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쾌하고 다정한 성인용품, '텐가'를 만드는 사람들

임현지 기자 2024. 4. 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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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용품을 양지로 끌어올린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
테즈카 슌이치 “텐가가 안전한 이유, 소믈리에 덕분”
디자이너 젬마 “셀프 플레저, 나 자신을 만나는 일”
일본 도쿄 하라주쿠의 '하라카도 백화점'에 입점한 텐가 플래그십 스토어 '텐가랜드' ⓒ텐가

[스포츠한국 임현지 기자] '청소년에게 노출하기 부적합한 검색 결과를 제외하였습니다. 연령 확인 후 전체 결과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내 포털사이트에 '성인용품'을 검색했을 때 나오는 문구다. 전체 검색 결과를 보려면 성인 인증된 아이디로 로그인을 해야한다. 놀랍게도 일본의 포털사이트인 OCN, GOO 등에 성인용품(アダルトグッズ·어덜트 굿즈)을 검색하면 아무런 제한 문구 없이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야후재팬의 경우 '세이프서치가 중간이므로 성인용 콘텐츠가 포함될 수 있음'이라고 안내한다. 세이프서치는 성인용 데이터 표시를 이용자가 직접 설정할 수 있도록 한 기능이다. 이 같은 결과는 일본의 유명 성인용품 브랜드 '텐가(TENGA)'를 검색할 때도 동일하다.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할 순 없다. 다만, 한국과 일본이 성인용품을 대하는 방식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두 나라는 성인용품 매장의 '모습'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한국은 동네의 오래된 상가에 주로 마련돼 있다.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도록 유리창을 철저히 막아둔 모습이 대부분이다. 종종 고속도로 만남의광장의 한 봉고차나 러브호텔이 밀집된 곳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일본은 성인 비디오숍부터 잡화점 '돈키호테', 번화가, 쇼핑몰, 백화점에서도 만날 수 있다. 텐가는 지난 17일 도쿄 하라주쿠 '하라카도 백화점'에 플래그십 스토어 '텐가랜드'를 오픈하기도 했다.

마츠모토 코이치 텐가 대표. ⓒ텐가

일본은 처음부터 성인용품에 관대했을까? 텐가를 창업한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에 따르면 일본 역시 성인용품은 '음지의 영역'이었다고 한다. 그는 어느 날 성인용품의 외설적인 패키지를 보고 '누구나 떳떳하게 구매하고 안전하게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텐가를 창업했다. 물병과 샴푸 용기 등에서 영감을 얻어 3년 만에 탄생한 제품이 바로 '텐가 컵'이다. 겉으로 봤을 때 용도를 짐작할 수 없다는 점이 소비자의 니즈를 관통, 출시 첫해만 100만개를 판매하는데 성공했다. 현재 텐가는 여성 전용 브랜드 '이로하', 지루·조루·성고통 등 성 건강 관련 브랜드 '텐가 헬스케어' 등을 운영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는 "텐가는 이로하, 텐가 헬스케어를 비롯해 장애가 있는 분들의 치료를 지원하는 '에이블 프로젝트'까지 다양한 브랜드를 전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성을 즐기는 방향으로 제품을 내고 있었는데, 이제 헬스케어 영역에도 발을 들이고 있는 시점"이라며 "성에 대해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결책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중점적으로 비즈니스를 전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일본 도쿄 주오구에 위치한 텐가 본사 ⓒ텐가

기자는 지난 9일 일본 도쿄 주오구에 위치한 텐가 본사를 방문했다. 우주선 입구가 떠오르는 출입문과 텐가의 마스코트인 텐가로봇, 화이트톤의 분위기가 마치 유망한 IT 스타트업을 연상케했다. 내부로 들어가면 더욱 업종을 알 수 없다. 전 세계 여러 아티스트들과 협업한 텐가 컵, 유려한 곡선으로 감싸진 회의실. 성인용품 회사는 어떤 모습이어야 했을까. 유쾌하고 다정한 분위기 속에 모든 편견이 허물어진 순간, 텐가의 유명인사 테즈카 슌이치를 마주했다. 그는 이 회사에서 소믈리에로 통하는 인물이다.

원래 소믈리에란 와인 감별사를 의미하는데, 텐가에서는 제품이 출시되기 전 직접 테스트를 통해 차이점과 개선점 등을 발견하는 성인용품 감별사를 말한다. 테즈카 슌이치는 넷플릭스 시리즈 '성+인물'에 등장하며 자위와 소믈리에가 합쳐진 '자믈리에'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는 2011년 입사 후 지금까지 재무·인사 등을 담당하고 있다. 신입사원 시절 '텐가 3D' 제품을 기획하면서 그가 7개 샘플을 직접 체험했고, 그 7개의 미세한 차이까지 맞추게 되면서 결국 소믈리에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텐가에서 재무·인사, 그리고 소믈리에를 담당하는 테즈카 슌이치 ⓒ텐가

테즈카 슌이치는 "넷플릭스만 보고 소믈리에만 하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아침부터 낮까지는 원래 하던 일을 하다가 밤이 되면 너무 힘들지만 사명감을 갖고 소믈리에까지 열심히 하고 있다"며 "당시 7종의 미세한 차이까지 맞췄다는 사실이 대표와 개발본부의 귀에 들어가면서 그 다음부터 의뢰가 많이 들어왔다. 지금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내일까지 결과를 달라는 사람도 있어 곤란한 적도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소믈리에 역할이 가장 빛났던 순간으로 '버큠 컨트롤러' 제작기를 꼽았다. 텐가 컵을 꽂아 흡입력을 높이는 옵션 기기다. 제작 당시 100엔샵 같은 곳에서 펌프를 구입해 임의로 만들어 테스트를 하다가, 강한 흡입력 때문에 출혈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에 원하는 강도를 조절할 수 있는 장치를 회사에 제안하며 현재의 버큠 컨트롤러가 탄생했다고 한다.

