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의 자녀·뇌병변 여성… ‘세상의 장애물’ 을 말하다

장상민 기자 2024. 4. 1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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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장애인의 날’ … 볼만한 책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이가라시 다이 지음│노수경 옮김│사계절
소리 못 듣는 부모를 둔 아들
장애인 결혼막은 사회 풍조 등
사랑이라 말했던 ‘폭력’ 밝혀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김지우 지음│휴머니스트
휠체어탄 20대 유튜버 ‘구르님’
세대별 여성 장애인들 인터뷰
‘극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강조

살아왔고 살아 있으며 살아갈 장애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그리는 두 권의 책이 있다. 오는 4월 20일은 ‘제44회 장애인의 날’이다.

들리지 않는 부모에게서 태어난 들리는 아이,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s) 이가라시 다이는 수어만이 가득한 고요함 속에서 생각했다. 나도 듣지 못했다면 부모님의 고요한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을까. 전작에서 코다로서의 삶을 책으로 펴냈던 저자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깊은 외로움 때문에 살피지 못했던 엄마의 삶으로 눈을 돌린다. 난생처음 수어를 제대로 배워 엄마와 대화하며 발견한 농인의 삶을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에 담았다.

저자가 듣게 된 엄마 사에코의 유년시절은 청사회의 언어를 가지지 못한 불청객이었다. 사에코는 1954년에 청인 가족의 세 딸 중 막내로 태어났다. 3세에 선천적 농인으로 진단받은 뒤 가족들은 여러 수술을 강권하며 딸의 귀를 고치려 하기도 한다. 중학생이 돼 수어를 배우고, 남편 고지를 만나 반대를 무릅쓰며 결혼한 뒤에도 저자를 낳기까지 주변 가족을 10년 동안 설득해야 했다.

엄마를 통해 들춰낸 20세기 농인의 역사는 폭력적인 무지의 시간이었다. 동시에 폭력을 낳은 것은 사랑이기도 했다. 사에코의 가족이 수어를 배우지 않은 것은 특히 다정한 둘째 언니 유미를 비롯해 언어 없이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아 일반 학교를 보냈다. 공포스러운 수술의 강요나 농인끼리의 결혼, 출산을 반대한 것도 진정 딸의 행복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저자는 1948년 제정돼 1996년까지 유지됐던 ‘우생보호법’도 사랑의 이름으로 시작했음을 기억하자고 말한다. 법은 비장애가 개인과 가족, 사회의 행복을 보장할 것이라는 인류애적 태도로 장애가 예상되는 태아를 살해했고 ‘단종’을 위해 장애인을 불임 수술대에 올렸다. 법이 반세기 동안 지속된 책임은 이를 용인한 모든 사람에게 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나는 들리는 아이였지만, 사실은 어땠으면 했어? 들리는 아이와 들리지 않는 아이, 어느 쪽을 원했어?” 다이가 묻는다. “만약 고를 수 있다면 ‘들리는 아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사에코의 대답은 겪었던 차별의 방증이자 아들을 향한 사랑이다. 들리지 않는 이들로부터 태어난 들리는 이가 쓴 책을 읽는 순간, 독자들은 ‘차이’를 넘어설 수 있음을 배우며 장애의 오늘을 살고 있다. 207쪽, 1만6000원.

본명보다 휠체어 바퀴를 굴려 세상을 누비는 유튜버 ‘구르님’으로 더 유명한 20대 여성 뇌병변 장애인 김지우는 ‘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를 통해 장애의 미래를 본다. 책은 어린 여성 장애인인 저자가 10∼60대 여성 뇌병변 장애인 6명을 인터뷰하며 발견한 뇌병변 장애인의 삶을 담고 있다. 이들은 여성 장애인 공통의 경험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비슷한 장애가 비슷한 삶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각각인 삶의 모습으로 보여주며 장애의 지평을 넓힌다.

저자는 10대 지민을 만나 ‘굶는 여성 장애인의 몸’을 이야기한다. 좌식 생활로 인해 복부지방이 많아지는 몸은 여성성을 인정받지 못하지만 마른 몸은 또다시 뒤틀린 뼈를 드러내며 불쌍함으로 읽히곤 하는데, 여성 장애인의 몸은 결코 논쟁적으로 읽히지 않음을 지적한다. 또 언니들과 만나 어디에서도 본 적없는 여성 장애인의 배변, 섹스, 임신과 출산까지 논하며 장애의 성역을 모조리 깔아뭉갠다.

여섯 번의 인터뷰 동안 저자는 “세상과 맞서는 게 힘들지 않다!”는 대답을 기대하지만 사실은 모두 지치고,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다만 그들은 “장애가 있는데도 대단한” ‘슈퍼 장애인’을 거부하면서, ‘꾸준히 자기를 증명하려는 욕구로 움직이는 사람’으로서 계속 살아가겠다고 선언한다. 장애를 이겨내 비장애인에 가까워지지 않더라도, 이 모습 이대로 살아가기 좋은 세상을 만들자고 다짐한다. 275쪽, 1만8000원.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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