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어머니 삶 쫓다 ‘우생보호법’에 충격”…“한국도 일상 속 우생사상 있어”

양선아 기자 2024. 4. 1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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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라시 다이·이길보라 대담 전문
일본의 대표적인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왼쪽)와 한국의 코다 작가 이길보라씨가 지난 16일 화상회의 프로그램인 ‘줌’을 통해 대화를 나눈 뒤 활짝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계절 제공
일본의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와 한국의 코다 작가 이길보라 감독이 지난 16일 온라인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만났습니다. 코다(CODA, Children Of Deaf Adult)는 청각장애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자녀를 뜻합니다. 1시간 반 넘게 진행된 대화에서 두 사람은 공감도 하고 서로의 다름에 대해서도 확인했습니다. 또 장애인 차별과 관련된 주요 의제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나눴습니다. 둘의 대화가 대화가 끝난 뒤, 기자인 저도 두 사람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날 통역은 이번 책의 번역자인 노수경씨가 진행했습니다. 이날 나눈 대화 전문을 싣습니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이길보라 제 책 ‘반짝이는 박수소리’가 일본에서 나왔을 때 이가라시 다이가 저를 인터뷰했다. 이후에 당신이 일본에서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한국에서 이렇게 당신 책을 만날 수 있어 너무 반갑다. 이번 책이 한국에 소개되는 이가라시 다이의 첫 책인데, 이전에 여러 책을 쓴 것으로 안다. 어떤 책을 썼는지 포함해 자기를 소개해달라.

이가라시 논픽션도 쓰고 있고 픽션도 쓰고 있다. 스스로 의식하고 쓰는 것은 아닌데, 내가 쓰는 것에는 항상 장애가 있는 분이 등장한다. 제가 처음 쓴 소설도 지적장애를 지닌 주인공이 자살을 해버리는 이야기다. 왜 그런 주제를 고르는지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내가 코다로 태어나서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실제로 많이 접하기 때문에 그런 쪽의 주제를 고르는 게 아닌가 싶다. 코다 작가 작품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어렵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가능한 읽기 쉽고 알기 쉽게 써서 한 명이라도 차별에 대해 알 수 있도록 활동하고 있다.

이길보라 한국 사회에서는 주로 내 책과 영화로 코다 이야기를 접한 사람들이 많다. 코다의 경험이 사람마다 다르고 다른 코다 정체성을 갖고 있는데, 이가라시의 책을 보면 이가리시의 삶에서는 ‘연결하는 존재’ 통역사로서의 코다의 정체성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이가라시는 어렸을 때 부모와의 내밀한 소통이 어려워 외로웠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 고백하고 있다. 저 같은 경우 어렸을 때 통역사 역할을 하며 그런 것들을 통해 이야기꾼의 자질을 얻었고 또 코다 작가로서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성장했다면, 어렸을 때 코다로서의 경험이 이가라시에게는 어떤 것이 되었는지 궁금하다.

이가라시 저에게는 귀가 들리지 않는 부모님이 계셨지만 잘 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도 계셨다. 농인 부모만 같이 살았던 코다에 비하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통역을 해야 하는 기회는 적은 편이었다. 저도 보라 감독님의 책을 읽으면서 코다로서 같은 부분도 있지만 환경 면에서는 다른 부분도 있구나 하고 느꼈다. 부모와 농밀한 커뮤니케이션을 못 해서 쓸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어렸을 때 ‘어째서 내가 부모님과 다를까’ 하고 생각했다. 부모는 귀가 안 들리는데 나만 들리니 그 사이에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아버지 어머니가 저처럼 귀가 들렸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도 있다. 반대로 제가 아버지 어머니처럼 귀가 안 들리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한 적 있다. 가족인데 달랐다는 게 그게 정말 싫었다. 거기에서 무엇을 얻었냐고 한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르다는 것을 일찍부터 받아들였기 때문에 타자와의 관계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차이가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배웠다. 사화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자기랑 다른 사람하고는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저는 저랑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당장 서로 이해하면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결국에는 어떤 지점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부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일본의 코다 이가라시 다이의 책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표지.

