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 장례식장 父子, 대를 이어 10년째 기부

신지인 기자 2024. 4. 18.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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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 입을 나이에 수의 입혀…” 교복 값 지원 등 총 5억원 기부

경기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선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선생님 50여 명의 장례가 치러졌다. 당시 장례식장을 운영했던 박일도(69) 한국장례협회 회장은 “한창 교복을 입어야 할 나이였던 아이들에게 수의를 입혀 미안했다”고 한다. 그는 참사 직후 단원고에 기부했고, 다음 해인 2015년부터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교복 값을 지원했다. 학생들이 마음 편히 교복을 입으면 좋겠다는 뜻이었다.

박일도(오른쪽) 한국장례협회 회장이 아들 박천광(왼쪽) 제일장례식장 대표, 손자 박시원군과 17일 경기 안산 제일장례식장 앞에 서 있는 모습. /김지호 기자

박 회장의 기부는 10년 동안 이어졌다. 희생자들의 장례를 치르고 번 돈 5000만원을 단원고에 기부한 게 시작이었다. 2015년부터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안산 지역 차상위 계층 학생들에게 교복 값 20만원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1년에 100~300명의 학생이 혜택을 받았다고 한다. 2019년부터 경기도교육청 차원의 교복 무상 지원이 시작되자, 안산 지역 학교에 장학금을 직접 기부했다. 20여 곳의 중·고등학교에 학교별로 현금 350만원을 전달했다.

박 회장의 기부는 아들이 이어받았다. 2017년 아버지 대신 장례식장 일을 시작한 박천광(40) 대표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5일 안산시청에 3650만원을 기부했다. 3650일이 지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겠다는 의미였다. 이들 장례식장 부자(父子)가 지난 10년 동안 기부한 금액은 5억원이 넘는다고 한다.

아들 박 대표는 “참사 당시 장례식장의 이사로 일했는데, 어린 학생의 대규모 장례는 처음 치러보니 경황이 없었고, 그만두는 직원도 많았다”며 “오열하는 유가족을 지켜보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버지를 따라 기부를 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세월호 이전에도 아버지는 기부를 일상처럼 하셨다”며 “9세 아들도 그 피를 물려받았는지 일이 바빠 봉사활동을 가지 못할 때면 ‘아빠 요즘은 봉사 안 가?’ 하고 보채기도 한다”고 했다. 박 대표는 지인들과 ‘나눔사업단’을 만들어 빈곤 가정 도시락 전달 봉사 활동 등을 하고 있다.

아버지 박 회장은 “기부할 때마다 내심 아들이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아들도 내가 모르는 사이 기부를 하고 있었다”며 “어린 손자까지 기부금 전달식이나 봉사활동에 데리고 다니는 걸 보니 참 고맙더라”고 했다. 아들 박 대표는 지난 2022년 손자 박시원(9)군과 함께 사랑의 열매를 방문해 1억원을 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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