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재건축·재개발 해? 말아?
총선 후 '재초환' 폐지 등 법안 통과 불투명
정비사업 추진지역 집주인들 '깊어진 고민'
'앞으로 재건축 잘 될까요?'
요즘 부동산 커뮤니티에서 정비사업 추진을 주저하는 글들이 종종 보입니다. 올 초만 해도 1·10 대책(주택공급 확대 및 건설경기 보완방안) 등 정부의 규제 완화에 힘입어 1기 신도시 및 재건축 주요 지역 위주로 정비사업 추진 기대감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듯했는데요.
공사비 인상, 경기 침체 등이 발목을 잡더니 4·10 총선 결과가 결정타를 날리며 분위기가 확 가라앉았습니다. 여당이 압승하면서 법 개정이 필요한 굵직한 규제 완화 추진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거든요. 이제 재건축에 기대를 걸기 어려워지는 걸까요?
'재건축·재개발 할래요' 꿈틀댔는데
한국부동산원과 LH에 따르면 두 기관이 지난 1월30일부터 운영 중인 '미래도시 지원센터'에 재건축·재개발 추진 상담 및 컨설팅 신청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누적 기준으로 LH 센터에 225건, 부동산원 센터에 302건이 각각 접수됐는데요.
미래도시 지원센터는 1·10 대책의 후속 조치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에 앞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컨설팅 등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부동산원은 서울·대전·대구·광주·부산 등 총 5곳에서, LH는 경기도 성남·안양·군포·부천·고양 등 5곳에서 운영하고 있죠.
LH는 이 센터를 통해 1기 신도시 재정비 및 도시정비사업 관련 지자체·주민을 대상으로 주민설명회나 상담을 진행합니다. 부동산원이 운영하는 지원센터에서는 일반적인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컨설팅을 중점적으로 실시합니다.
두 기관에서 운영하는 센터가 문을 연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는데 누적 수백건의 상담 신청이 들어온 거죠. 업계에서는 얼어붙었던 재건축·재개발 시장에 다시 온기가 돌 거란 기대감이 나왔습니다.
이 같은 움직임의 동력은 단연 1·10 대책으로 꼽힙니다. 이 대책은 '정비사업 규제 완화 종합 선물세트'로 불릴 정도로 정비사업 추진 '걸림돌'로 작용하는 각종 규제를 풀겠다는 게 골자였는데요.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가 대표적입니다. ▷관련기사: 재건축 '안전진단' 대못 뺀다(1월10일)
안전진단은 재건축 사업의 초기 관문이지만 기준이 워낙 까다로워 통과가 쉽지 않았는데요. '안전성'에 기준을 두다 보니 다 쓰러져 가는 아파트가 아니고선 안전진단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게 정비사업 추진 단지들의 고충이었죠.
정부는 1·10 대책을 통해 준공 후 30년이 지난 노후 아파트는 안전진단 없이도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도록 안전진단 통과 의무 시기를 조정하게 했습니다. 이후 안전진단의 명칭을 30년 만에 '재건축 진단'으로 바꾸고 안전성이 아닌 '노후성'을 기준으로 두며 문턱을 낮췄죠.
이에 재건축 안전진단 벽을 넘지 못해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했던 단지나 재건축을 준비중인 단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요. 대책 발표 직후 노원구 등 재건축 단지들이 모여 있는 지역에선 발 빠른 매수자들의 문의가 이어지는 등 반응이 금방 나타났습니다.
가격도 조금씩 오르고 있습니다.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가 몰려 있는 영등포구, 양천구, 강남구의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변동률(한국부동산원 통계)을 보면 이들 지역의 집값은 3월 중순 들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1기 신도시 등 노후계획도시 재정비 계획도 기대감을 높였습니다. 복수의 단지를 묶어서 통합 재건축할 때 안전진단을 면제하고, 용적지역 변경과 용적률 상향을 적용해 주기로 했고요. 신도시별로 연내 선도지구를 1개 이상씩 조성하기로 했죠.
정부는 앞서 지난해 12월26일 이를 위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공포해 이달 27일부터 시행할 계획입니다. 아울러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8일 '도시주택 공급 점검회의'를 열고 노후계획도시 정비에 '패스트트랙'도 적용키로 했습니다.
주민·정부·지자체·공공기관으로 구성된 '노후계획도시 정비 거버넌스'로 기본계획과 기본 방침을 병행 수립(약 2년 단축) 하고, 공사비 등 주민부담과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마련(약 1년 단축) 해 사업 속도를 약 3년 더 앞당기겠다는 구상이죠. 해야돼 말아야돼…"정비사업도 양극화"
정부가 적극적으로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정비업계도 힘을 받는가 싶었는데요. 최근 들어서는 다시 주저하는 분위기가 포착됩니다. 특히 4·10 총선 결과가 기대감을 확 끌어내렸는데요.
굵직한 규제들을 완화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데 '여소 야대' 정국이 또다시 이어졌거든요. 그동안도 야당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워 법안 통과가 쉽지 않았는데, 이번 총선에서도 야당이 압승하자 규제 완화가 불투명해졌습니다.
국토부에 따르면 1·10 대책은 전체 79개 세부 추진과제 중 법 개정이 필요한 과제가 18개에 달합니다. 이들 과제도 정부가 약속했어도 야당의 협조가 없으면 정책 추진이 어려운 셈이죠.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역시 도시정비법을 만져야 하는 과제고요.
시장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 폐지 가능성도 희박해졌습니다. 재초환은 재건축 사업으로 얻는 조한원 1인당 이익이 평균 8000만원을 넘을 경우 세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로, 조합원들의 부담이 높아 재건축 사업의 대표적인 걸림돌로 꼽힙니다.
지난해 재초환 기준이 3000만원에서 8000만원으로 완화되긴 했는데요. 최근 고금리 기조 속 공사비와 분담금이 급격히 오르자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재초환을 수정 및 폐지하려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법(재초환법)을 만져야 하는데요. 재초환법을 민주당이 도입한 만큼 여소 야대 정국에서는 폐지를 담은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공사비 인상, 경기 침체 등 사업 추진 환경은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는데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2월 잠정 건설공사비지수는 154.81로, 2000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시멘트, 철근 등 공사 자재비가 크게 오른 영향인데요.
여기에 국토부가 3월 말 '건설경기 회복 지원 방안'을 통해 물가 상승분이 공사비에 반영될 수 있도록 물가 반영 기준을 조정하겠다고 하면서 추가 상승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점점 재건축 추진 비용은 높아지고 수익성은 떨어지니 사업 추진 동력을 잃을 수밖에요.
이런 상황에 향후 사업성이 높은 단지 위주로만 정비사업 추진이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정비사업도 양극화가 크게 벌어질 것"이라며 "사업성이 높거나 여야 모두 밀어주고 있는 1기 신도시 등 일부 지역 말고는 사업에 속도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여기에 공사비 이슈도 지속적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사업성이 낮은 단지들은 사업 추진 단계를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비용에 부담을 느끼고 포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