이길보라 ‘들리지 않는 어머니에게 물어보러 가다’ 이 책에서 어렸을 때 어머니랑 속 깊은 얘기를 나누지 못한 채 성장한 아들이 30대 후반에 수어를 배워서 어머니를 찾아가 얘기를 듣는 것이 사실은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이다. 제 주변을 보면 수어를 배우지 못한 코다들이 뒤늦게 수어를 배워서 부모랑 소통하려고 시도했을 때 쉽지 않다는 것을 목격했다. 이 책을 쓰는 과정 자체가 큰 용기와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출판사 편집자만의 제안만으로 이 프로젝트를 실행해야겠다고 결심하기 어렸을 것 같은데 가장 큰 동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가라시 ‘부모님이랑 같이 지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은 건강하신데 어쨌든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고 부모님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떻게 생각하면 단순한 얘기인데 어머님과 깊은 얘기를 하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는 게 싫었다. 절대로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수어를 열심히 배웠다. 어머님에게서 진짜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가 나온다 해도 마지막까지 이해하고 싶었다.

이길보라 말씀하시는 것처럼 그 행위 그 자체, 들리는 내가 들리지 않는 어머니와 소통하기 위해서 수어를 배우고 어머니의 언어와 어머니의 방식을 이해하면서 어머니의 역사를 나만의 방식으로 다시 쓴다는 게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특히 코다들에게는 청인들의 역사, 말을 하는, 장애가 없는 역사를 중점적으로 배우지만, 우리 부모님들은 장애가 있고 들리지 않는데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역사책이나 사회책 혹은 뉴스 혹은 공적 역사라고 하는 것에서 한 번도 보고 들은 적이 없지 않나. 그래서 나한테는 영화 ‘반짝이는 박수소리’를 만들고 동명의 책을 쓰는 과정이 구멍이 나 있는 역사, 온전하지 않은 역사를 온전하게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나한테는 하나의 세계가 온전히 되는 기분이 들었다. 작가님도 코다 작가로서 책을 써나가면서 또 다음 책을 써나가면서 하나의 역사를 완성하고 있다, 역사를 쓰고 있다는 생각을 충분히 했을 것 같은데, 그 경험이 어떤 경험이었는지 궁금하다. 또 책을 출간하고 나서 작가님뿐만 아니라 주변의 코다, 주변의 소수자들에게도 그런 피드백을 들었는지도 궁금하다.

이가라시 완전한 역사를 쓰는 감각, 완전한 세계를 쓴다는 감각에 관해 물어보셨는데 솔직히 저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고, 필사적으로 책을 썼다. 책은 한명의 장애가 있는 여성, 들리지 않는 여성의 역사를 돌아보도록 구성돼 있다. 다른 책은 다르긴 한데, 이 책에 대해서만 얘기하자면, 이 책은 완벽하게 나만을 위해서 쓴 책이다. 이 책은 장애가 있는 여성의 역사, 코다로 태어난 사람의 어떤 역사를 쓰려고 한 책이 아니라 정말로 내가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해서 써두어야 할 것 같아서 필사적으로 쓴 그런 책이다. 보라 감독님이 기대한 답변은 아닐 것 같다. (멋쩍은 웃음) 그래도 이 책을 쓰고 나니 나도 코다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한 것 같다. 책 출간 뒤 독자들의 감상들을 읽어봤는데, 그중 많은 부분들이 “이가라시와 어머니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 잘 됐다”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또 자신도 부모의 과거에 대해서, 부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이렇게는 자기는 못하겠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제가 느끼는 것은, 코다든 청인이든 상관없이 부모의 과거를 찾아가고 그것을 새로 그려나가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이다. 보라 감독님께서도 그렇게 하고 계시겠지만 부모의 과거에 대해서 실마리를 찾아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정말 정말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느낀 것은 내가 이렇게까지 부모의 과거에 대해 쓰려고 하는 것, 그림 그려보려고 하는 것, 그것은 내가 코다이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했다.

