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산 神의 요란한 환영인사…간밤 폭풍우에 텐트가 주저앉다

김영미 여행작가 2024. 4. 1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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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레나나에 오르면 고산의 황량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제2봉인 케냐산Mountain Kenya은 높이가 5,199m로 처음 생성되었던 시기에는 6,500m까지 치솟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U자형의 계곡 봉우리를 형성하는 정상에는 4개의 봉우리가 있다. 이것은 수백만 년 전에 활동했던 거대한 사화산의 풍화 잔해이다. 케냐산은 적도에 걸쳐 있지만 눈이 많이 내린다. 정상은 빙하로 덮여 있고 중턱은 사바나 평원이 펼쳐지는 케냐산은 동아프리카의 가장 뛰어난 자연경관으로 손꼽힌다.

케냐산 근처에 사는 키쿠유Kikuyu족과 메루Meru족 사람들은 케냐산을 신성하게 여긴다. 그들의 신 응가이Ngai와 그의 아내 뭄비Mumbi가 산 정상에 산다고 믿고 지금도 전통적인 의식을 치른다.

케냐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바티안Batian(5,199m)과 넬리온Nelion(5,188m)은 불과 140m 간격으로 떨어져 있으며 '안개의 문'이라고 불리는데 암벽 등반으로만 올라갈 수 있다. 제3봉인 포인트 레나나Point Lenana(4,985m) 정상은 로프 없이 트레킹으로 등산객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케냐산에 오르기에 가장 좋은 시기는 건기 중 맑은 시기인 12월부터 3월까지이다. 매년 약 1만5,000명이 케냐산을 오른다. 케냐산을 오르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안전문제는 고산병이다. 다른 산에 비해서 케냐산은 고도가 급히 올라가서 지나치게 열정적인 등산가는 고산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트레킹은 주로 세 가지 경로를 이용한다. 서쪽의 나로 모루Naro Moru, 북서쪽의 시리몬Sirimon, 남동쪽의 초고리아Chogoria이다. 세 곳 모두 캠핑을 하거나 산장을 사용할 수 있고, 포인트 레나나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데 4~5일 정도 소요된다.

매킨더 밸리로 향하는 길엔 거대한 로벨리아와 세네시오 군락지가 펼쳐진다.

1일차 시리몬게이트(2,900m)~모세캠프(3,340m), 약 4.5km

시리몬 루트Sirimon Route는 시리몬국립공원 게이트Sirimon National Park Gate에서 입산신고 후에 트레킹을 시작할 수 있다. 포인트 레나나까지 고도가 점진적으로 상승해서 가장 쉬운 경로 중 하나이다.

출발일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나이로비에서 케냐산 진입도시인 나뉴키Nanyki를 거쳐서 시리몬 게이트에 도착했다. 입산신고 서류를 작성하는데 주스, 과자, 빵, 통조림 등 식량을 모두 조사하고 개수까지 적는다. 조금 낯선 상황이다.

청명했던 하늘에 구름이 오락가락한다. 역시 높은 산의 날씨는 짐작하기 어렵다. 게이트를 지나고 고산적응을 위해 해발 약 2,900m부터 걷기 시작했다. 걱정했는데 숨쉬기는 아주 편하다. 길가에서 코끼리 흔적을 발견했다. 가이드는 몇 번 보았다고 하니 은근 기대가 된다.

올드 모세캠프Old Moses Camp(3,340m)에 도착하니 이미 도착한 사람들이 꽤 많다. 특히 그룹으로 온 팀이 생각보다 많다. 다들 누워서 지나가는 우리들을 보며 한껏 여유를 부린다. 모세캠프까지 운행하는 버스인 마타투Matatus도 있다. 마타투는 케냐의 대중교통이다. 고소적응이 필요 없으면 마타투를 타고 와도 되겠다. 캠프의 매점에서는 물과 기본적으로 필요한 몇 가지 물품을 판다. 모세캠프엔 침대가 있는 산장이 있고 화장실에 샤워부스도 있다. 너무 추워서 샤워는 엄두도 낼 수 없다. 그런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캠프사이트가 개인소유이다. 이곳뿐 아니라 케냐산에 있는 다른 캠프사이트도 마운틴 락 호텔Mount Rock Hotel이 운영을 한다고 한다.

