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정치'의 시간 [우보세]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벚꽃이 비 오듯 쏟아졌다. 하얗게 등불같이 피었던 목련도 일찌감치 그 화사함을 잃었다. 그렇게 '선거의 계절'이 막을 내렸다. 누군가에게는 그 무엇보다 치열한 약육강식의 전쟁터였을 수도, 누군가에게는 그저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시끄러운 난장이었을 수도 있다. 양극화된 한국의 정치 지형 탓에 선거에 나선 후보자는 물론 일반 국민도 극한의 스트레스속에 선거를 치렀다. 그래서일까. 총선 결과에 몰입한 일부 지인 중에는 불안, 우울증, 두통 등 신체적·정신적 건강 이상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에선 이를 두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빗대 '선거(Election) 후 스트레스 장애'(PESD)로 부른다고 한다. 지난 몇 달간 정치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했기 때문이리라.
#이제 현실로 돌아올 때다. 길 위를 뒤덮은 떨어진 벚꽃과 목련을 누군가는 치워야 한다. 여야가 선거 승리만을 바라보며 '경주마'처럼 질주하던 사이 우리 경제의 고유가, 고환율, 고물가 '삼중고'는 더욱 악화했다. 당장 지난주 6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가격이 한때 배럴당 92달러(약 12만7500원)까지 치솟은 데 이어 지난 주말 두바이유 현물가격까지 배럴당 90달러 선을 넘어섰다. 이란의 이스라엘 보복 공격의 여파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 장중 14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물가 오름세는 좀처럼 꺾일 줄 모른다. 경제 비상시국이다. 이념과 정파를 떠나 위기 극복을 위해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총선 결과는 여야 모두에게 무거운 메시지를 남겼다. 민심은 특히 집권여당에 지난 2년간 국정 운영 난맥상에 대한 책임을 뼈아프게 물었다. 윤석열 대통령 역시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소통과 협치에 더욱 노력을 기울이라는 준엄한 국민의 명령이다. 범야권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192석을 몰아줬지만, 여당과의 합의 없이 범야권이 일방적으로 개헌, 탄핵소추를 할 수 있는 200석까진 내주지 않았다. 대권주자 '이재명'과 훗날 경쟁이 가능한 '조국'이라는 대타 재원도 허락했다. 다수의 의석을 야당에 주되,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를 강제함으로써 '정치 복원'을 주문한 것이다. 집권여당을 준엄하게 꾸짖으면서도 거대 야당의 독주를 견제한 절묘한 '민심의 균형'이다.
#이제 진짜 '정치'의 시간이다. 독일의 극작가이자 평론인 구스타프 프라이타크(Gustav Freytag)는 정치인과 군인의 길을 걸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성공하는 정치는 급진주의나 현실도피주의가 아니라 치열한 협상을 통해 국가와 국민의 행복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영국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 Bernard Crick ) 역시 "정치란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이해관계를 잘 조정해 타협하는 것"이라고 했다. 민심은 시급한 민생문제 해결과 경제 회복을 위한 '협치'를 주문한다. 여야 어느 일방의 희생과 양보를 의미하지 않는다. 대화의 장에서 격렬하게 싸우고 토론하라. 이를 통해 대안을 찾고 희망을 찾을 수 있어야 그게 진짜 '정치'다. 22대 국회는 진짜 '정치'를 보여주길 바란다.
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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