이길보라 파트너가 다이 이가라시 트위터를 팔로우하고 가끔 소식을 전해주어서 알고 있다. 책에서 등장하는 우생보호법 이야기가 등장했을 때 이가라시가 트위터에서도 이야기했고, 코다로서 그 우생보호법에 대해 발언한 것이 화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 사회에서 태어나고 일본 사회에서 자란 작가인 이가라시가 우생법의 존재와 우리 어머니도 우생보호법의 피해자였을 수도 있겠다라는 것들을 추적하면서 그 사건을 알게 됐을 때 충격이 정말 컸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다. 저도 지금 차기작 영화에서도 우생보호법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저는 한국 출신이고 한국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보다는 이가라시가 느꼈던 우생보호법에 대한 충격 그리고 공포가 훨씬 더 컸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었다. 이 책에서 어떤 계기로 우생보호법에 대해서 다루게 되었나.

일본의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가 어린 시절 농인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작가 제공

이가라시 내가 이 세상에 없었을 수도 있고 저희 어머니 아버지가 어쩌면 피해자였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정말로 무섭고 충격이었다. 조사를 해보니까 일본 농인분들께서 소송하신 분들이 있었다. 이분들은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어 재판을 하고 소송을 하고 싸움을 하셨는데, 이 부분이 저희 부모님들과 겹쳐져 알면 알수록 더 슬퍼졌다. 우생보호법을 알면 알수록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어떻게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는지 싫어졌다. 저는 이것을 책에 쓰면서 이것을 꼭 써야겠다, 뭘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지금 젊은이들이 우생보호법을 전혀 모른다. 실제로 내 친구가 내 책을 읽고 나서 우생보호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친구의 이야기가 정말 무서운 얘기라고 생각한 게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역사를 모른다면 또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장애인은 아이를 낳지 말아라’와 같은 우생 사상을 얘기하는 글들이 상당히 많다. 게다가 지금은 배 속에 있는 아이가 장애인인지 아닌지 검사하는 기술도 굉장히 발달해 있다. 이런 것들의 근저에 바로 우생보호법이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런 일을 두번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고, 우생보호법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고 또 얼마나 슬픈 것인지를 한 사람이라도 더 알게 하고자 이 책을 쓰게 됐다.

이길보라 예전에 한겨레에 우생보호법에 관한 칼럼에 썼다. 그때 사람들의 반응에 어떤 괴리감을 느꼈다. 왜냐면 말씀하셨던 것처럼 ‘구 우생보호법이고 예전에 사라진 법이고 그것으로 사람들이 소송하고 있고 그걸로 된 것 아니냐?’ 혹은 ‘한국 사람들은 일본에서 있었던 일이고 한국에서는 없었던 일이니까 우리랑 상관없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그런데 우생보호법을 얘기한다는 건 결국 우리가 지금 현재에도 남아있는 우생사상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한국에서 비장애인들이 평소에 하는 말들 ‘그러게, 장애인을 왜 낳았어?’라는 말들이나 아이를 임신하게 되면 검사를 열심히 해서 비장애인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어떤 그런 것이 굉장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거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가 결국 저는 우생사상과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에서 우생보호법 이야기를 코다로서 다룬 점이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양선아 책 속에서도 또 아까 말씀하실 때도 부모가 잘 듣지 못하는 부모라 쓸쓸했고 외로웠다고 말했다. 또 부모님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에 콤플렉스를 느꼈다고 말했다. 언제 수어를 배웠고, 수어를 배워서 부모님과 긴밀히 소통을 한 시기는 언제였나?

이가라시 수어 자체가 친숙한 언어이기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간단한 것은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다. 간단한 수어는 할 수 있었지만 깊은 이야기라던가 어려운 이야기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 30대가 된 후에 수어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내 자신을 위해 수어를 배우고 있던 도중에 이 책 이야기가 나왔고 그렇다면 좀 더 열심히 수어를 공부해서 책을 쓰자고 생각하게 됐다.