먼저 올라온 셰프가 휴게공간에 따스한 차와 스낵을 준비해 놓았다. 잠시 후 망고까지. 저녁식사는 스프, 구운 감자, 생선, 양배추 볶음, 이름 모르는 음식까지 정말 성찬이다. 조금 짠 거 빼고는 모두 맛있다. 내일은 소금을 넣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다. 황제 트레킹이 따로 없다. 조금 비싼 투어비용을 지불한 보람이 있다. 물론 킬리만자로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모세 캠프에 밤이 스며든다.

케냐산 정상을 마주보는 조망포인트. 그냥 앉아만 있어도 산이 주는 위로에 감사할 뿐이다

2일차 모세캠프~쉽톤캠프(4,200m), 약 15km

오늘 경로는 숲이 적고 고산지대 특유의 황량함을 즐길 수 있는 코스이다. 능선을 건너 매킨더 밸리MacKinder Valley로 가는 루트는 날씨가 맑을 때는 멋진 조망을 선물한다. 매킨더 밸리에는 거대한 로베리아Lobelia와 세네시오Senecio Plant 군락지가 펼쳐진다. 고도는 3,340m부터 4,200m까지 거의 1,000m를 올라가야 하니 거리는 짧아도 은근 신경이 쓰이는 코스이다.

오전 6시가 되니 새들도 지저귀기 시작한다. 참으로 평화로운 아침이다. 이런 편안한 공간에 내가 있음에 감사하다. 운해가 예술이다. 업다운이 여러 번 반복되니 호흡이 살짝 어려워진다. 고산임에도 이름 모를 야생화가 가득이다. 꽃 보는 즐거움이 있지만 고소도 신경이 쓰이고 휴대폰 배터리도 충분하지 않아서 눈으로만 만족하며 길을 간다. 길가에 흙을 파헤친 자국이 참 많다. 비틀스Beetles라는 검은색의 작은 곤충의 짓이라고 한다.

쉽톤캠프Shiptons Camp와 리키 북쪽Liki North으로 갈라지는 정션에 도착했다. 리키 북쪽은 케냐산 제1봉과 제2봉을 암벽으로 오를 때 가는 루트이다. 근처에는 화장실도 있다. 케냐산에는 적당한 위치마다 화장실이 있어서 심리적으로 편하다.

케냐산 트레일 맵.

거대한 로벨리아 군락지가 나왔다. 로벨리아는 물을 가득 담고 있다가 건기가 되면 그 물로 살아간다고 한다. 날씨가 추우면 밤에 얼어붙어 초승달 모양의 얼음 조각을 만들어서 '진 토닉 로벨리아'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로벨리아는 꽃이 죽고 나면 다시 줄기가 커지고, 그 다음에 다시 꽃이 나고 다시 줄기가 커지면서 그 높이가 수 미터에 달한다.

계곡 따라 올라가는 길이 아름답다. 트레킹 하는 양쪽으로 화이트에버라스팅White Everlasting Flower이 은빛으로 화려하게 빛을 내고 있다. 마치 천상의 화원 같다. 이렇게 높고 척박한 환경에서 화려함을 잃지 않고 있음이 신기하다. 케냐산 정상을 마주보는 조망포인트에 도착했다. 그냥 앉아만 있어도 산이 주는 위로에 감사할 뿐이다. 케냐산의 제1봉과 제2봉을 원주민들은 세데오Sedeo와 데레리Tereri로 부른다. 브라더와 시스터를 의미하는 마사이족 언어이다. 이 산의 오래전 주인은 마사이족이었다.

리키밸리Liki valley의 계곡 물이 졸졸 흐르는 곳에 점심식사를 위한 피크닉 식탁이 정성스레 준비되어 있다. 이런 멋진 자연 속에서 즐기는 식사가 어찌 맛이 없을 수 있을까? 스태프들에게 저녁식사부터는 모두 함께 먹자고 제안했다. 혼자만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니 미안하기도 하고 내가 남겨 놓은 음식을 먹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편치 않다.

식사 후에는 잠깐 낮잠을 즐겼다. 따스한 햇살이 온 몸을 따뜻하게 채워 준다. 계곡 물이 너무 맑아서 잠시 발을 담갔다. 발이 쫄깃쫄깃해진다. 가이드도 포터도 내가 계곡에 발을 담그자 화들짝 놀란다. 가이드는 추워서 못 들어간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천국이 따로 없다.

