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학생 "꿈보다 현실의 벽 마주해"…김빛내리 "무슨 실험 중단해야 하나 걱정"

이병구 기자 2024. 4. 18.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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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2차 회의
18일 서울 동대문구 수림문화재단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에서 열린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2차 회의' 참석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과기정통부 제공

"대학원생 월급 이렇게 깎였다더라 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꿈보다 현실의 벽을 마주하게 됩니다."(KAIST 화학과 2학년 김성원)

"공부하고 싶은 게 더 있어도 포기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습니다. R&D 예산 삭감과도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기업에서 일하는 게 차라리 낫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3학년 조보경)

이공계 학부생, 대학원생들은 18일 서울 동대문구 수림문화재단 허준이수학난제연구소에서 열린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2차 회의'에서 이같이 말했다. 정부의 이공계 정책에 대한 미래의 불안감을 호소한 것이다.

이날 함께한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은 이공계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마음이 불편하고 무겁다"며 정부에 '쓴소리'를 이어갔다.

김 교수는 "10월쯤에 연구비가 떨어질 텐데 무슨 실험부터 중단시켜야 하나 고민한다"며 "인턴 기회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학생과 교수님들한테 듣고 있다. 심한 경우 연구실을 닫거나 실험을 포기하고 컴퓨터로 분석만 해야 하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 연구자들도 다 비슷한 생각일 것"이라며 "신뢰를 쌓기는 어렵지만 무너지기는 쉽다. 비상한 상황이고 비상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스템 신뢰 손상에서 오는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부에서 노력해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김빛내리 서울대학교 석좌교수. 과기정통부 제공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학령인구 감소와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응하기 위해 교육부와 공동으로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1차 회의에 이어 2차 회의에서는 이공계 대학의 현장 의견을 듣고 토론을 진행했다.

1부 현장 의견 청취 시간에는 대학 학부생과 대학원생이 자신의 이공계 진학 사유와 정부에 건의하고 싶은 사항 등을 밝혔다.

치의예과를 중퇴하고 KAIST 화학과에서 공부하는 김성원 학생은 진로를 찾아가는 시기인 고등학생과 진로를 구체화하는 대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부탁했다. "의사가 매력적인 직업이긴 하지만 스스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불안감을 해소하는 선택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보경 학생은 "학생 경험 기회를 보장해 줬으면 좋겠다"며 "재정적, 제도적 지원이 있으면 많은 학생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대학원생들은 연구 현황과 장래희망, 정부 건의 사항을 밝혔다.

호서대 데이터사이언스학과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근아 학생은 "연구를 하며 데이터의 양과 질, 수집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공공데이터를 더 많이 개방해 연구자들이 더 다양하고 신뢰할 수 있는 자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 연구 질 향상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응용바이오공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졸업 연구를 진행 중인 김동우 박사수료생은 "다양한 학술적 연계나 융복합 연구가 트렌드"라며 "대학원생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하면 내적 동기뿐 아니라 한국 연구 역량이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준이 고등과학원 석학교수. 과기정통부 제공

1부 마지막 순서로 연구자들의 경험과 제언이 이어졌다.

2022년 수학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한국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는 "저는 개인적으로 우여곡절 끝에 잘 맞는 길을 간신히 찾은 아주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며 "수학자로서의 길을 찾기 위해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다. 학생들이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도 괜찮은 시스템이 구축되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또 "어느 누구도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연구자나 학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며 "현실적인 이유가 자연스러운 연구 동기를 방해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빛내리 교수는 "직업 선택에 있어서 안정성이라는 건 누가 뭐래도 중요한 부분"이라며 "불안을 해소해 주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예측 가능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구체적인 해결 방법으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폭적으로 줬으면 좋겠다. 특히 주거비 부담을 덜 수 있는 장학금 늘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제안했다. 이밖에도 외국 인재들이 한국에 오는 과정을 어려워하는 문제나 전문요원 제도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2부에서는 대학 연구 활성화 방안에 대해 TF 위원과 현장 참석자들의 논의가 비공개로 이어졌다.

2부 발제를 맡은 최병호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신진 연구인력을 양성하고 우수 중견 연구자를 확보해 학을 세계적 수준의 연구 허브로서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대학 연구 경쟁력을 강화하고 대학·기업·지자체 등 다양한 국가 요소 간의 협력을 통해 국가 경쟁력 확보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공계 활성화 대책 TF 팀장을 맡은 이창윤 과기정통부 제1차관은 "오늘 건의사항을 TF 대책에 포함해 청년이 과학기술인의 꿈을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며 "청년 과학기술인의 성장을 위한 제언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겠다"고 밝혔다.

대책 TF는 이후 초·중·고 교육 과정, 산업계 연계 등 여러 번의 회의를 거치고 의견을 종합해 '우수 과학기술 인재 확보 및 육성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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