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전관들 재취업 창구된 ‘특수목적법인’

김아사 기자 2024. 4.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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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취업심사 제대로 하고있나
그래픽=박상훈

국토교통부 등 부처 관료들이 SPC(특수 목적 법인)로 세워진 민자 사업 시행사로 자리를 옮기는 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신안산선 사업을 시행한 SPC ‘넥스트레인’은 2019년 국토부 국장 출신인 B씨를 3대 대표로 영입했다가, 2022년 국정감사에서 지적받았다. 그러나 이듬해 후임인 4대 대표로 또 다른 국토부 국장 출신이 선임됐다. 서해선 대곡~소사 구간 시행자인 서부광역철도에는 2022년 국토부 국장 출신이 대표로 선임됐다.

도로, 철도 등 조(兆) 단위 금액이 투입되는 투자 사업은 SPC를 세워 시행하는 게 보통이다. 말 그대로 특수한 목적(사업)을 위해 회사를 설립하는 것으로, 사업에 실제 돈을 대는 출자 회사의 채무에 영향을 받지 않는 데다 청산이 쉬운 것도 장점이다. 문제는 이 같은 SPC에 관료들이 취업하는 경우 ‘취업 심사’ 등을 우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사혁신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자본금, 직전 연도 영업 거래액 등을 따져 취업 심사 대상 기관을 선정하는데, 새로 만들어진 SPC는 이런 제한 규정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취업 심사 대상이 되면 취업 전 3년간 취업할 곳과 관련된 직무를 했는지 등을 심사하게 되지만, 취업 심사를 받지 않으면 이 역시 피할 수 있다.

그래픽=박상훈

시행, 투자 업계뿐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서도 갓 이직한 전관의 영향력은 막강하다고 본다. 민간 업체들은 이런 영향력을 감안해 급을 매겨 전관을 영입하는 데 공을 들인다. 각 부처 기획조정실이나 철도, 도로, 건설 등 주요 국에서 일한 ‘에이스’ 관료 몸값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얘기한다.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어제까지 같이 일한 선배 이야기를 무조건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는 정서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의 취업은 공무원 재직 시 특정 업체에 이득을 몰아주고, 사후에 이를 돌려받는다는 의혹을 불러오기도 한다. 특히 취업 심사를 받지 않는 경우 이런 의혹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2021년 인천 신항 배후 부지 개발 사업을 주도하는 인천신항배후단지 대표에 관할 부처인 해양수산부 출신이 영입돼 논란이 됐다. 실제 당시 지역 시민단체들은 “공공 부지 개발권을 민간에 주는 대가로 일자리를 받은 것”이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2021년 국감에서 발전 공기업 5곳이 출자한 SPC에 근무하는 한국전력 및 계열사 출신이 59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지적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토지를 출자한 개발 사업의 SPC 대표로 퇴직 임원을 내려보내는 관행을 지적받자, 2012년부터 아예 토지 출자 방식의 신규 사업을 전면 폐지하기도 했다. 인사혁신처 관계자는 “문제의식에 대해 인지는 하지만, 현행법이 정한 대로 취업 심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관들이 SPC로 이직하며 취업 심사를 피하는 건 애초 공직자 윤리법에 취업 심사 제도를 만들어 둔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며 “공직자 윤리법을 개정해 보완해야 한다”고 했다. 국토부 측은 “현행법 아래서 개인 직업 선택 자유를 침해하기 어렵다”며 “대규모 투자 사업은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전문가가 행정 경험이 많은 관료인 것도 감안돼야 한다”고 했다.

☞SPC(특수목적법인)

특수한 목적(사업)을 위해 설립한 회사. 사업을 위해 실제 돈을 대는 출자 회사의 채무에 영향을 받지 않고 청산이 쉽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대규모 투자 사업에선 SPC가 시행을 맡는 경우가 많다. 고위 공무원이 SPC에 취업할 경우 공직자윤리법에 따른 취업 심사를 받지 않아도 돼 우회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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