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다와 코다의 만남…“우생보호법 사라졌다? 현재진행중”

양선아 기자 2024. 4. 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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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코다 이가라시 다이, 한국의 코다 이길보라
최근 한국에서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를 출간한 일본의 대표적인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 시마즈 미사 제공

코다가 코다를 만났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는 청각장애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한다.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코다 작가인 이가라시 다이와 이길보라 감독이 지난 16일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다. 이가라시의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사계절) 출간 계기에 더해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한겨레와 사계절이 둘의 만남을 마련했다.

“어렸을 때 부모는 귀가 안 들리는데 나만 들리니 그 사이에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가 나처럼 귀가 들렸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도 있고, 반대로 ‘내가 부모님처럼 귀가 안 들리면 좋았을 텐데’라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는 어렸을 때 부모가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콤플렉스를 느끼고 부모와 깊이 소통하지 못해 외롭고 쓸쓸해하던 이가라시가 뒤늦게 수어를 배운 뒤 1954년생 어머니의 과거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은 책이다. 이가라시는 할머니와 두 이모를 찾아가고, 어머니가 다녔던 청각지원학교도 취재한다. 저자는 ‘어머니의 역사’를 복원해가면서 1948~1996년 장애인의 출생 자체를 막던 ‘우생보호법’에 대해 알게 된다. 이 법은 “불량한 자손의 출생을 방지”하기 위해 막아야 할 대상으로 유전성 질환, 한센병, 정신장애, 신체장애 등 56가지 질병·장애를 꼽으며 여기에 해당하면 강제 불임수술을 하도록 규정했다.

이가라시는 “제가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고 어머니, 아버지가 어쩌면 피해자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무섭고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공부하면 할수록 어떻게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지금 젊은이들이 우생보호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어 이번 책으로 꼭 알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마침 준비하던 영화에서 ‘우생보호법’을 다룬다는 이길보라 감독은 한국 사람들에게 “괴리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일본에 있었던 우생보호법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이야기해주면 ‘과거의 법이고 이미 사라졌고 피해자들이 소송하고 있으니 괜찮은 것 아니야?’라든가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고 한국에서는 없는 일이니까 우리랑 상관없는 것 아니야?’라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길 감독은 “한국에서 비장애인들이 평소에 ‘그러게, 장애인을 왜 낳았어?’라고 말하는 것이나 임신하게 되면 검사를 열심히 해서 비장애인이 나오도록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적 분위기는 결국 우생사상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며 “코다로서 이 책에서 우생보호법 이야기를 다룬 것은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대표적인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왼쪽)와 한국의 코다 작가 이길보라씨가 지난 16일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을 통해 대화를 나눈 뒤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계절 제공

이가라시 역시 “일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장애인은 아이를 낳지 말라’는 우생사상에 근거한 글들이 상당히 많다”며 “과거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현대 사회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말고, 차별은 국가에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므로 이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한국 독자들이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가라시와 이길 감독은 코다로서의 유대감과 동료의식을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개인이 처한 환경 등에 따라 코다 정체성이 매우 다양하다는 점도 함께 확인했다. 농인 부모 아래서만 자란 이길 감독은 ‘통역자’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자라나며 ‘이야기꾼’의 자질을 얻었다면, 조부모는 청인이고 부모는 농인이었던 이가라시의 경우 통역의 필요성은 많지 않았고 어린 시절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이가라시는 “10대의 어린 코다들이 ‘나 지금 쓸쓸해’라면서 괴로워하고 있다면, 제 책이나 보라 감독님 작품을 읽어보면 분명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것”이라며 “코다의 인생도 다양하다. 여러 코다가 쓴 작품을 읽어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이가라시와 이길 감독은 부모와 아이의 친밀감이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한데, 한국과 일본 사회에서 코다로 태어났을 때 부모와의 소통을 돕기 위해 수어를 가르치는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은 없다고 했다. 수어 교육은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에 달려 있는데다 수어 자체가 존중받지 못해 알고 있는 수어조차 쓰지 않는 코다도 있다며 사회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둘은 강조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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