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오디오 ‘전설의 조합’…나를 위해 질렀다 [ESC]

신승근 기자 2024. 4. 2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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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짠내수집일지 명품 리시버·스피커
마란츠 2265B와 JBL L112
술·커피값 아끼고 연말정산 모아
오디오 마니아들이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최고의 조합으로 꼽는 마란츠 2265비(B) 리시버(가운데 아래)와 제이비엘(JBL) 엘(L)112스피커(좌우). 리시버 위에 있는 건 데논 턴테이블(DP 300F).

말 타면 경마 잡히고 싶다는 속담, 앉으면 눕고 싶다는 말이 있다. ‘짠내 수집’ 묘미는 ‘적은 비용, 큰 만족’인데 어느 순간 한계를 절감한다. 일단 타율이 낮다. ‘가성비’ 좋고 디자인이 아름다운 빈티지 스테레오 리시버(라디오 수신기와 엘피·시디 등 각종 음원을 증폭·출력하는 앰프 일체형 오디오)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다니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고 적은 돈으로 가치 있는 물건을 사들이는 건 쉽지 않다. 아날로그 감성 ‘뿜뿜’하는 겉모습에 끌려 일단 사지만 수리가 필요한 고물로 판명 나는 경우가 많다. 서울 동묘와 풍물시장 인근 노점 물건은 작동 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으니 낭패를 볼 확률이 크다.

파이오니아 스테레오 리시버 에스엑스(SX)-550은 대표적 실패 사례다. 소리 좋은 리시버 50선에 꼽히는 데다 은색 전면 패널, 큼직한 주파수 메타창, 원형 노브 등 외관도 아름답다. 풍물시장 인근 뒷골목에서 에스엑스(SX)-550을 발견했다. 판매자도 솔직해 보였다. “소리를 내보내는 출력석 한쪽이 먹통”이라며 “15만원만 달라”고 했다. 지나는 사람마다 깊은 관심을 보였다. 결국 다른 이에게 팔려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12만원에 서둘러 흥정을 끝냈다. 한쪽만 스피커를 물려 라디오를 듣는 용도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집에 돌아와 스피커를 물렸는데 단순히 한쪽만 먹통이 아니었다. 다른 한쪽에선 소리가 나오기는 하는데 ‘퍽~ 퍽~’ 하며 스피커가 터질 듯한 잡음이 섞여 나온다. 세운상가 빈티지 오디오 수리 전문가는 일단 안을 열어봐야 수리비 견적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잘 수리한 같은 제품은 35만원 안팎에 살 수 있다. 괜한 돈을 들일 수 없어 일단 장식용으로 쓰고 있다.

짠내 수집 최고액 주인공

좋은 소리를 온전히 구분하지 못하는 ‘막귀’도 진화하기 마련이다. 수집을 위해 공부를 거듭하면서 아는 게 많아지고, 각종 오디오 전문지, 실용오디오 등 인터넷 동호회 등에서 빈티지 명기라고 이름 붙인 물건을 열망하게 된다. 빈티지 리시버의 전설은 마란츠다. 그 가운데 1977~79년 출시한 마란츠 2265비(B)는 오디오 마니아들이 사랑하는 물건이다. 소리 좋은 빈티지 리시버 평가에서 피셔 250티엑스(TX)와 1·2위를 다툰다. 군 피엑스에서 산 면세품인 천일사 별표 전축을 듣고 자란 나는 2000년대 초 경기도 장흥 유원지 한 카페에서 마란츠 2265비(B)를 보고 그 외관에 매료됐다. 선명한 블루톤의 주파수 패널 불빛, 주파수 신호 강도와 감도를 알려주는 두개의 사각 메타창, 음원 소스 선택과 볼륨 음색 등을 조절하는 7개의 둥근 노브, 스피커 선택과 카세트테이프 녹음 때 사용하는 12개의 원형 버튼, 그리고 라디오 주파수를 찾는 비행접시처럼 생긴 자이로튜닝, 월넛 색상의 목재 틀까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요즘은 일체형 오디오가 많이 나오지만 빈티지 리시버는 혼자 소리를 낼 수 없다. 기기와 궁합이 맞는 스피커를 물려야 좋은 소리를 구현한다. 마란츠 2265비(B)는 “말이 필요 없는 명품” “가성비 갑”이라는 평가를 받는 제이비엘(JBL) 엘(L)112 스피커와 환상의 매칭을 이룬다고 한다. 1980년에 나온 온전한 스피커와 마란츠 2265비(B)를 동시에 찾는 건 상당한 운이 따라야 한다.