케냐산 정상을 배경으로 세네시오가 자리하는 쉽톤캠프의 캠프사이트.

자이언트 로벨리아 군락지에 도착하니 이곳의 로벨리아는 유난히 키가 크다. 대부분 2m가 넘는다. 길가 바닥에는 납작 업드린 노란 꽃이 만발했다.

쉽톤캠프 도착. 이곳의 해발고도는 4,200m. 산 정상과 정면으로 보이는 산장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엽서이다. 내 텐트는 케냐산 정상과 마주보고 있다. 얼마나 신나고 즐겁던지. 밤에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고 케냐산과 마주보고 잘 상상에 마냥 즐겁기만 하다.

산 아래쪽은 저리도 맑은데 산 위쪽은 먹구름이 심상치 않다. 저녁을 먹고 나니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한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무서운 비바람은 처음이다. 텐트가 날아갈 것만 같지만 잠을 청했다. 포터가 나를 불렀다. 위험하다고 빨리 산장으로 들어가란다. 정신없이 잠자리를 옮겼지만 산장 안에서도 폭풍우에 건물이 들썩거리고 양철지붕을 때리는 엄청난 굉음소리에 잠을 잘 수 없다.

3일차 쉽톤캠프~포인트 레나나(4,985m), 왕복 7km

캠프 주변의 봉우리를 걸으며 정상 도전을 위해 고소적응을 하는 예비일이다. 바람 소리 때문에 잠을 청하지 못했는데 새벽 3시경이 되니 오늘 정상을 도전하는 사람들이 일어나 산행 준비를 한다. 그 사람들이 출발하고 나니 정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다시 시끌벅적거린다. 결국 잠을 자는 건 포기하고 아침을 맞이했다.

가이드가 불러서 나가 보니 지난밤에 내 텐트가 주저앉았다. 폴대가 부러졌다. 대피했으니 망정이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정상에 가 보기도 전에 이곳에서 주저앉을 뻔했다.

케냐산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인 포인트 레나나.

아침식사 시간이 되니 이미 정상에서 내려온 한 무리의 사람들로 다시 산장이 시끄럽다. 남자 분이 사진을 보여 주는데 온통 눈이 가득하다. 뷰는 열리지 않아 세상이 뿌옇다. 햇빛이 빨리 이 눈을 녹여 줘야 하는데 걱정이다. 다행히 아직 우리에겐 하루의 시간이 남아 있다. 바람은 여전히 심상치 않다. 오전 내내 바람도 바람이지만 비가 쏟아져서 고소적응은커녕 가까운 곳 산책하기도 어렵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니 하늘이 맑아지기 시작한다. 수년 만에 정상 봉우리들을 다시 보는 것 같다. 가이드는 날이 맑아졌으니 내일 새벽에 올라갈 포인트 레나나를 점심 먹고 다녀오자고 한다. 새벽 3시에 추위와 싸우며 가는 것보다 지금 가는 것이 심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훨씬 좋긴 하겠다.

점심식사 후에 간단하게 산행 준비를 했다. 물과 간식, 카메라, 스틱까지. 해가 안개 속으로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비 온 후라 파란 하늘이 더욱 새파랗다.

정상을 향한다. 지금까지 보던 풍광과는 사뭇 다르다. 황량한 고산 아래로는 도시 풍광이 곁들여진다. 갑자기 야경이 궁금해진다. 고산이라 올라갈수록 힘들어야 하는데 오를수록 힘이 솟는다. 거의 수직 상승하듯이 고도는 많이 올라가지만 아직까지 호흡은 편하다. 산장이 장난감처럼 보인다. 힘들어도 한발 한발 오르다보면 이렇게 멀리 올 수 있음이다.

로워 심바 탄Lower Simba Tarn(4,630m)과 해리스 탄Harris Tarn 두 개의 호수가 발 아래로 펼쳐진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험해지면서 고산의 황량함이 느껴진다. 화산석이라 봉우리들이 엄청 뾰족하다. 포인트 레나나라는 글자가 보이면서 얼음 구간도 꽤 나타난다.