양선아 부모와 아이의 깊은 대화나 친밀감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농인의 자녀로 태어났을 때 그 자녀가 청인이라면, 그 아이가 부모와 대화할 수 있도록 수어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할 것 같은데, 그런 것이 없었고 본인이 배우고 싶을 때만 알아서 배워야 하는가?

이가라시 일본에서는 코다가 수어를 배우는 것은 부모님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정환경이 어떤가에 따라 달라진다. 코다 친구들의 경우를 얘기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수어를 배워서 계속 수어로 얘기하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만, 사회 속에서 수어 자체가 존중을 받지 못하는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수어 자체를 부끄러워하고 그래서 하던 것도 안하게 되는 그런 상황도 있다. 코다 부모와 자녀의 커뮤니케이션을 어떤 식으로든 보존시켜줘야 한다는 어떤 사회 시스템은 전혀 없다. 어디까지나 이것은 이 사람들이 처한 환경에 좌우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이길보라 한국의 상황을 덧붙이자면 똑같다. 코다 부모와 코다 자식뿐만 아니라 들리는 조부모와 들리지 않은 아이를 낳은 자녀 사이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똑같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지금은 수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생겨서 내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있고 농아이를 낳은 부모도 수어를 배울 수 있다. 혹은 부모가 농인인 코다 자녀도 어느 기관에서 수어를 배워야겠다라고 결심을 하게 되면 수어를 배울 수 있지만, 교육 체제로서 제공되지는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 학교에 가서 ‘우리 부모님은 수어를 쓰니까 학교에서 나는 수어를 배우고 싶어요’ ‘제2외국어로 수어를 배우고 싶어요’ 하는 것들이 전혀 제공되고 있지 않다. 이가라시가 했던 것처럼 개인 노력에만 기대해야 하고 스스로 뭔가를 찾아서 배워야 하는 농부모가 혹은 청인 부모가 혹은 코다 자녀가 스스로 원해야만 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저희 코다들이 음성언어를 잘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많은 비장애인이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한테 중요한 것은 코다가 부모랑 소통할 수 있는 수어를 제대로 습득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길보라 감독이 자신의 코다 경험을 담은 책 ‘반짝이는 박수 소리’ 표지.

양선아 이가라시는 전적으로 나를 위해서 어머니에게 바치는 것으로서 책을 썼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이 책을 다 집필하고 난 뒤 코다로서의 정체성이 좀 더 확실하게 되어서 앞으로의 나아갈 방향에 영향을 주었는가? 코다로서 정체성을 언제부터 느끼셨고, 이 책을 집필함으로써 코다로서의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궁금하다.

이가라시 내가 취재하면서 써놓은 메모가 점점 더 늘어났지 않겠나? 그 늘어난 메모를 다시 읽으면서 내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메모를 계속 읽으면서 어머니가 받은 차별과 어머니가 겪은 슬픔이라던가 그런 것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그것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것들을 반복하게 해서는 안된다. 우리 어머니뿐만 아니라 다른 장애인들에 대해서도 반복시켜서는 안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코다로서의 정체성이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는 어떤 특별한 큰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를 어떻게 바꿔가야 한다든가 그런 차별을 없앨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양선아 겸손의 말씀이시다. 이 책을 쓴 것만으로도 굉장한 큰 힘이라고 생각한다.(웃음)

이가라시 감사하다. 저는 책을 쓸 수 있다. 그게 대단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세상을 좀 더 상냥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몇 가지 쓰고 있는 책이 있는데, 주제는 장애에만 머무르지 않고 사회적인 소수자에 대해서 쓰고 싶다. 구체적인 것은 말을 못해주지만,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책 중 하나는 우생사상을 주제로 한 장편 소설이다. 이 책도 한국에서 번역되면 좋겠다.

양선아 코다로서의 유대감, 일본에만 이런 사람이 있지 않고 코다로서 연대한다면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이길보라 감독님의 작품에 어떤 영향을 받았고, 국제적인 연대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하다.