10년 전인 2014년 3월 당시 2265비(B) 리시버와, 제이비엘(JBL) 엘(L)112 스피커는 각각 100만원 안팎의 가격을 형성하고 있었다. 항상 ‘실탄’이 문제였기에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커피값·술값을 아껴 비자금을 모았고, 2014년 초 연말정산 환급금 100여만원을 얹었다. 용산 전자상가와 황학동 등을 2주 가까이 뒤졌다. 용산엔 물건이 없었다. 피셔 리시버를 권하거나 아예 새로운 오디오를 사라고 권했다.

하지만 짠내 수집을 계속하며 ‘굿모닝 오디오’, ‘아날로그 오디오 가이드’ 등의 책을 섭렵하고, 각종 인터넷 동호회에서 소개한 명품을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황학동 골목 안 허름한 빈티지 오디오 수리점에서 ’전설의 조합’을 발견했다. 애초 110V용으로 출시한 마란츠 2265비(B)는 220V 전원을 사용할 수 있게 개조한 상태였다. 상태가 좋은 제이비엘(JBL) 엘(L)112도 두짝 세트도 갖추고 있었다. 출시한 지 30여년이 넘었지만 목재 케이스에 약간 긁힌 자국이 있을 뿐 전반적으로 양호했다. 오랫동안 ‘청음’을 했다. 막귀라 미세한 음향 차이를 느끼진 못하지만 중고 텔레비전, 카메라 판매 점포가 즐비한 골목에 울려 퍼지는 저음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주인은 리시버 100만원, 스피커 110만원을 불렀다. 현금 계산을 조건으로 트럭 운송비를 빼달라며 리시버 95만원, 스피커 97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애들 학원비만 낼 게 아니라”

무게 25㎏으로 혼자 들기도 버거운 육중한 스피커 두짝과 14.5㎏ 리시버를 화물차에서 내려 끌개에 얹어 집으로 들어서니 아내는 당황했다. “돈은 어디서 났냐”는 추궁도 이어졌다. 호기롭게 “애들 학원비만 낼 게 아니라 나를 위해 통 크게 써보기로 했다”며 제이비엘(JBL) 엘(L)112 스피커 출시 당시의 일본 카탈로그를 보여줬다. “스피커 한짝 판매가 14만9000엔, 좌우 한세트 온전히 갖추려면 300만원은 필요하다”는 얘기와 함께 “요즘 이 정도 스펙의 새 오디오를 구하려면 최소 1천만원 이상 든다”는 과장 섞인 설명도 덧붙였다. 아내는 기가 찬 듯 물러섰다.

짠내 수집가인 내가 가장 큰돈을 들인 이 시스템을 볼 때마다 큰 행복을 느낀다. 우리 집을 찾는 이들은 오랜 세월 수집한 엘피와 육중한 스피커, 선명한 블루톤의 불빛이 들어오는 리시버에 관심을 보인다. 턴테이블에 ‘들국화 1집’ 엘피를 얹고 2265비(B)리시버에서 증폭해 제이비엘(JBL) 엘(L)112 스피커로 재생하면 지그시 눈을 감는다. 풍부한 저음이 특징인 오디오답게 볼륨을 조금만 높여도 거실 바닥과 벽에서 생생하게 전달되는 진동이 너무 좋다. 이웃의 민원을 우려해 제 출력을 내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들어야 하는 게 아쉬울 뿐이다. 그동안 2차례 이사를 했다. 짠내 수집의 결정체가 잘못될까 싶어 전날 밤 승용차에 실어두고 직접 옮기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전자제품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 가치가 떨어진다. 빈티지 오디오는 가치가 오르는 경우가 많다. 2265비(B)와 제이비엘(JBL) 엘(L)112는 여전히 인기가 있다. 각각 180~190만원을 호가한다. 또 다른 기쁨을 안겨주는 이유다.

글·사진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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