포인트 레나나 인증을 하고 철사다리를 올라가면 진짜 포인트 레나나 정상이다. 어느 산이건 정상 인증은 행복하다. 빙하호수도 있다. 정상에 오르니 주변의 모든 풍광이 360도로 펼쳐진다. 산을 오르며 보지 못했던 반대쪽의 빙하호수까지 절대로 정상을 오르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광이다. 단지 몇 장의 사진만으론 정상의 그 느낌을 남길 수 없음이 안타깝다. 가장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풍경 또한 고산이 주는 선물이다.

케냐산 트레킹을 마치고 도착한 날머리인 아나바스 마운트 케냐 로지에서 소소한 망중한을 즐겼다.

4일차 ‌쉽톤캠프~심바콜(4,630m)~초고리(3,000m), 19km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5시 반에 캠프를 출발. 어둠을 뚫고 일출 조망점인 심바콜Simba Col(4,630m) 패스로 오르는 길이 포인트 레나나보다 더 쉽지 않다. 포터들은 무거운 짐을 지었음에도 사뿐 사뿐 고도를 올라 친다. 여명의 옷을 입은 정상이 황금빛으로 빛난다. 아쉽게도 심바콜 패스 직전에 햇님은 세상 밖으로 두둥실 떠올랐다.

힘겹게 심바콜 패스를 넘으니 민토스 캠프Mintos Camp. 그 앞으론 거대한 협곡 조지스밸리Gorges Valley가 생경한 모습으로 서있고 뒤편으로는 이탕구네Ithangune(3,852m) 힐이 보인다. 우리는 높이 300m가 넘지 않아도 산이라 부르는데 해발고도가 3,800m가 넘는데도 힐이다.

완만한 하이킹을 즐기다가 가파른 오르막이 나타나고 초록의 숲이 펼쳐지다가 황무지가 나타난다. 참으로 다양한 풍경이 펼쳐진다. 능선을 따라 펼쳐진 언덕에 마이클슨호수Lake Michaelson가 자리한다. 다소 황량하게 보이는 이곳에서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나는 이런 황량함이 좋다. 저 멀리 앨리스호수도 보인다. 협곡에 앉아서 저 멀리 산 아래를 바라보니 세상이 모두 내 것이로구나. 마이클슨호수 가까이에는 그림같이 멋진 캠핑사이트도 있다.

포인트 레나나 정상에 서니 두 개의 호수, 로워 심바 탄과 해리스 탄 너머로 도시 풍광까지 곁들여진다.

멀리 보이던 조지스밸리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완만한 하이킹코스이어서 다소 지루함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름 모를 들꽃이 반겨주어서 트레일의 피로함을 느낄 겨를이 없다.

미티 폴Mithi Fall을 지나니 초고리아 트레일헤드(3,300m)이다. 이미 이곳에서 트레킹을 마치는 팀들이 있다. 어째 이리 부러울까? 예정대로라면 이곳에서 캠핑을 해야 하는데 텐트 폴에 문제가 생겨서 이곳에 머무를 수 없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오늘의 목적지는 이곳에서 4km 떨어진 아나바스 마운트 케냐 로지Anabas Mount Kenya Lodge. 로지까지 가는 숲길에선 여유롭게 하이킹을 즐긴다.

로지 앞마당에 세팅된 내 텐트를 바라보니 세상 모든 피로가 다 사라진다. 차와 스낵을 즐기며 잠시 소소한 독서의 행복에 취한다. 세상 나보다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

오랜만에 세수도 하고 머리도 감고 사람답게 좀 씻고 밤을 맞이했다. 이제 트레킹은 끝이다. 내일은 픽업 택시가 들어온단다. 꿈같은 내일이 기다려진다.

이번 케냐산 트레킹은 지난번에 다녀온 킬리만자로와 참으로 많이 비교가 되었다.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는 높이나 유명세가 케냐산을 넘어서지만 산 자체와 다양한 식물, 사바나 평온, 황량함이 주는 매력 등은 킬리만자로보다 케냐산이 훨씬 더 멋진 산이다. 트레킹 비용도 킬리만자로보다는 한결 부담이 덜 되었다.

심바콜 패스를 넘어 초고리아로 이어지는 길에는 거대한 조지스밸리를 마주한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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