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2년차 도시농부의 텃밭 예찬

관리자 2024. 4. 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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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채소 모종을 심는 시기가 지난해보다 한주 정도 늦었다.

지난해초 정말 오랫동안 열망했던 텃밭을 서울에 마련하게 됐다.

그렇지만 1평 남짓한 텃밭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

평소 이걸 최소화하고 싶었는데 텃밭을 통해서 드디어 이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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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 채소 모종을 심는 시기가 지난해보다 한주 정도 늦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한 기온 탓이었다. 지난해에는 4월6일 상추·파·셀러리·당귀·깻잎·고추·토마토 등 모종을 1차로 심었다. 올해는 서울의 최저기온이 두자릿수를 넘어선 14일 모종을 사서 심었다.

나는 2년차 도시농부다. 지난해초 정말 오랫동안 열망했던 텃밭을 서울에 마련하게 됐다. 말이 좋아 텃밭이지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내 사무실 근처의 3.3㎡(1평)도 안되는 땅이다. 이웃 아주머니가 인심 좋게 밭의 한 모퉁이를 나눠줘 가능한 일이었다. 그 덕분에 작은 밭을 가꾸게 됐다. 초보 도시농부다운 열정으로 온갖 채소를 다 심었다. 그렇지만 1평 남짓한 텃밭은 나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줬다.

첫째 토양에 따라 잘되는 작물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내 밭은 토마토·파·부추는 안되고 깻잎·고수·당귀같이 향이 강한 작물이 잘 자랐다. 흙과 그 밑의 암반 종류에 따라 재배하기 적합한 작물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유럽의 와이너리를 가보면 길 하나를 놓고 ‘카베르네 소비뇽’과 ‘메를로’처럼 전혀 다른 포도 품종을 심는 이유를 막연하게나마 짐작게 했다.

둘째 텃밭에서 잘 자라는 채소의 가공법을 고민하게 됐다. 내 밭의 깻잎과 고수는 마치 나무처럼 쑥쑥 자랐다. 그래서 난감했다. 깻잎은 주변에 아무리 나눠줘도 항상 남았다. 올해는 깻잎으로 신박한 레시피를 개발해야 한다고 계속 되뇌어본다. 반면 고수는 깻잎보다 활용하기 수월했다. 무엇보다 딥(음식을 찍어먹는 되직한 소스)을 만들 수 있다.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았다. 고수를 먹지 못하는 사람도 캐슈너트를 잔뜩 넣고 갈아 만든 내 딥을 맛있게 먹고는 했다. 함께 키운 허브인 바질을 갈아 넣는 것이 포인트다.

셋째 지렁이를 키워서 ‘음식물쓰레기 제로’에 도전하게 됐다. 도시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음식물쓰레기를 내놓을 수밖에 없다. 평소 이걸 최소화하고 싶었는데 텃밭을 통해서 드디어 이룬 것이다. 전세계에서 음식의 17%는 버려진다는 통계가 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소식과 채식을 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은 합리적인 음식 소비 추세로 환경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려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진다. 나도 그런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려는 사람 중 하나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를 생생하게 체감하게 됐다. 지난해 6월에는 거의 20일 동안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그 비로 내 텃밭의 작물은 대부분 녹아버렸다. 잘 자라던 상추들이 긴 비에 대만 남기고 사라졌다. 지난해 사상 최악의 긴 폭우가 끝나고 살아남은 건 깻잎·고수·당귀·레몬밤 정도였다. 1평을 가꾸는 농부지만 ‘이런 날씨에 어떻게 농사를 짓나’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농민의 아픔, 지구의 아픔을 훨씬 깊게 공감하게 된 것 같다.

텃밭을 가꾸기 전까지 나는 오랫동안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해 유기농·무농약 농산물을 구매했다. 나와 가족의 건강, 그리고 농민의 안정적인 재배환경을 위해서였다. 그런데 텃밭을 일구면서 나는 지구를, 그리고 뭇 생명의 안녕을 떠올리게 됐다. 1평 텃밭이 넓혀준 놀라운 지평이다.

권은중 음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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