테즈카 슌이치는 "소믈리에는 그냥 기분 좋은 것만 느끼는 게 아니라 개인의 안전을 걸고 하는 직업이다. 시중의 텐가는 소비자 안전을 위해 충분히 검토가 된 제품"이라며 "텐가의 노하우와 경험치는 지속 쌓이고 있다. 이 같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항상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텐가의 여성용 제품 '이로하' 제품 디자이너 젬마 ⓒ텐가

텐가 본사에서는 200여명의 직원들이 일하고 있다. 이곳에서 외국인 직원 비중은 20%가량 된다. 텐가의 여성용 브랜드인 '이로하'의 디자이너 젬마 역시 스페인 출신이다. 이로하의 디자인에 감명을 받아 2018년 텐가 디자이너로 입사했다. 개발을 담당한 대표 제품은 '이로하 쁘띠', '이로하 마이' 등이다. 브랜드 앰배서더로 활동 중인 일본의 유명 모델 미즈하라 키코와 협업한 '이로하 마이 루리'도 그가 담당했다.

이로하는 남성용 제품인 텐가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텐가가 유쾌하고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라면 이로하는 감성적이고 상냥한 느낌이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 디자인은 꽃, 눈사람, 고슴도치, 테마리(일본 전통 장난감)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색상도 파스텔의 연한 색을 택하고 있다. 진입 장벽을 낮추고 친밀도를 높이기 위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립스틱 등을 디자인에 접목하기도 한다.

젬마는 "일부러 남성의 성기를 본뜨지 않은 제품을 만들고 있다. 성기를 본뜨는 것은 텐가와 이로하가 지향하고 있는 세계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로하는 여성이 쉽게 선택할 수 있고, 인테리어로도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목표로 한다"며 "디자인은 주로 일본풍의 모던함을 중점으로 두고 있으며, 이름도 사쿠라(벚꽃), 유키(눈), 링고토리(사과+새) 등 디자인과 어울리는 키워드를 조합해 짓는다. 성인용품으로서 직관적이지 않은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여성용 셀프플레저 제품 '이로하' ⓒ텐가

한국은 물론 일본 역시 여성들의 성은 보수적인 시각이 따른다. 남성이 마스터베이션(masturbation)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는 반면, 여성은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로하는 여성들이 겪는 성고민을 중점으로 제품을 기획하기도 한다. 삽입 행위에 두려움을 느끼는 여성을 위해 얇은 두께로 만들어진 '이로하 코하루'가 대표적이다.

젬마는 "아직 셀프 플레저 아이템을 사용해 보신 적이 없거나, 아예 마스터베이션을 해본 적이 없다면 꼭 한 발짝 내디뎌 주었으면 한다. 셀프 플레저를 함으로서 나 자신과 내 몸에 대해 잘 알게 되고, 성에 대한 시각도 넓어지기 때문"이라며 "이로하가 지향하는 것은 '셀프 플레저가 당연해지는 세계'다. 이를 위해 일본에서는 개별적인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츠모토 코이치 텐가 대표. ⓒ텐가

'사랑과 자유의 텐가.' 텐가의 대표적인 슬로건이다. 단순히 성을 즐기는 것을 넘어서 남녀 간의 차별점을 허물고, 서로가 마음속 깊이 사랑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을 추구한다.

텐가는 성교육 웹사이트 '세이실(セイシル)'을 운영하며 청소년들에게 올바른 성 상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FSC 인증 종이와 바이오매스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등 탄소중립에도 앞장서고 있다. 성을 부끄럽고 외설적인 것이 아닌 삶과 일상으로 받아들일 때, '성인용품' 기업의 사회적 역할은 이토록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을 텐가가 보여주고 있다.

텐가는 넷플릭스 성+인물 방영 후 국내 인지도가 제법 높아졌다. 지난달부터는 서울 동대문의 대표 쇼핑몰 두타에 '텐가숍 두타' 팝업스토어를 오픈하고 소비자 접점 확대에 나섰다. 해당 매장은 오는 9월13일까지 운영된다. 이전에도 서울 홍대 상권에 두 차례 팝업을 운영한 바 있으나, 당시 일부 학부모들의 민원을 겪기도 했다. 비교적 보수적인 한국 시장이지만 텐가의 방향은 뚜렷하다. '사람들이 성을 통해 행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이다.

성고민이 있는 소비자들을 위한 '텐가 헬스케어' 제품들. ⓒ텐가

마츠모토 코이치 대표는 "텐가는 이제까지의 어덜트 굿즈와는 다른 장르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성에 대해 고민을 갖고 있는 분들한테 어떻게 하면 해결책을 전달해 줄 수 있을지에 더 중심을 두고자 한다. 여성분들을 위해 임신 준비 영역까지 전개하고 싶다"며 "성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이자 행복과 연결된다. 텐가가 추구해왔던 이 같은 메시지를 한국에서도 계속 전달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스포츠한국 임현지 기자 limhj@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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