이가리시 이길보라 감독님의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그것이 세상에 나왔을 때 정말로 멋지다고 생각했다. 같은 코다이긴 해도 보라 감독님이랑 저랑은 환경이 달랐다. 보라 감독님의 경우는 수어를 많이 쓰고 통역자로서의 역할이 강했다. 일본과 한국이라는 환경도 달랐다. 이렇게 다르지만 그 책을 읽으면서 보라 감독님과 나는 친구다 이렇게 느낀 것 같다. 만난 적도 없고 책만 읽었는데도. 정말 오래된 친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면 할리우드 영화 중에 ‘코다, 사랑의 노래’라는 영화가 화제가 되었을 때 그 안에 나오는 루비라는 코다라는 주인공에 대해서도 나는 정말 강하게 ‘나의 동료다’ ‘친구다’라고 느꼈다. 코디끼리의 공감이나 동료의식은 정말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어떤 국제적 연대를 하는 액션을 할 만한 입장의 사람은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보라 감독님의 작품을 보고 취재를 해서 일본에 소개를 한다든가 아니면은 직접 책을 써서 이번처럼 바다를 건너서 출판을 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국경을 넘어서 연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나는 다른 코다에게 영향을 받는 사람은 아니다. 코다도 코다 인생이 다양하다. 그리고 내 인생은 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나만 얘기하자면 보라 감독님이 어렸을 때부터 수어를 잘 한 것은 부럽다.

양선아 코다 내에서도 다양한 정체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책이 독자들에게 주는 어떤 큰 선물이라고 나도 느낀다. 이 책을 다 집필하고 나서 어머니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고, 자신의 역사를 아들이 쓴 것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해주셨나.

이가리시 책을 쓰기 위해 취재를 하는 1년 반 동안 이야기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고 추억이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어머니는 즐겁고 추억이 되었다고 얘기하시는데 자기 인생이 책이 됐다는 게 좀 부끄럽다고도 얘기하셨다. 이렇게 책을 써서 한국에 번역해 출판하게 됐고 신문이나 티비에서 소개해서 나도 잘 됐다고 생각하는데, 어머니도 책을 써줘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일본의 코다 작가 이가라시 다이가 어린 시절 농인 부모님과 함께 찍은 사진. 작가 제공

양선아 코다들은 침묵의 세계와 소리의 세계를 왔다 갔다 하시는데 또 다른 세계로 청인을 초대한다면 어떤 말로 초대하시겠나?

이가라시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들리지 않는 세계도 굉장히 시끄럽다. 수화로 시끄럽게 얘기한다.

양선아 내 질문이 편견이 섞인 말이었네. (웃음)

이길보라 나도 같은 말을 하려고 했다. “엄청나게 시끄러운 고요와 침묵의 세계로 초대합니다”라고 말하려고 했다.

양선아 어머니를 깊이 이해하고 어머니의 역사를 쓰시면서 쓸쓸함은 사라졌는지 지금은 어떤 감정인지? 코다로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저자로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시고 싶은지?

이가라시 지금 쓸쓸한 기분은 없다. 들리지 않는 부모와 들리는 아이의 그 차이에 대해서 수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 사이에 수화가 있기 때문에 괜찮다. 만약에 십대의 어린 코다들이 ‘나 지금 쓸쓸해’라던가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예를 들어 제 책이라던가 보라 감독님 작품들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것이다. 분명히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것이다. 이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여러 코다가 쓴 작품을 보길 권한다.

이길보라 이번에 소개되는 책이 다양한 코다들이 받아들여지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어떤 코다들은 강한 코다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수어를 잘하지 못하는데, 나는 코다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코다 정체성을 보고 나 스스로를 코다로 부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이가라시 이 책을 읽은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이것은 일본 과거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현대 사회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야 이런 식으로 생각할까 봐 걱정되고 독자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차별은 국가에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이고 이 일이 나한테도 일어날 수 있는 자기 일로 받아들여 줬으면 좋겠다.

양선아 꼭 그 말을 기사에 넣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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