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면 잠기는 ‘반구대 암각화’, 댐에 수문 달아 보호하기로

박상현 기자 2024. 4.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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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들 20년만에 합의
2022년 9월 21일 오후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울산 울주군 대곡천에 있는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 일부가 물에 잠겨 있다. 환경부는 암각화 침수를 막기 위해 인근 사연댐에 수문을 달 계획이다./김동환 기자

큰비가 내리면 물에 잠겨 침식돼 온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환경부가 2027년까지 댐에 수문(水門)을 3개 설치하기로 했다. 암각화 침수 문제가 제기된 지 20여 년 만에 구체적 보존 대책이 나온 것이다.

환경부는 울산시 울주군 대곡천 계곡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국보 285호)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수위를 조절하고 댐 성능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사연댐 건설 사업 기본 계획’을 19일 고시한다고 18일 밝혔다.

대곡천 계곡에 병풍처럼 늘어서 있는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발견됐다. 높이 2.5m, 너비 8m 바위 면에 새끼를 업은 귀신고래, 호랑이, 벌거벗고 피리 부는 사람, 고래를 사냥하는 사람 등 신석기시대 모습이 담긴 그림 약 300점이 새겨져 있다.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거대한 기록화로 꼽힌다.

문제는 암각화가 발견되기 6년 전 사연댐이 먼저 건설돼 그림이 수시로 물에 잠긴다는 것이다. 암각화는 사연댐 상류 4.5㎞ 지점 저수 구역 안에 있다. 사연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잠기기 시작하는데, 연평균 151일이나 잠겼다. 장마전선이나 태풍이 북상하면 바위 전체가 잠기기도 했다. 이에 2001년부터 문화재 훼손 우려로 여러 보존 대책이 논의됐다. 물길을 아예 바꾸거나 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는 방안 등이 거론됐다. 사연댐이 울산 주민의 식수원이기 때문에 사연댐을 아예 없애는 것은 불가능했다. 댐에 수문을 만들어 암각화 아래로 수위를 낮춰 관리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지만, 줄어든 수량만큼 다른 지자체에서 물을 끌어오는 일이 문제였다.

그래픽=백형선

환경부는 2014년 8월부터 임시 대책으로 사연댐 수위를 52m 아래로 운영했다. 강수가 집중되는 여름이 아니면 물을 조금씩 빼내 수위를 맞출 수 있었다. 그 결과 암각화 침수일이 연평균 151일에서 42일로 줄었다. 하지만 비가 수시로 오는 장마철엔 암각화가 잠겼다. 결국 근본 해결책은 수문 설치밖에 없었다. 2021년 환경부는 물 부족 문제에 대해 울산 지역은 대구의 식수원인 운문댐에서, 대구는 구미 해평취수장에서 끌어오는 방안을 마련했다. 2022년 2월 수문 설치에 대한 타당성 조사까지 마쳤다. 그런데 2022년 9월 해평취수장 물 사용을 두고 대구와 구미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울산은 운문댐에서 물을 끌어오지 못하면 당장 지역 주민들이 물 부족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에 사연댐 수문 작업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20여 년에 걸친 반구대 암각화 보존 노력도 실패로 끝날 위기에 처했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정부가 반구대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한 작년 7월부터다. 그때부터 환경부와 문화재청이 지자체들에 수문 설치 필요성을 설득했다. 물에 수시로 잠겨 훼손되는 환경에 놓인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긴 어렵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올 1월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서를 유네스코에 냈는데, 그때 지자체들과 수문을 설치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다”고 밝혔다. 수문이 설치되는 2028년부터는 집중호우 등에도 반구대 암각화가 물에 잠기는 일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부와 지자체들이 ‘수문 설치’라는 큰 틀에는 합의했지만, 세부 내용은 아직 협의해야 한다. 대구시 측은 “운문댐 물을 울산에 공급하는 데에 원칙적으로 공감하지만, 공급 수량은 조율 중”이라고 했다. 울산에선 하루 7만t을 요구 중인데, 대구시는 “너무 많다”는 입장이다. 대구가 구미 해평취수장에서 끌어오는 수량도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환경부는 올 하반기까지 지자체들과 협의해 지역별 물 공급량을 정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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