성 메커니즘과 성대 구조로는 완벽히 해결하기가 힘든 문제입니다. 가창에서 정확한 음정을 지속적으로 내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필수입니다. 첫째는 음감, 둘째는 호흡입니다. 정확한 음감을 갖고 있다고 해도 호흡이 고르지 못하면 목표로 한 음을 정교하게 지속하기 힘듭니다. 사람이 그렇게 생겨먹었습니다.

케이팝 안무는 아크로바틱하기로 유명합니다. 미국 팝스타들의 안무보다 더 '빡센' 경우가 많습니다. 저런 안무를 소화하면서 정확한 음정으로 부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지금껏 많은, 대표적인 케이팝 스타들이 교묘한 AR과 라이브의 합성으로 '마술쇼'를 해왔습니다.

물론 똑같은 과업을 르세라핌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습니다. 연습량과 재능의 차이겠지요. 그러니 저에게 차라리 음 이탈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용기입니다. AR을 상당 부분 제거하고 라이브 가창 비중을 높인 르세라핌과 소속사의 담력(결과를 뻔히 예상할 수 있음에도)에 박수를 보냅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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