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선수 눈이 되려다 사지 마비”···장애인 사이클 선수들의 호소
20년 넘게 자전거를 탄 조선씨는 다시는 자전거 페달을 밟지 못할까 걱정한다. 텐덤사이클 선수인 그는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 국제대회에 출전했다가 목뼈가 골절되며 사지가 마비됐다. 18일 서울 용산구에서 만난 조씨는 사고 이후 4개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휠체어를 탄 채 손가락에 힘을 주지 못했다. 조씨는 “재활 중이지만 언제 퇴원할 수 있을지, 몸이 예전처럼 돌아올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텐덤사이클은 시각장애인 선수와 ‘파일럿’이라고 불리는 비장애인 선수가 한 팀으로 사이클을 타는 종목이다. 조씨는 2022 항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 3관왕인 시각장애인 선수 김정빈씨와 함께 지난해 3월부터 호흡을 맞췄다.
8개월여 동안 국제대회를 함께 출전해온 두 사람은 여느 때처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그 기대는 지난해 12월3일 무너지고 말았다. 도쿄 대회에서 첫 번째 바퀴를 돌던 중 뒷타이어에 펑크가 나서 떨어지면서 김씨는 치골이 골절됐고, 조씨는 경추골절로 사지를 움직일 수 없었다. 조씨는 “얼마나 다쳤는지 보려고 고개를 들었더니 팔다리가 연체동물처럼 엇갈려 있었다”고 회상했다.
조씨는 헬기로 이송돼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술비 4000만원을 자비로 부담할 뻔 했다. 대한장애인사이클연맹 사무국이 국가대표 상해보험을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기 전날 감독으로부터 “보험을 들지 않았으니 살살 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는 “시합 전날 그런 말을 들었으니 대회를 포기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후 수술비는 지난 8일 대한장애인체육회가 모금한 후원금 5000만원으로 충당됐다.연맹 측은 규정상 국제초청대회 출전시 보험에 가입해야 의무가 없다면서 대한장애인체육회와 보험을 소급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지원했다고 밝혔다.
두 선수는 이번 사고를 겪으며 시각장애인 선수의 눈이 되는 파일럿 선수의 지위가 얼마나 열악한지 깨달았다고 했다. 조씨와 같은 장애인 선수의 경기파트너는 국민체육진흥법상 국가대표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대표로 인정되는 김씨가 사고를 당했다면 법적으로 체육유공자 자격을 신청해 보상을 받을 수 있지만 파일럿인 조씨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조씨는 “자전거 위에서 위험부담을 함께 나누지만 영광은 함께 할 수 없고 문제가 생겼을 땐 보상과 지원을 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김씨는 경기를 뛰기 위해 꼭 필요한 파트너의 지위가 불안정하면 위축되는 부분이 크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가가 파일럿의 지위를 보장하지 않다 보니 팀으로서 누려야 하는 영광도 장애인 선수 혼자만 누리게 된다”고 말했다. 템덤사이클뿐 아니라 시각장애인 육상 및 스키 선수들의 ‘가이드러너’도 국가대표와 경기를 함께 치르며 성적에 기여하지만 법적으론 국가대표로 인정받지 못한다.
조씨는 장애인 선수와 함께 뛰는 경기파트너 누구도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병원비가 해결되더라도 맞벌이로 일하던 부인까지 간병에 뛰어들며 생계가 어려워졌다”며 “경기파트너들의 처우가 나아지고 법적 지위가 보장돼야만 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뛰려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고 장애인 스포츠가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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