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공백에 ‘차선책’ 세우는 환자들…“‘빅5’ 말고 지역·2차 병원부터”

강윤서 기자 2024. 4. 1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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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단체 “드러나지 않을 뿐…2개월 간 피해 엄청날 것”
“답보 상태 두 달째…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전공의, 환자 만나주길…병원 떠난 이유 직접 듣고 싶다”

(시사저널=강윤서 기자)

의과대학·대학병원 교수들이 외래 진료와 수술을 줄이기로 한 4월1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와 내원객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두 달째 이어지면서 환자들의 한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진료 퇴짜를 피하고 안전한 '동아줄'을 붙잡기 위해 이른바 '빅5' 병원 등 서울 대형병원이 아닌 지역·2차 병원부터 찾는 발걸음도 부쩍 늘었다. 4월 말 의대 교수들의 집단사직까지 현실화 할 경우 '재앙'이 덮칠 것이라는 절규 속 환자들은 정부와 의료계를 향해 사태 해결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18일 의료계와 환자단체 등에 따르면, 전공의 이탈로 병상을 대폭 줄인 대형병원에는 환자 발길이 뚝 끊겼다. 응급실 뺑뺑이, 의사 부족 등 의료공백 상황을 피부로 체감 중인 환자들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차선책을 고려하는 모습이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두 달 전 사태 초기와 달라진 현상"이라며 "빅5 병원에 가고 싶었던 환자들도 (병원에 가도) 진료를 못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서면서 처음부터 지역 상급종합병원을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안 대표는 "가령 지방에 있는 환자들이 더 이상 서울 대학병원부터 찾아가지 않고 경북대·부산대·전남대 병원 등을 선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자단체연합회는 한국백혈병환우회 등 9개 환자 단체가 모인 연합회로 9만1000여 명 환자가 속해 있다.

전공의 이탈로 의료공백이 커진 3차 병원 대신 2차병원에도 환자가 몰렸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회장은 "상황이 절박한 환자와 보호자 입장에선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받아야 하니까 2차병원에서 치료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천만다행인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김 회장은 "이분들에겐 처음이자 마지막 수술이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2차와 3차 병원을 운운하지 않고 자신의 병을 봐줄 의사가 있는 곳으로 마지막 희망을 안고 달려가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중증질환연합회에는 식도암·폐암·췌장암·다발골수종·중증아토피 등 6가지의 중증질환 환자단체가 모여 있다.

정부가 의료공백에 대비해 민간에 개방한 군 병원을 찾는 사례도 늘었다. 지난달 18일 인테리어 사업을 하는 조민수(34)씨는 날카로운 플라스틱 조각이 눈에 박히는 사고를 당해 수도권 대형병원 10여 곳에 연락했으나 수술할 안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거부당했다. 실명 위기에 처한 조씨는 마지막으로 연락한 국군수도병원에서 '지금 바로 오라'는 답변을 받고 응급수술을 받았으며 현재 회복 중이다.

환자단체는 환자들의 선택지가 달라진 현상을 두고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성토한다. 일각에서는 전공의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대형병원 환자 쏠림이 완화돼 의료전달체계가 개선되는 측면이 있다고 분석하지만, 환자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전혀 다르다.

김 회장은 "지금 사태를 두고 서울 쏠림 현상을 정상으로 돌리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환자를 받아 줄 수 있는 병원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찾아다니는 지금 상황을 어떻게 정상으로 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불안에 떨고 있는 환자와 보호자의 절박한 심정을 들여다 봐 달라"며 "두 달 째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정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라고 비판했다.

의대 교수들이 당초 밝혔던 대로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25일 오전 서울의 한 상급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염없이 밀린 암 수술…2차 병원 가도 마찬가지"

그러나 지역·2차 병원을 찾아가도 치료를 받을 수 있단 보장은 없다. 전공의들이 빠진 지역 수련병원은 일찍이 수도권만큼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2차 병원 또한 인근 대형병원 뺑뺑이에 끝에 찾아온 환자들이 모여들면서 포화 상태에 빠졌다.

위암 환자 A씨는 서울의 한 3차병원에서 수술을 받지 못한다는 통보를 받고 인근 2차 병원을 찾았지만 대기가 길어 수술이 지연되고 있다. 전공의 이탈이 시작된 이후 두 달 간 전립선 암 수술이 연기된 B씨도 수술 순번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중이다.

환자단체들은 오는 25일부터 교수 집단사직이 현실화할 경우 상상불가 한 의료대란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 단체는 "교수까지 병원을 떠난다면 그 이후 벌어질 일들은 끔찍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김 회장은 "지금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실상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며 "말기 암 환자처럼 생사의 경계에 놓인 환자분들에 대한 추가 치료 등이 의료공백 사태 이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분들의 사연을 들어보니 과거엔 같은 상황에 처한 환자들에겐 병원에서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등 더 많은 치료 방법을 권했는데 지금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하라고 하더라"며 "추가 치료로 더 오래 살 수도 있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시도해야 하는 게 의사의 역할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기 전에 환자와 전공의 간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 대표는 "전공의들 개개인의 생각이 궁금하다"며 "현재 크게 목소리를 내는 전공의들 외 나머지 전공의들도 똑같은 입장인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눠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의사에 대한 환자들의 신뢰는 아직도 크다"며 "현직 교수들마저 의료직을 떠난다면 정말 파국으로 갈 것이다. 교수들이 그렇게는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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