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 일군 그때 그 사람들
홍제환 지음
너머북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스타’는 기업인들이다. 사티아 나델라(MS), 순다 피차이(구글), 마크 저커버그(메타)… 국내도 마찬가지다. 소셜미디어에선 대기업 총수의 일거수일투족이 화제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본인 계정도 아닌 팬페이지 팔로워가 수십만 명씩 될 정도다.
1950~80년대는 달랐다. 한국 경제 고도성장기의 ‘스타’는 경제 관료였다. 수출주도 산업화부터 중공업 육성, 경제자유화까지, 정부가 하나하나 계획을 짜서 끌고 갔던 시절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당시 ‘한강의 기적’을 설계하고 진두지휘했던 경제관료 13명의 삶을 조명한다. 60년대 경제기획원 전성기를 이끌었던 장기영 부총리와 김학렬 부총리, 관련 설문조사에서 ‘역대 최고의 경제 관료’로 꼽힌 바 있는 70년대 남덕우 부총리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껏 덜 알려진, “숨겨진 영웅”들도 소개한다. 60년대 ‘경제 외교’ 실무자로 외자 도입을 주도한 양윤세 동자부 장관, 해외유치과학자 1호로 서독에서 귀국해 중화학공업화에 기여한 70년대 김재관 상공부 중공업차관보 등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저자의 말처럼 “당시 한국 경제가 그만큼 미숙하고 취약하여 개인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여지가 존재”했던 덕도 있다. 경제 규모가 작다 보니 정책 파급 효과가 컸고, 법과 제도가 미비한 탓에 거꾸로 관료의 재량권이 컸던 것이다.
웃지 못할 일화들도 나온다. 장기영은 물가를 잡겠다고 정육업자를 부총리실로 불러 호통을 쳤고, 다방 업주가 커피값을 내리지 않자 위생 문제를 트집 잡아 영업정지를 내렸다. 김재관은 임금 인상을 억제하기 위해 은행을 동원해 임금 인상률이 높은 기업에 융자를 제한하도록 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시장 경제를 왜곡하는 명백한 ‘관치’다. 이때 시작된 관치의 그늘은 아직도 한국 경제에 깊이 드리워져 있다.
결국 ‘경제 관료의 시대’는 “현재 한국 사회가 누리고 있는 경제적 번영의 토대”인 동시에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낳은” 때였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규명하고 새롭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관치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는 것처럼, 지금은 맞지만 미래엔 틀리는 것도, 또 그 반대도, 있을 수 있으니까.
김한별 기자 kim.hanb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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